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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경제사회연구원 Research Institute of the East-West Economy & Society

 제15호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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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5 May, 1998

 

권두언

오사카 (Osaka) 중동학회

 

제14회 일본중동학회 연례학술대회가 지난 5월 9-10일 양일간 일본의 오사카 사천왕사국제불교대학(四天王寺國際佛敎大學)에서 열렸다. 도쿄, 도또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참석인 일본중동학회. 나름대로는 관록도 붙었고, 다소는 자신이 있는 태도로 여유 있게 임했다. 하지만 역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임을 다시 한번확인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기심 많은 나는 이곳에 함께 참석한 한국외대의 이집트인 교수 나세르 딘과 함께 거리 구경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 친구도 일본 사회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은 일본인을 관찰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지하철 역에 붙여 지어진 호텔이었다. 한국의 그것과 똑같은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라면을 한 그릇 먹고, 편의점으로 갔다.

그 곳에서 흔히 우리에게 퇴폐라고 이름지어진 음란 만화가 연령별로 금지 안내를 알리면서 진열돼 있었고, 나세르 딘은 만약 이곳이 한국이라면 이 부분은 가렸을 텐데---하면서 생소한 이국의 문화를 평가했다. 노래방도 그랬고, 단란주점도 그랬다. 일본어만 한국말로 바꾸면 영락없는 한국이다. 비디오 가게에서 많은 오락기와 CD 플레이어가 10대들에게 아무 여과장치 없이 공개되고 있었고, 거리에서 역시 10대들이 떼를 지어 기타치고 키스하고 있었다.

홍성민(원장)

  한-일 문화교류가 코앞에 와 있는 시점에 한국의 10대, 아니 집에 두고 온 내 아이들이 떠올랐다. 분명히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었고, 우리는 또 받아들이며 인정을 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국제화이고 현대문명이기 때문이다.마침 IMF 상황이라 한국에도 홈리스(homeless)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고 왔기에 일본의 홈리스 또한 커다란 관심거리였다.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홈리스들이 지하철의 어두움을 꽉메우고 있었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도 힘의 논리는 적용됐다. 지하철의 제일 좋은 안쪽 자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차지였고, 힘없는 노인들은 거리의 공간을 차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역시 일본인의 질서의식이다. 아마 늦잠이 많은 사람이라면 언제 이곳에 사람들이 머물다 갔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른 새벽이면 말끔히 치워진 거리나 지하철 역에서 새로운 신선함을 맛본다. 그런 나라가 일본이다. 프랑스에도 약40만명의 홈리스가 있고 모든 선진국에도 홈리스가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어떠한 방법과 정책으로 그들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방법론만 남은 것 같다.

  더욱이 관심을 끄는 것은 국제불교대학이다. 영문으로는 International Buddhist University (IBU; )라고 명명된 사천왕사국제불교대학은 종교 냄새가 전혀 나질 않는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도 교수가 있고, 무종교인도 교수가 있다. 식당에는 고기도 있다. 학과도 다양하다. 불교학과 이외에 교육학과 사회학과, 영어영문학과, 중동연구가 가능한 아랍어 아랍문화학과도 있다. 졸업하면 중등교사 자격증을 주는 것도 특이하다. 아무튼 다양성이 있는 나라이다.

  불교대학에서 중동학회가 열릴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중동학회 연차총회에서 특별강연을 한  東大寺의 Morimoto Kosei 박물관장은 Islam과 불교를 매우 정치(精緻)하게 비교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일본이었기에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그들의 다양성과 적응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참가자들을 위해 아랍음악을 연주하는 대학생들도 우리와는 달랐다. 기타, 아랍 북, 인도 악기 셋을 섞어 그들이 편곡한 일본식 아랍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다양성과 흡수력이 강한 일본인은 곧바로 적응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문화로 융합-발전시켜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 낸다.

 일본인들에게 획일성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건물 전체를 금연빌딩으로 지정하는데 비해, 일본인들은 어느 곳이건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흡연 공간을 확보해 주고 있다. 학연, 지연, 학벌을 고집하는 한국의 대학, 더욱이 종교, 종파, 종단들의 분규가 끊이지 않는 우리 현실과 곧이어 닥쳐올 세계화의 물결이 거센 파도로 보이는 세미나였다. 우리도 인색하지 말아야한다. 신세대들에게 그리고 흡수력을 키울 수 있는 자생력을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RIES 연구

독일의 역사와 문화

이상기(사회문화연구실장)

  독일은 유럽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북해와 덴마아크에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 프랑스 네덜란드와 국경을 같이 한다. 남쪽으로는 같은 독일어권인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연결되며, 동쪽으로는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와 닿아 있다. 북쪽은 저지로 북해와 연결되고, 남쪽은 알프스의 산악지대로 자연스럽게 국경을 형성한다. 위도상으로는 북위 47도에서 55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대기후를 지닌다. 우리나라에 비해 위도가 상당히 높은데도 온대기후를 보이는 것은 서쪽의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습하고 따뜻한 공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맑고 청명한 날씨가 적은 편이며, 11월부터 2월까지의 겨울에는 1달간 일조시수가 12시간 정도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강수량은 비교적 연중 고르게 분포되어 있고토지는 비옥한 편이다.독일은 또한 운하가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이다. 북해의 하구인 로테르담으로부터 라인강과 마인강 그리고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거쳐 여객과 화물이 비인,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 흑해까지 운반된다. 그리고 북쪽의 스웨덴으로부터 남쪽의 이탈리아까지 철도와 고속도로가 잘 연결되어 있으며, 독일이 그러한 교통망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해 독일은 경제적으로 유럽의 중심국가 역할을 하고 있으며, 90년 통일 이후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입지를 확보해 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독일은 연방 공화국이며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한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독일은 유럽에서 비교적 후진국으로 출발했지만 전통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다른 유럽국가,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언어적인 면에서는 독일어권에 살며 독일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독일인은 아니다. 지난 역사와 정치로 인해 독일어는 유럽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지만,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독일은 서쪽으로 베네룩스 삼국, 서남쪽으로 프랑스와 라인강, 남쪽으로 알프스산맥, 동쪽으로 오더르-나이세강 안쪽의 독일 연방공화국이다.

  독일의 역사는 기원전 1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독일사회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로마시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가 처음이다. 로마는 기원후 2세기경 독일의 라인-마인-도나우로 이어지는 강줄기의 서남부 지역까지 진출한다. 당시 로마의 유적은 쾰른과 트리어 등의 거점도시에 많이 남아 있다. 중세 독일의 역사는 영웅서사시인 [니벨룽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유럽의 역사에서 중요한 민족이동과 관련이 있다. 이 이야기는 라인-마인 지역에 나라를 세운 부르군트족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니벨룽'의 소재 역시 문학과 예술에서 끝없이 반복된다. 그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이다.

  독일의 중세에 중요한 사건은 십자군 원정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은 수도원이며, 흥미있는 전설은 '바바롯사 전설'이다. 십자군 원정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수도원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그리고 바바롯사 전설은 당시 독일사람들의 이상을 대변하고 있다. 종교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암흑의 시대 중세는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그 종말을 고한다. 마틴 루터, 그는 독일사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야 할 인물이다. 1514년에 시작된 루터의 투쟁은 1520년부터 본격화되고, 1525년까지 정치와 사회의 대변혁을 가져온다. 그는 또한 1534년 성경을 독일어로 완역하여, 종교와 학문의 시민화에 기여한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로 양분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유럽이 전화에 휩싸인다. 그것이 바로 30년 전쟁(1618-1648)이다. 30년동안 독일은 전쟁터로 변한다. 독일 전역은 초토화되고, 그 결과 남은 것은 허무주의 뿐이다. 한 시대이나 한 사회의 몰락은 다른 시대나 다른 사회의 번창을 의미한다. 계몽주의로 대표되는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고, 프로이센 왕국이 성장을 하게 된다. 18세기 중반 프로이센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와 함께 유럽의 5강 대열에 합류한다.이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독일에서의 주도권을 다툰다. 1814년 '비인체제'가 출범함으로써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보다 우위에 선다. 그러나 1834년 프로이센 주도로 '관세동맹'이 체결됨으로써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통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프로이센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국력을 키워나가고, 그것이 1871년 독일제국의 성립으로 그 결실을 맺는다. 독일제국은 신성로마제국 이후 두 번째 제국이라는 의미에서 제2제국으로 불린다. 그러나 국력의 팽창은 결국 전쟁을 부르고 만다. 모로코 위기, 보스니아 위기, 발칸 위기를 겪으면서 유럽의 긴장은 고조되고,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그 긴장은 폭발하고 만다.

 제1차 세계대전후 독일은 정체를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꿔 새로운 시도를 해 보지만, 위기와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한 틈바구니에서 독일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한 시대인 국가사회주의 시대가 도래한다. 1934년 히틀러 주도로 국가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그러한 사회체제는 1940년까지 계속된다. 당시 저질러진 만행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유태인 학살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분단이라는 새로운 상황의 전개이다. 동쪽에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고, 서쪽에는 연방공화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가 생겨난다. 이후 양독은 20여년간 적대시하는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진보적인 사민당이 집권하는 1969년 서독은 '1민족 2국가'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 통일을 위한 단초를 마련한다. 이후 교류와 협력이 꾸준히 추진된다. 1985년부터는 소련대통령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구하면서 국제정세가 자본주의 체제에 유리하게 돌아간다. 그 결과 동독 주민들의 동요가 일어나고,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기에 이른다. 이후 통화통합으로 대표되는 경제통합이 이루어지고, 1990년 12월 선거를 통해 통일독일 정부가 출범한다. 독일은 완전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사회 문화적인 분야에서의 하나되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독일은 연방국가이다. 연방의 각주는 독자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또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이라고 말한다. 지방 분권적인 역사가 만들어낸 가장 독특한 유산이 바로 문화에서 나타난다. 베를린이 다시 연방의 수도로 결정되기는 했지만, 지난 역사에서 수도로 역할을 한 것은 기껏해야 70여년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나 런던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정치 경제단체나 기구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적인 단체나 기구의 중심지가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 중앙도서관은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와 라이프치히에 있다. 이곳에서는 또한 매년 서적박람회와 경제박람회가 열린다. 중요한 신문과 방송은 함부르크, 마인츠, 베를린 등에 분산되어 있으며, 유명한 극장도 뮌헨과 베를린, 만하임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좀더 규모가 작은 도시들에서도 독일인들은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있다.

  문화의 다양성과 분산은 독일의 커다란 장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지역마다 다른 법규와 제도, 독자성으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시 많은 불편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한곳의 문화가 전체를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의 경우, 독일의 문화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독일은 우선 문화적으로 남쪽과 북쪽이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남쪽 사람들이 좀더 보수적이며, 북쪽 사람들이 좀더 진보적이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남쪽에는 구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으며, 북쪽에는 신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다. 동서의 경향을 보면 동독지역에는 구교보다는 신교를 믿는 사람이 훨씬 많다. 언어적으로도 중남부 지역에서는 고지독일어를 사용했고, 북쪽에서는 저지독일어를 사용했다.

  지금은 고지독일어가 표준어로 사용되지만, 북부 해안지방에서 저지독일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지역에 따라 방언이 존재하는데 작센 방언, 프랑켄 방언, 바이에른 방언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분단시대의 유산으로 일부 정치적인 용어에서 동서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의미와 문법적인 구조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역이나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지역의 특성이자 그곳 사람들의 기질이다: 라인란트 사람들은 즐겁게 살아가며, 슈바벤 사람은 절약하는 습성이 있다.

  베스트팔렌 사람들은 진지하고 신중하다. 튀링엔은 1800년을 전후한 독일문학의 정신적인 고향이다. 특히 바이마르는 고전주의 문학의 중심지이다. 작센주는 과거의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이 유명하다. 바하, 라이프니츠, 렛싱, 바그너 등이 이곳 출신이며, 특히 드레스덴에는 바로크의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남독의 뮌헨은 문화중심지로 유명하며, 뉘른베르크 사람들은 실용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로마의 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는 중북부의 쾰른과 중서부 독일의 트리어가 있다.

  독일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나 문화행사로는 종교에서 기인한 것과 게르만족의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 있다. 게르만적인 것으로는 겨울을 물리치고 봄을 맞이하는 풍속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것을 독일 사람들은 사육제라 부르는데, 매년 1/2월에 개최되며 라인강변의 쾰른, 마인츠 지역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음산했던 겨울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이때 몸과 마음을 열고 마음껏 즐긴다. 기독교 전통에서 유래한 풍속으로는 부활절과 성신강림절 축제 그리고 연말의 크리스마스 축제가 있다. 부활절에는 어린이들에게 달걀을 주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 달걀은 신에게 바치는 선물이자 제물이며, 생명의 원천으로 그 의미가 크다. 크리스마스 풍속은 독일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으며, 종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의미의 축일로 기려지고 있다.

  관광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도시로는 뮌헨, 쾰른,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이 있다. 그러나 로텐부르크(오프 데 타우버)처럼 소도시이지만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도 있다. 독일의 도시는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또 다른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이들 도시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과거의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현대적으로 도시가 개발되어 있다. 뮌헨의 관광명소로는 독일 박물관과 신 구 두개의 미술관, 님펜부르크 성이 있다. 독일 박물관은 자연과학과 기술의 걸작을 모아놓은 곳으로, 교통기관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신 구의 미술관에는 중세의 성화, 뒤러 등 독일 화가, 현대의 화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수집 전시되어 있다. 바이에른 왕의 여름 별장이었던 님펜부르크성도 건축양식이나 정원 등에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1972년에 개최된 뮌헨올림픽의 주경기장과 공원 역시 중요한 관광코스인데 특히 천막형태의 지붕이 이색적이다. 또 올림픽탑으로 불리우는 290m의 T.V.송신탑은 뮌헨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이다.

  쾰른은 로마시대 독일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이 거주했던 곳으로 기원전 50년에 벌써 도시가 형성되었다. 도시의 이름도 로마어 '콜로니아'에서 유래했으며, 우리에게는 고딕양식의 대표적 건물인 쾰른 대성당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독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로마-게르만 박물관이 유명하다. 그리고 현대 표현주의 미술품이 가장 많이 소장된 곳으로 유명한 발라프-리하르츠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의 명소이다. 이곳에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성삼왕'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앞에 언급한 쾰른 대성당이 있는데 종교적으로는 성삼왕의 제단이 있어서 유명하고, 건축학적으로는 고딕양식의 첨탑, 바실리카, 스테인드그라스 등이 유명하다.

  라이프치히에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아우얼바하의 술집이 유명한데, 이곳에는 파우스트 전설이 그림으로 그려져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동독 붕괴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니콜라이 교회도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이며, 쿠르트 마주르가 지휘하는 게반트 하우스 오페라 극장도 유명하다. 드레스덴은 과거 동독 시절 세번째 큰 도시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많은 폭격을 받은 도시로 유명하다. 그리고 예술의 도시로 유명하며 볼만한 것이 구도심에 모여 있다. 여러가지 예술품들이 수장되어 있는 알베르티눔이 가장 볼만한데, 그중에서도 왕의 보물이 수장되어 있는 '녹색의 방'과 19/20세기 독일과 프랑스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화랑 '노이에 마이스터'가 유명하다. 또한 1711-28년 사이에 지어진 대표적인 바로크 건축으로 츠빙어가 있는데, 이것은 드레스덴의 상징이다. 그리고 노이에 마이스터와 대비되는 것으로 화랑 '알테 마이스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RIES 활동

 

종합경제사회연구원(RIES)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종합경제사회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http://www.hopia.net/ries). 본 홈페이지 내용은 RIES 안내, 통계자료, 자료실, 중국학, 언어학, 여성학, 종교학, 온라인 뉴스, RIES Newsletter, 현대경제와 사회, 국가별 자료 및 게시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본 홈페이지는 부설 연구기관인 중동경제연구소(http://www.hopia.net/kime), 한국예멘 교류센타(http://www.hopia.net/kyc), 아랍중동비즈니스((http://www.hopia.net/mbkorea) 및 홍성민 원장의 개인 홈페이지 (http://www.hopia.net /hong) 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연구원의 활동상황을 광범위하게 알리게 되었다. 또한 광범위한 석유 관련 자료와 온라인 서비스를 통한 뉴스센타 통하여 현실성 있는 자료이용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기대된다.

 

KYC 중동인물연구 98-1 발간

  본원 부설 중동경제연구소는 중동인물연구 98-1, [예멘 통일과 민주화의 기수: 알리 압둘라 쌀레]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이 책자는 지난해 5월 발간한 [알리 압둘라 쌀레: 예멘 통일의 아버지, 민주공화국의 기수]라는 책자를 보완한 것이다. KYC는 5월 22일 주한 예멘대사관이 주최한 예멘국경일 행사 리셉션에서 이 책자를 배포하였다. 특히 이책자는 성균관 대학교 이상봉 교수가 직접그린 초상화와 지난 2월
쌀레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이를 전달한 홍성민 원장의 사진도 곁들여 발간되었으며, 한국예멘교류센타 김해권 이사장의 출판비 보조에 의해 발간되어 Korea-Yemen Center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동일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KIME 한반도 미디어와 자매결연

  본원 부설 중동경제연구소와 한반도 미디어, HIM (Hanbando International Media)는 중동 국가와 우리나라의 국제 문화교류사업 및 우호증진에 기여하는 홍보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취지하에 지난 4월 30일 본원 홍성민 원장과 HIM 최정남 대표이사간에 약정서를 체결하였다. 그 첫 사업의 일환으로 금년 가을 예멘문화행사를 추진중에 있으며, UAE 관련 출판 및 문화행사도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하였다.

 

홍성민 원장 일본 JAMES 제14차 연례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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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원 홍성민 원장은 지난 5월 9 - 10일 오사카 국제불교대학에서 개최된 제14차 일본중동학회에서 " Economic Cooperation in the Middle East: Study on Seeking after the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Korea and the Middle East"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였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송경숙 교수와 Nasr Din 아랍어과 교수가 한국측 대표로 함께 참여하였다.

 

차 범석 고문 문예진흥원 원장에 취임

  본원의 차 범석 고문은 지난 3월 문예진흥원 원장에 취임하였다. 차 범석 고문의 문예진흥원 원장 취임은 본원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향우 중동 경제 연구소를 통한 한-중동간 문화 교류에 커다란 기폭제가 되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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