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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事求是  Seek after Truth, Based on Facts

종합경제사회연구원 Research Institute of the East-West Economy & Society

 제12호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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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2 August, 1996

 

권두언

가족세미나, 1996 RIES 하계학술대회

홍성민(원장,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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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모였다. RIES 가족들이 1년만에 한반도의 중앙 수안보에서 다시 만났다. 대지를 달구던 무더운 열기가 다소 가라앉고 조석으론 피부에 찬 기운이 맴돌 무렵. 지난해 그 자리에서 또다시 얼굴을 마주했다. 서울에선 대학생들이 통일을 외치며 온 국민을 긴장시키며 땀방울을 굵게 할 즈음 다소는 잊혀지고 진부해진 "예멘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라는 주제를 놓고 RIES 가족들이 다시 만난 것이다.

예멘을 소개하는 비디오 상영이 시작되고 발표자들이 모두 참석하지 못해 이빠진 그릇처럼 엉성하게라도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세미나는 제시간에 시작됐고, 원외자는 이상하다는 듯 두리번거리는 가운데 초조하게 발표는 계속됐다. 2부에서는 "모든 참석자가 도착하여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사회자의 안내와 함께 발표자들이 아슬아슬하게 나타나 시간을 넘겨 가며 1부가 마무리되었다. 취재차 나온 MBC의 취재진들에게 1부가 길어졌으니 10분만 더 기다려 달라는 양해와 함께 2부가 시작되었다. 한국어, 영어와 함께 아랍어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세미나는 무르익기 시작했고, 3부의 계획 때문에 아쉬운 토론을 뒤로 넘긴 채, 세미나는 절정에 이르렀다. 007 영화보다도 많은 위기를 넘기며 세미나는 '해피 엔드'(happy end)로 휘날레를 장식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본원의 임원과 회원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고, 도착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도로 사정 때문에 위기는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계속된다. 심지어 부산의 어느 참석자는 세미나가 모두 끝난 밤늦은 시간에 나타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래도 즐겁고 아름다웠다. 가족들이 만났기에

創院이후 3년의 세월이 30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심하지 않은 폭풍우는 견딜 수 있는 약한 뿌리는 내린 것 같다. "오늘이 마지막이요, 이번이 시작이다"라는 생각으로 초조와 불안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모든 회원들이 한가족 되어 뭉쳤다. 때문에 더욱 자랑스럽고, 그래서 가족으로 남을 것이다. 더욱이 세미나 이후 벌어진 노래 경연 대회는 업소의 마감 시간 때문에 내년을 기약해야 했고, 이튿날 서로 다른 민족, 종교 및 문화간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현장 학습이 성기서 교수의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와 함께 속리산 법주사에서 慧光 주지 스님의 세심한 배려로 이루어져 문화의 갭을 좁힐 수 있었고, '實事求是'의 원훈도 실천할 수 있었다. 정이품 소나무아래 잔디밭에서의 아쉬운 작별은 눈시울을 찡끗하게 만들며, 내년을 기약하였다.

아쉬운 대로 만족해야 했다. 이 세상에 완전과 절대는 없는 것이기에 未完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그저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sea)에서 뼈만 남은 大魚를 끌고 돌아오는 늙은 어부의 傲氣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고마운 마음뿐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족 되어 物心兩面 도와주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떤 이는 꽂을 보내 왔고, 어떤 이는 인쇄물을, 어떤 이는 금일봉을, 어떤 이는 몸을, 어떤 이는 인정을, 어떤 이는 마음을 갖고 왔다. 특히 호텔 측의 세심한 배려는 잊을 수 없고, 내 고향 일이라고 앞장서 나서 준 현지 KBS, MBC 및 여타 언론에 사의를 표한다. 일일이 찾아뵈며 인사해야 하지만 "感謝합니다"라는 非禮 한마디로 때우고 내일을 준비하려 한다. "이 세상은 가장 경제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움직여지지만, 그 결과는 가장 비경제적인 사람들에 의해 정리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값진 학술 대회였다. 더 나은 앞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보다 많은 격려를 부탁드리면서


 

학 술

예멘의 모카커피(Mokha Coffee)

커피는 현재 세계 최고의 기호식품이다. 차나 포도주보다도 선호되며 전세계적으로 하루 10억잔 이상이 마셔지고 있다. 소비되는 커피의 종류도 다양하여, 비엔나 커피, 모카 커피, 아이리쉬 커피, 콜롬비아 커피 등이 있으며, 이것을 더 세분화하면 비엔나 커피가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등으로 나누어진다. 커피는 커피나무의 열매로 만들어진다. 빨갛게 익은 열매를 채취하여 건조와 가공 과정을 거쳐 커피가 완성되는 것이다. 커피나무의 종류는 두 가지이며, 그 하나가 아라비카 Arabica(학명: Coffea arabica)이고 다른 하나가 로부스타 Robusta(학명: Coffea canephora)이다. 아라비카는 이디오피아에서 야생으로 자라던 것으로 북위 7-12도의 고원 지대가 그 원산이다. 열매의 크기를 보면 길이가 10mm, 폭이 6-7mm, 두께가 3-4mm이고, 무게가 0.15-0.20g이다. 이에 비해 로부스타는 1860년에야 비로소 적도 근처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아라비카보다 작고 둥글다. 전세계적으로 커피나무는 150억 그루 정도가 되며 한 그루의 나무에서 약 500g 정도의 커피가 생산된다. 그러므로 1995년에 생산된 커피의 양은 약 52.4억Kg 정도이다. 커피의 생산은 1991년을 정점(60억 Kg)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가격 역시 86년을 정점(12.49DM)으로 점차 감소하여 1994년 500g의 소비자 가격이 8.24DM이다.

커피의 고향은 이디오피아의 카파지방이다. 그곳의 유목민들에게 커피는 음료가 아닌 음식으로 사용되었다. 고기와 기름에 커피를 섞어 공모양의 경단을 만들어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이것이 14세기경 홍해를 건너 예멘에 옮겨져 본격적으로 경작이 되었다. 커피는 이슬람 세계로 퍼지게 되었고, 차츰 유럽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1647년 베네치아에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겨났고,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683년 비인 근교에서 오스만 터키 사령관 카라 무스타파가 오스트리아 연합군인 폴란드왕 얀 소비스키에게 패함으로 인해서다. 오스트리아 연합군은 전리품으로 커피를 노획했고, 이후 커피는 유럽 사람들의 기호식품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지금은 커피의 생산과 소비의 중심이 미주로 넘어가, 최대의 생산국은 브라질이고 최대의 소비국은 미국이다.

커피의 효능으로는 각성 작용이 으뜸이다. 그것은 커피에 카페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마신지 20-30분후 가장 왕성하게 작용을 하고, 3-6시간 동안은 카페인의 함량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그 다음 3-6시간 동안은 1/4로 떨어진다. 커피는 마신 후 세시간 동안은 집중력을 높여 주는 기능을 하며, 그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피로도가 높아진다. 커피는 정신과 육체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역할을 하며, 초조와 불안 같은 감정을 완화시켜 주기도 한다.

커피는 15세기 말경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다. 홍해에 연한 예멘의 조그만 항구도시 알 모카(Al-Mocha)에서이다. 전설에 의하면 모카의 수호성인(聖人)인 알리 이븐 오마 알-샤딜리가 포루투갈의 선원들에게 자신이 마시던 검은 음료를 제공했는데, 그 음료가 정신을 맑게 하고 기분을 전환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원들은 커피의 씨앗을 얻고 또 커피의 제조법을 익혀 포루투갈로 돌아왔다. 커피는 짧은 시간 내에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으며, 현재 가장 보편적인 음료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성인 알리 이븐 오마 알-샤딜리는 15세기말에 살았던 성인이며, 그의 무덤이 실제로 모카의 알-샤딜리 사원에 있다. 그러나 커피의 전래에 대한 다른 견해도 있다. 커피가 포루투갈 사람을 통해 유럽에 전파되지 않았으며, 오스만 터키에 의해 비인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커피가 상품화된 것은 유럽인들에 의해서이며, 현재는 하나의 문화로까지 발전해 있는 상태다.

커피는 예멘의 서부 산악 지대에서 재배되었다. 그곳으로부터 50-80 Km 거리에 있는 항구도시 모카까지 말이나 낙타에 의해 커피가 운반된다. 영국의 동인도회사 사장이었던 헨리 미들턴경(卿)이 1610년 모카에 상륙해서 커피를 처음 접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인 1616년 네덜란드 출신의 선장 피터 반 데어 브뢰케가 모카에 와서 커피의 교역 가능성을 타진한다. 17세기 중반 비인과 암스테르담에 커피를 판매하는 집이 생겨난다. 요한 세바스챤 바하(1685-1750)같은 음악가까지 커피를 노래하는 곡을 작곡하기에 이른다. 17세기 말 커피는 전세계적인 교역 품목이 되었고, 커피는 예멘의 모카 지방으로부터 스리랑카, 자바로 그 재배 지역을 확장하게 된다. 재배와 교역을 주도한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은 생산과 가격을 마음대로 조절하면서 예멘이 커피 생산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떨어 뜨렷다. 18세기 말 모카항을 통해 실려 나가는 커피의 양은 22,000톤 정도였다. 그리고 이 물량의 상당 부분은 유럽이 아닌 미국으로 수출되었다. 19세기 들어 커피의 생산 기지가 남미와 아프리카로 더욱 확대되면서 모카 항을 통한 수출량은 더욱 감소한다. 모카항의 인구도 20,000명에서 400명 정도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커피는 주로 사우디, 유럽, 일본 그리고 미국, 러시아로 수출되며, 초콜릿이나 빙과류의 맛을 내는데 쓰인다. 특히 바니 마타르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타리'(Matari)와 '알 하이미' 지역에서 생산되는 '하이미'(Haimi)는 대표적인 아랍산 커피(coffee arabica)로 명성이 높다. 이처럼 예멘의 커피가 선호되는 이유는 특유의 향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멘의 생산 방식이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시행되고 있는 대단위 영농에 의한 생산을 능가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재래식 재배 방식에 의한 낮은 노동생산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경쟁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멘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독특한 향과 품질의 우수성이다. (정리: 이상기, 사회문화연구실장)

 

각국별 인스턴트 커피 선호도

순위

나 라

선호율(%)

순위

나 라

선호율(%)

1

영 국

91

6

스 페 인

27

2

아일랜드

83

7

프 랑 스

26

3

그리이스

57

8

이 태 리

12

4

스 위 스

31

9

독 일

10

5

포루투갈

29

10

오스트리아

10

 

유럽 각국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1994년): 단위 Kg

 

순위

나 라

소비량

순위

나 라

소비량

1

핀 란 드

12.4

6

오스트리아

8.1

2

스 웨 덴

11.4

7

스 위 스

8.1

3

노르웨이

11.3

8

독 일

7.1

4

덴마아크

10.5

9

프 랑 스

5.3

5

네덜란드

8.3

10

이 태 리

5.0


 

연구

중동지역연구 96-1 [예멘](Yemen) 발간

RIES 부설 Korea-Yemen Center는 '중동지역연구 96-1 [예멘]'이라는 연구집을 발간하였다. 그 동안 Korea-Yemen Center의 연구 활동을 토대로 작성 된 본 연구집은 예멘을 이해하기 위한 개괄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주요 내용은, 1. 일반개황, 2. 역사, 3. 예멘의 통일, 4. 정치, 5. 국내정세와 대외정책, 6. 경제, 7. 사회, 문화, 8. 예술, 9. 우리와의 관계, 10. 예멘 안내, 11. 예멘 관계 자료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본 연구집은 예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개괄서 형태로 출판이 되었고, 국내에서는 유일한 예멘 안내 책자가 되리라 믿는다. 또한 80쪽 분량의 [예멘] 책자는 비매품으로 제작되었으며, 많은 회원 여러분들의 이용을 바란다.


 

RIES 활동

Korea-Yemen Center 임원진 속리산 법주사 방문

RIES 부설 Korea-Yemen Center 임원진과 주한 예멘대사관 바이사(Abdul Aziz Ahmad Baeisa) 대사 일행은 한 예멘간 문화 이해 및 교류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지난 8월 24(토) 속리산 법주사를 방문하였다. 法住寺에서 慧光 住持스님의 親見과 함께 점심 공양이 이루어져 전통 사찰 음식에 관한 현장 실습도 겸하게 되었다. 특히 서원대의 성기서 교수의 자세한 문화재 및 사찰 규범 등에 대한 안내와 함께 김재희 양의 유창한 아랍어 통역은 문화재 관람에 새로운 장을 열며 한 예멘간의 민간교류 활성화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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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예멘 바이사 대사에게 감사패 수여

본원 홍성민 원장은 지난 8월 23일 수안보 조선호텔에서 개최된 RIES 하계학술대회에서 그동안 Korea-Yemen Center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과 조언을 해준 주한 예멘대사관의 바이사(Abdul Aziz Ahmad Baeisa) 대사에게 감사패를 증정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협조를 부탁하였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주한 예멘대사관 나세르(Naser Ali Haitham) 영사에게도 같은 내용의 감사패 증정이 있었다.


KBS1 라디오 '종합경제사회연구원' 소개

본원 홍성민 원장은 지난 8월 22일 10시 30분 KBS1 라디오의 생방송 "아침마당"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연구원의 소개와 "1996 RIES 하계학술대회" 개최의 배경과 의의에 관하여 대담을 나눴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1990년 통합이후 우리에게는 잊혀져 가는 '예멘 통일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모두에게 부탁하였다.


언론기관 "1996 RIES 하계학술대회"에 커다란 관심

지난 8월 23-24일 수안보 조선호텔에서 개최된 "예멘통일의 교훈과 한반도"라는 제하의 본원 연례학술대회인 "1996 RIES 하계학술대회"에 대해 언론기관은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KBS는 행사 당일 7시 뉴스, MBC는 9시 뉴스에 본원의 세미나를 상세히 보도함으로써 회원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이밖에도 조선일보(8월 20일), 한겨레신문(8월 27일), 기독교방송(8월 27일) 등이 본원의 세미나를 크게 다뤄줌에 따라 회원들은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하였다.

 

감사의 글

지난 8월 23-24일 수안보 조선호텔에서 개최된 "1996 RIES 하계학술대회"에서 物과 心의 양면에서 커다란 도움을 주신 주한 예멘대사관 바이사 대사님, 나세르 영사님, 김재희 양, 법주사의 혜광 주지스님, 원주스님, 을지병원 김종윤 부장님, 우삼의료기 허승욱 사장님, 풍산금속 김시근 이사님, KBS, MBC 관계자 여러분, 예총 이윤진 지부장님, 홍성국 한일건설 사장님과 미스 윤, 한국아랍친선협회의 이환의 회장님, 구미란 양, 수안보 조선호텔 박찬용 사장님, 제일종합인쇄사의 김용호 사장님, 모드란 오에이의 김종호 사장님, 청솔 엘리트학원의 최곤호 원장님, 청주대학교 김재관 예술대 교수님, 주성전문대 신광식, 홍양희, 이지경 교수님, 동국대 대학원의 조정래 군 그리고 먼거리 임에도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본원의 임직원 일동은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격려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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