예 사 랑   Hubb ul-Yemen

예멘을 사랑하는 사람들   People Who Love Yemen: HU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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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예멘   My love, Yemen! 

Mrs. Sheba Kim

 

싸나(Sana'a)는 예멘의 수도이다. 비행기를 타고 싸나 상공에 도착하면 두 가지 두드러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라비아의 지붕이라 불리는 싸나의 고원 지대와, 그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고도 싸나이다. 싸나 시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성벽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0세기경이다. 그후 붕괴와 확장을 거듭하면서 차츰 그 두께와 연륜을 더하였고 현재까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의 성벽중 서쪽의 것은 거의 파괴되었고, 동남북 세 방향의 성벽은 지금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남쪽의 성벽은 주바이리 거리를 따라 '바블 예멘'(Bab ul-Yaman; 예멘의 문이라는 의미)까지 이어진다.

바블 예멘의 안쪽에서 열리는 시장, '쑤끄 알 밀히'는 '소금 시장'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슬람 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상인들도 조합 형태를 취해 40여개의 다른 조합이 각각의 품목을 균점 관리한다.

싸나라는 말은 고대 사바 왕국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요새 지대'라는 뜻이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이름 역시 2,000년전의 왕국에서 유래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싸나는 노아(Noah)의 장자인 셈(Sem)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것을 기록한 사람은 10세기의 역사학자 무함마드 알 함다니(Muhammad al-Hamdani)이다. 그의 [알 이크릴]에 의하면 "싸나에 우물을 파고 궁전을 지은 것은 셈이다: 셈은 아라비아 반도의 북쪽 지중해변의 집을 떠나 남쪽으로 발을 옮긴다.

지금의 예멘 땅을 순례하다, 지금의 싸나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는 싸나 협곡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고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때 새가 한 마리 날아 와서는 먹줄을 물고는 동쪽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셈은 그 새를 따라가 그 먹줄을 내려놓은 누쿰산 자락에 건물을 짓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역사 속에 언급되고 있는 굼단의 궁전이라는 것이다."

예멘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5월 예멘의 통합이 이루어졌을 때이고, 그 이후도 1994년 내전과 '완전 통일'에 이르는 과정 동안 우리에게는 커다란 관심거리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예멘의 본질을 이해하는데는 너무 나도 많은 거리감이 있었다. 1994년 Korea - Yemen Center를 설립은 '예멘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예멘에 관한 나의 관심은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남편이 1991년 통일부의 "예멘통일 조사단"의 일원으로 예멘을 방문하고, 예멘에 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 놓았을 때만 해도 솔직히 나는 예멘에 관심이 없었다. 그후 사재를 털어 1994년 예멘센터를 설립할 때는 오히려 강한 반대를 하면서 억지로 준비모임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때 대리대사 바이사의 도움은 실로 컸다. 그리고 차츰 그의 훈훈한 정에 이끌려 예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1998년 쌀레대통령이 중국 북경을 방문하게 되었고 나는 남편 덕으로 그곳에서 처음으로 예멘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베이징에서의 쌀레 대통령과의 만남은 내게 예멘(Yemen)을 사랑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예멘에 대한 나의 사랑이 영글기도 전 2001년 여름 주한 예멘대사관이 철수를 하게 되었고, 남편은 마지막으로 예멘 구경이라도 시켜주겠다는 속셈으로 나를 이끌고 예멘을 방문하였다. 처음으로 방문한 예멘, 특히 수도 싸나(Sana'a)의 정겨움은 나를 사로 잡았고, 이때부터 진정 남편의 예멘 사랑을 진솔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예멘 방문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남기면서 금년초까지 연결되었고, 지난해 Galal 고등교육부 차관의 방한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싸나대학의 부총장 Dr. Kibsi와의 다리를 새로 놓아준 것이다. 그리고 2005년 쌀레 대통령의 한국 공식 방문시 깁시 부총장은 대통령과 함께 서울에 왔다. 대통령은 친히 귀중하고 사랑스런 예멘 장신구를 몸소 챙겨 오셔서 직접 나의 목에 걸어 주셨다. 이 날의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대통령은 즉석에서 우리 부부를 "예멘통일 15주년 기념행사"에 초대해 주셨다. 커다란 민간외교의 차원을 넘어서 개인적인 영광을 온 몸에 받고 돌아온 나는 "한국과 예멘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묘"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실이 "예사랑"(예멘을 사랑하는 사람들: People who love Yemen, HUBY)이라는 모임을 만들 게 되었다.

아랍의 역사, 언어, 문화 등 본질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예멘에 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한 한국은 예멘과 인적 및 물적교류의 증진을 위해서도 본질적인 한-예멘간 교류가 선행되어야한다. 그러므로 예멘에의 이해 및 교류증대는 물론 상호이익과 발전을 위해 교량역할을 할 구심점이 필요하고 그 역할은 '문화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는 커다란 어려움이 뒤따랐다. 학자들은 소외된 지역이라고 연구를 기피했고, 업계에서는 예멘의 장래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렸다. 다시 말하면 정치, 경제적 관심은 고조되었지만, 본질적 학문에의 접근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예사랑"(HUBY)은 향후 괄목할 만한 "경제교류에 선행하여 문화교류의 선봉장"이 될 것을 다짐하며 뜻있는 몇몇이 모였다. 앞으로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한-예멘 관계에 작은 보탬이라도 주었으면"하는 바램이다. 새롭게 출발한 작은 모임이 큰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뜻있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 같은 모임이 탄생되도록 도와준 예멘 현지의 모든 사람들께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05년 5월

예사랑 대표 쉬바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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