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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경제연구소 Korea Institute of the Mideast Economies

     제17호, 2002년 12월

是求事實   Seek after Truth, Based on Facts

No. 17, December, 2002

 

 

 

Forward

이라크 사태와 한반도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면전을 준비하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의 중유 공급 중단에 맞서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 봉인을 해제하면서 부시행정부의 '원-플러스(One-Plus)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 전략은 클린턴 행정부의 '윈-윈(Win-Win)전략'을 대체한 것으로 '윈-윈'이 두 개 전쟁 동시 수행 전략이었다면 '원-플러스'는 '한 개 전쟁 압도적 승리 전략'이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공세에 북한이 '강경 대응'으로 맞서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대북한 정책도 경제봉쇄조치를 포함한 초강경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왜, 미국은 이라크, 이란 및 북한을 '악의 축'(Axis of Devil)로 정해놓고 이라크를 우선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 답은 간단명료하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이 현대의 전쟁은 경제전(Economic War)화 하는 현상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9·11 미테러사태이후,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중동지역에서 전개될 석유이권을 중심으로 한 경제전의 전초전이며, 그 대상은 이라크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경제질서 개편과정에 중동지역이 우선 대상국으로 된 것이며, 그 이유는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패권다툼이다. 그렇기에 이라크가 이란이나 북한보다는 선제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다.

Dr. Seong Min Hong

(President, KIME)

영국과 미국은 1970년대 국유화이전까지 이라크 석유산업을 지배했으며, 특히 영국의 BP는 이라크석유(IP) 주식의 약 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쟁과 1991년 걸프전쟁, 그리고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경제제재로 인해 손상된 석유부문 재건을 위해 최근 프랑스와 러시아로 선회, 지원을 받아오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프랑스, 중국의 주된 관심사는 '후세인 이후' 들어설 이라크 차기정부가 현 정부와 체결한 석유관련 합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있다. 특히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루코일社는 1997년 향후 23년간 35억 달러에 달하는 이라크 서부 쿠르나 유전개발 계획에 서명, 이라크내 최대 지분을 갖고 있으며, 프랑스의 토털피나엘프도 약 200억-300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돼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이눈 유전 탐사협상을 진행중이다. 중국석유공사 역시 이라크 정부와 걸프전 당시 상당한 타격을 입은 루마일라 유전지대 일대의 개발계획에 협정을 체결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프랑스, 러시아 및 중국이 UN에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제동을 거는 숨은 배경이 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의 의도는 중동의 석유자원을 장악하려는 숨은 의도가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전쟁이라기보다는 중동에서의 질서 재편을 위한 전초전"이라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이란이 미국의 공격대상국가가 될 확율이 높다. 만일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이라크와, 이란을 장악하게 되면 에너지에 관한 한 세계를 제패할 수 있고, OPEC도 그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그 이후에는 아시아에서 미·중(America-China)의 에너지 시장 쟁탈전도 예견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우선순위에서 이라크에 밀리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의 상황이다. 미국은 가급적 북한에 대해 전쟁상황은 피할 것으로 기대가 되지만, 그 대안으로 경제제재조치를 포함하는 대북강경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짙다. 지난 5년간 실시된 '햇볕정책'(Sunshine Policy)도 문제려니와 그 동안 쏟아부은 대북 경제협력에도 큰 차질이 우려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한에 달려있다.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단계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반도 전선은 중동전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인적, 물적 피해가 초래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한반도에 전쟁이 없 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Human Study

 사담 후세인(Sadam Hussein), 그는 누구인가?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면전을 준비하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의 중유 공급 중단에 맞서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 봉인을 해제하면서 부시행정부의 '원-플러스(One-Plus)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 전략은 클린턴 행정부의 '윈-윈(Win-Win)전략'을 대체한 것으로 '윈-윈'이 두 개 전쟁 동시 수행 전략이었다면 '원-플러스'는 '한 개 전쟁 압도적 승리 전략'이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공세에 북한이 '강경 대응'으로 맞서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대북한 정책도 경제봉쇄조치를 포함한 초강경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왜, 미국은 이라크, 이란 및 북한을 '악의 축'(Axis of Devil)로 정해놓고 이라크를 우선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1979년 이라크의 대통령이 된 후세인은 1937년 바그다드 북부 티그리트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후세인 생후 8개월만에 고아가 되었으며, 이라크 왕정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영국정부에 반발한 인물이었던 군장교였던 외삼촌 카이랄 타르파 슬하에서 자랐다. 1941년 반영 쿠데타에 참가하다 투옥된 외삼촌의 5년간 투옥 생활은 어린 후세인에게 민족주의에 대한 강한 열정을 심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세인은 9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못했으며, 바그다드 육군사관학교에서도 성적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입학이 거절되었다. .

사담 후세인(1937 -   )

Photo by BBC News

후세인은 20세가 되던해인 1957년 바쓰(Ba'ath) 사회주의당에 입당하여 바쓰당이 주도한 이라크의 아브둘 카림 카셈 총리 암살사건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여 부상을 입고 시리아·이집트 등지로 피신했다. 1962-63년 카이로법과대학을 다녔으며, 1963년 바쓰당이 이라크에서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바그다드법과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해에 바쓰당 정권이 몰락하자 그는 체포되어 이라크 감옥에서 여러 해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1963년 2월 바쓰당의 쿠데타 성공으로 카심 정권은 몰랐했고, 후세인은 바그다드로 돌아와 바쓰당 민병대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신바쓰당 정권이 전복되는 바람에 2년간의 감옥생활을 다시 하게된다. 1968년 바쓰당이 쿠데타에 재성공하자 후세인은 군사평의회 부의장에 오르게 된다. 그후 국가원수인 아흐마드 하산 알 바크르 대통령과 함께 권력을 장악하고 1972년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1979년 정부의 개방을 주장하던 후세인은 그해에 하싼 바크르가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후 그는 혁명사령평의회 의장, 총리 및 기타 직위를 겸임했다. 대규모 비밀경찰을 창설하여 그의 지배체제에 대한 국내의 반발을 완전히 무마시켰으며, 국민들로 하여금 도처에서 그를 개인 숭배하도록 만들었다.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목표는 아랍 세계의 지도국으로서 이라크가 이집트를 대신하는 것이었으며, 걸프만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석유 수익을 이용하는 것 등이었다. 후세인은 아랍세계의 맹주가 되려는 강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었다. 후세인의 가족으로는 부인과 2남 3녀가 있다.

미국의 지원하에 1988년 이란과의 전쟁이 끝날 무렵 이라크는 세계 4위의 군사대국으로 성장했다.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측면 지원하던 미국 정부가 이라크의 전후 복구 사업에도 관심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은 (정권의 돈줄인) 석유주권을 포기할 수 없었고, 투자협상은 결렬되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미국이 걸프만에 개입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 걸프전이 발발하였고, 이라크와 미국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의 원수가 된 것이다.

금년초 이라크 공보부는 '사담 후세인: 위대한 교훈, 투사와 환자 및  성전사(聖戰)의 전사들을 위한 지침'이라는 후세인 어록(語錄)을 발간하여 배포했다. 그의 어록에는 ○ 분노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지 말 것, ○ 패배한 적에게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할 것, ○ 선행을 실천할 것, ○ 공정하게 판결할 것, ○철저히 계획할  것, ○ 타인의 비밀을 유지할 것, ○ 그들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쉬운 길에 현혹되지 말라. 가시밭길이야말로 출세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KIME 편집자주)


Country Study

 이라크 Republic of Iraq

1. 일반개황

우리에게 '천일야화'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이라크공화국(Republic of Iraq)은 4대문명의 발상지인 '江사이의 땅'(Land of two Rivers)이라는 의미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평야를 끼고 유프라테스江과 티그리스江이 국토의 중심을 흐르고 있다.

이라크는 수도를 바그다드(Baghdad)로 하고 면적은 44만 2,000km2로 한반도의 약 2배에 달하는 국토 면적을 가지고 있다. 원래 이락(Al Iraq)이라는 말은 아랍어로 '절벽'이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말로서 유프라테스江 서부의 시리아, 요르단 및 사우디 아라비아로 연결된 高原이 盤石을 세운 듯 한 절벽으로 이루어졌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바그다드(Baghdad)도 '神에 의해 세워졌다'는 페르시아어의 어원을 갖고 있으며, 아랍인들은 '평화의 도시'라 부르고 있다. 이라크는 동쪽으로 이란, 서쪽에는 시리아, 요르단, 남쪽은 사우디와 중립지대, 쿠웨이트, 그리고 북쪽지역은 터어키와 인접하고 있다.

이라크는 대부분이 내륙지대이다. 동부와 북부는 산악지대이고, 서부와 남부는 사막지대 및 거친 광야로 해발 약 500-1,000m에 위치한 고원지대이며, 국토의 중심과 걸프灣으로 연결되는 동남부지역은 메소포타미아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유프라테스江과 티그리스江은 에덴(Eden) 동산의 유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河口 '꾸르나'(Qurna)에서 합류되며, 샤트 알 아랍(Shatt al-Arab) 수로를 통하여 걸프灣으로 이어진다.

총인구는 2,302만명(1999)이며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3.9%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유프라테스江과 티그리스江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평야에 밀집되어 있으며, 바그다드에 약465만명, 바스라에 약62만명, 모술에 약57만명, 키르쿡에 약54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언어는 아랍어(Arabic)가 공용어(78%)이며, 쿠르드어(Kurdish)도 인구의 18%정도가 사용한다. 하지만 이라크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영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특히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영어의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종교는 이슬람(순니 62%, 쉬아 35%)이 국교이며, 기독교 및 기타 종교도 약 3%정도 존재한다. 이라크는 多民族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랍인이 77%, 쿠르드인이 19%, 그 밖에 투르크인, 페르시아인, 앗시리아인 및 기타가 각각 1%를 차지하고 있다.

 2. 정치약사

이슬람이 부흥하기이전, 이라크는 이미 3000년이상 문명을 경험하였다. 수메르인이 Nibeveh를 패퇴시킨 BC 612년 까지 Elamites, Amorites, Mittani, 힛타이트 및 앗시리아인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 당시 이라크는 Nebuchadnezzar(604-538 BC)하에서 비옥한 초생달(Fertile Crescent) 지역의 많은 부분을 포함하는 신바빌론(neo-Babylon) 국가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바빌론을 사로잡은 페르시아에 의해 곧 멸망하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중 하나였다. 이 지역은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아랍 및 오스만터키에 의해 지배되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유프라 티그리스江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한 이라크는 북부지역은 고대 앗시리아제국이며, 남부는 바빌로니아제국이 위치했던 역사적 古都로서 이미 기원전 4000년전부터 인류의 문화가 꽃을 피웠던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지역은 기원전 2000년-500년에 이르는 동안 바빌로니아제국이 번성하였고, 그후 페르시아, 몽고, 오스만제국 등의 통치를 받아오다가 제1차 세계대전중에 오스만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아 오다가 1932년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였다.

3. 한국과의 교역 관계

교역량(1999년, 단위: 1000달러) : 수출 9,608  수입 151,735  무역수지 -142,128

한국의 대 이라크 주요 수출품 : 기계류, 폴리에스터, 면직물

한국의 대 이라크 주요 수입품 : 원유(과거) <자료: http://hopia.net/kime/nation/nat_irq.htm>

 


KIME Statistics

<표 1> 대륙별 원유도입 추이

                       (단위 : 백만배럴, %)                                           

구  분

1997

1998

1999

2000

2001

중  동

645.7

(73.9)

622.0

(75.9)

632.1

(72.3)

686.9

(76.8)

661.6

(77.0)

아시아

121.4

(13.9)

113.5

(13.9)

93.5

(10.7)

112.7

(12.6)

130.0

(15.1)

아프리카

82.1

(9.4)

61.9

(7.6)

109.6

(12.5)

67.7

(7.6)

39.2

(4.6)

아메리카

23.6

(2.7)

17.6

(2.1)

27.9

(3.2)

21.4

(2.4)

25.5

(3.0)

유  럽

0.7

(0.1)

4.1

(0.5)

11.1

(1.3)

5.2

(0.6)

3.1

(0.4)

합  계

873.4

(100)

819.1

(100)

874.1

(100)

893.9

(100)

859.4

(100)

                                          자료: 산업자원부

                                         주): ※ (    )내는 점유비중임

 

<표 2> 한국의 석유수요 전망

                                                                                                           (단위 : 백만B, 백만TOE, %)

구   분

2001

2002

2006

연평균 증가율

2002

02∼06

 석유수요

744

759

802

2.0

1.4

 - 경질유 비중

68.7

68.9

70.3

2.4

1.9

 - 연료유 비중

65.9

65.6

65.6

1.6

1.4

 총1차에너지

197.8

205.2

242.6

3.7

4.3

 석유의존도

50.8

49.9

46.5

-

-

                                           자료: 에너지경제연구원

 

<표 3> 세계 경제성장 전망

                                                                                                                                                                                       (단위 : %)

 

1992∼2000

2001

2002

2003∼2007

IMF

IMF

IMF

WEFA

IMF

WEFA

전  세  계

3.5

2.5

2.8

3.6

4.3

3.4

선  진  국

3.5

1.2

1.7

3.2

3.1

2.8

개  도  국

4.8

4.0

4.3

5.1

5.9

5.4

체제전환국

1.8

5.0

3.9

4.5

4.9

5.3

                                   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 2002, 2002. 4 및 DRI-WEFA, World Economic Outlook, 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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