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멘교류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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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Yemen Center

 제20호 2005년 11월  

한국예멘교류센타  Korea-Yemen Center

No. 20 Nov.,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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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اليمن! محبتي

 

아랍어

Mrs. Sheb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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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예멘   My love, Yemen!

쉬바 김(예사랑 대표)

싸나(Sana'a)는 예멘의 수도이다. 비행기를 타고 싸나 상공에 도착하면 두 가지 두드러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라비아의 지붕이라 불리는 싸나의 고원 지대와, 그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고도 싸나이다. 싸나 시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성벽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0세기경이다. 그후 붕괴와 확장을 거듭하면서 차츰 그 두께와 연륜을 더하였고 현재까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의 성벽중 서쪽의 것은 거의 파괴되었고, 동남북 세 방향의 성벽은 지금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남쪽의 성벽은 주바이리 거리를 따라 '바블 예멘'(Bab ul-Yaman; 예멘의 문이라는 의미)까지 이어진다.

바블 예멘의 안쪽에서 열리는 시장, '쑤끄 알 밀히'는 '소금 시장'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슬람 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상인들도 조합 형태를 취해 40여개의 다른 조합이 각각의 품목을 균점 관리한다.

싸나라는 말은 고대 사바 왕국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요새 지대'라는 뜻이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이름 역시 2,000년전의 왕국에서 유래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싸나는 노아(Noah)의 장자인 셈(Sem)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것을 기록한 사람은 10세기의 역사학자 무함마드 알 함다니(Muhammad al-Hamdani)이다. 그의 [알 이크릴]에 의하면 "싸나에 우물을 파고 궁전을 지은 것은 셈이다: 셈은 아라비아 반도의 북쪽 지중해변의 집을 떠나 남쪽으로 발을 옮긴다.

예멘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5월 예멘의 통합이 이루어졌을 때이고, 그 이후도 1994년 내전과 '완전 통일'에 이르는 과정 동안 우리에게는 커다란 관심거리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예멘의 본질을 이해하는데는 너무 나도 많은 거리감이 있었다. 1994년 Korea - Yemen Center를 설립은 '예멘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예멘에 관한 나의 관심은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남편이 1991년 통일부의 "예멘통일 조사단"의 일원으로 예멘을 방문하고, 예멘에 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 놓았을 때만 해도 솔직히 나는 예멘에 관심이 없었다. 그후 사재를 털어 1994년 예멘센터를 설립할 때는 오히려 강한 반대를 하면서 억지로 준비모임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때 대리대사 바이사의 도움은 실로 컸다. 그리고 차츰 그의 훈훈한 정에 이끌려 예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1998년 쌀레대통령이 중국 북경을 방문하게 되었고 나는 남편 덕으로 그곳에서 처음으로 예멘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베이징에서의 쌀레 대통령과의 만남은 내게 예멘(Yemen)을 사랑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예멘에 대한 나의 사랑이 영글기도 전 2001년 여름 주한 예멘대사관이 철수를 하게 되었고, 남편은 마지막으로 예멘 구경이라도 시켜주겠다는 속셈으로 나를 이끌고 예멘을 방문하였다. 처음으로 방문한 예멘, 특히 수도 싸나(Sana'a)의 정겨움은 나를 사로 잡았고, 이때부터 진정 남편의 예멘 사랑을 진솔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예멘 방문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남기면서 금년초까지 연결되었고, 지난해 Galal 고등교육부 차관의 방한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싸나대학의 부총장 Dr. Kibsi와의 다리를 새로 놓아준 것이다. 그리고 2005년 쌀레 대통령의 한국 공식 방문시 깁시 부총장은 대통령과 함께 서울에 왔다. 대통령은 친히 귀중하고 사랑스런 예멘 장신구를 몸소 챙겨 오셔서 직접 나의 목에 걸어 주셨다. 이 날의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대통령은 즉석에서 우리 부부를 "예멘통일 15주년 기념행사"에 초대해 주셨다. 커다란 민간외교의 차원을 넘어서 개인적인 영광을 온 몸에 받고 돌아온 나는 "한국과 예멘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묘안"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실이 "예사랑"(예멘을 사랑하는 사람들: People who love Yemen, HUBY)이라는 모임을 만들 게 되었다. (http://am-bc.com/yesarang/picture/loveyemen.htm)

이에 "예사랑"(HUBY)은 향후 괄목할 만한 "경제교류에 선행하여 문화교류의 선봉장"이 될 것을 다짐하며 뜻있는 몇몇이 모였다. 앞으로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한-예멘 관계에 작은 보탬이라도 주었으면"하는 바램이다. 새롭게 출발한 작은 모임이 큰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뜻있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 같은 모임이 탄생되도록 도와준 예멘 현지의 모든 사람들께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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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고도(古都), 하드라마우트(Hadhramout)

하드라마우트는 잘 알려진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부친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하드라마우트는 예멘의 18개 주(州) 가운데 한 주이며, 아덴만(灣)을 따라 오만의 도파(Dhofar) 지역까지 연결되는 남아라비아 반도의 넓은 역사적인 지역이다. 하드라마우트의 수도는 항구도시 무칼라(Al Mukalla)이며, 인구는 약 200만명정도이다.  

하드라마우트 사람들은 '하드라미'(Hadhramis)라 불린다. 하드라마우트에는 예멘의 전통적인 학문 중심지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 타림이 가장 유명하다. 수산물,  꿀, 라임,  담배를 수출하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주민 상당수가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동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사우디 아라비아 등지로 이주했다. 무칼라 이외에 500년이 넘은 고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시밤, 타림 등이 유명하다.

쉬밤은 옛날 하드라마우트 왕조의 중심도시중 하나이다. 하드라마우트 왕조가 번성할 때 동서의 교역품이 인도양의 무칼라를 통해 샤브와, 쉬밤 또는 타림(Tarim)으로 운송되었다. 기원 전후 하드라마우트 왕조의 수도는 샤브와(Shabwa)였다. 그러나 기원후 3세기경 힘야르 왕조(Himyarite)의 침입으로 샤브와가 파괴되면서 그 동쪽에 있는 쉬밤이 보다 번성하게 되었다. 9세기경의 이슬람 사원이 남아 있으며, 10세기경에 살았던 예멘의 역사가 무함마드 알-하산 알-함다니는 그의 저서 [알 이크릴]에서 쉬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쉬밤에서 사람들은 이슬람이전 시대의 공회당 건물 기둥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는 그림이나 글씨가 존재하는데, 그것의 역사성이나 상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쉬밤은 19세기 중반 하드라마우트 지역의 중심도시 역할을 사이윤에게 넘겨주게 된다. 전기와 수도의 공급을 통해 발전하는 현대 사회에서 벽돌로 만들어진 고층건물은 그 실용성에서 문제가 많았다. 대리석이나 돌로 만들어진 새로운 도시 사이윤에 사원, 시장 등 생활 터전이 생기면서 쉬밤은 역사 속의 도시로 전락하여 인구도 점차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재 쉬밤의 건축 역시 과거 하드라마우트 왕조의 것은 아니다.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8층 이상의 고층건물은 16세기에 만들어졌다. 이 도시를 설계한 사람은 다음 두 가지를 우선 고려했다: 홍수와 햇볕. 이 도시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 와디 지역이므로 흔하지 않은 홍수에 대비해야한다. 다른 하나는 뜨거운 태양을 막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건물이 높을수록 그늘이 많이 생길 뿐 아니라 지열을 막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통풍의 측면에서도 고층건물은 유리하다.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쉬밤은 '모래 위의 맨하탄', 또는 '세계 최초의 마천루'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것은 모래 위에 흰색의 고층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지 면적에 비해 건축 면적이 크기 때문에 건물이 높고 고층을 이룰 수밖에 없다. 도시가 옆으로 확장되어지지 않고 위로 올라간 형태이다. 개개의 건물은 그 자체 독자성을 띄고 있다. 그리고 개개의 건물 사이에는 담이 존재하지 않는다. 집에 정원은 생각할 수 없으며, 건물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나 있어 서로의 왕래가 가능한 구조다.

쉬밤은 코가반 산자락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400m 정도의 코카반 산에서 내려다보는 쉬밤의 조망은 일품이며, 주변에 넓게 펼쳐진 분지의 모습은 예멘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예멘의 도시 구조가 그렇듯이 쉬밤 역시 하나의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도시의 문으로 불리는 문을 통과하면, 왼쪽으로 두개의 조그만 가게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과거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파는데,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골동품에 가까운 것이다. 도시의 한 가운데에는 '하룬 알-라시드 사원'이 있으며, 그곳에 유일하게 기도나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유네스코는 1984년 쉬밤을 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하드라마우트라는 이름은 성경에서는 창세기 10:26-28의 욕탄(Joktan)dml 아들, 하자르마베쓰 (Hazarmaveth)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하드라마우트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hydreumata에서 유래되었거나 아니면 '애워 쌓여진' (종종 요새화 된) 외디(wadi)의 관수소(灌水所; watering stations)이다. hydreuma는 사람을 배치한 혹은 요새화 된 배수구(watering hole) 혹은 캬라반 루트를 따라 있는 근거지(way station)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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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통일의 실현과정」한글, 아랍어 표지

"금년 5월 22일이면 예멘 통일 제15주년을 기념하는 아시아 서쪽 끝에 위치한 예멘의 수도, 싸나에서 출발하여 긴 여정 끝에 아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 정치 지도부가 선의를 계속 가지고 있는 한, 통일의 날이 곧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로 시작되는, 이 책은 2005년 4월 26-27일 한국을 공식 국빈 방문한 알리 압둘라 쌀레 예멘대통령이 4월 26일 서울대학교에서 특별 강연한 자료이다.

쌀레 대통령은 당시 한국방문시 이 귀중한 텍스트를 아랍어로 완성하여 직접 가져오셨고, 아미라 김은 그 아랍어를 한국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번역하였다. Korea-Yemen Center는 이 소중한 책자가 특강에 참석하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조그만 소책자로 묶어 소중한 자료집으로 남기기로 하였다.

알리 압둘라 쌀레 예멘 대통령은 특히 이번 특강에서 "통일은 평화적으로 그리고 국민의 힘으로---" 라는 대목을 특히 강조하셨다. 분단 50년의 역사에서 아직 논의만 무성한 채 아직 통일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귀중한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본 센타는 한국어 특강내용과, 통일 관련 영문 document 및 아랍어 원문을 하나로 묶어 소책자로 편집하였다. 쌀레 예멘 대통령의 강연을 직접 듣지 못한 한국 및 예멘사람들에게 귀중한 책자가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는 예멘 현지의 대통령궁 관계자여러분, 싸나대학교의 Dr. Ahmed M. Al-Kibsi 부총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있었고, 한국어로 애써서 번역해준 Amira 김재희의 노력은 실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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