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東 消 息 KIME Newslet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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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경제연구소 Korea Institute of the Mideast Econom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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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민국(Dae ~ Han Minguk)
한-일간에는 앞으로 할일이 많다. 세계 경제의 블록화 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동북아 경제협력을 해야 하며, 시베리아 철도 연결을 위한 협력, 더 나아가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중국과 더불어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이제 한-중-일 관계는 아시아권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야를 넓혀 더 넓은 세계와의 경쟁에서 협력하는 길만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중동진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그 가능성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타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월드컵은 한-중동 관계에서도 새로운 신기원을 이루어냈다. 불행하게도 중동의 아랍 국가들이 성적이 부진하던 차에, 터키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주심을 맡은 한국인의 판정문제로 양국관계는 살얼음을 건너는 심정으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끈질긴 인내와 노력으로 6, 25 전쟁 때 맺은 혈맹관계(血盟關係)를 다시 부활 시켰다. 한국과 터키는 무수한 역경을 뒤로한 채, 기적(奇蹟)처럼 3-4위전에서 형제(兄弟)로 만났다. 그리고 이 만남 자체가 세계의 커다란 뉴스가 되었다. 대구에서 열린 3-4위전에서 터키는 FIFA 월드컵 사상 가장 빠른 골 중 하나를 득점했고, 결국 한국에 2-3의 우승을 거두었다. 하칸 수쿠르가 경기 시작 후 불과 11초 만에 얻은 선제골을 시작으로 일한 만시즈가 두 골을 연신 터뜨리며 공동개최국인 한국에 대한 우승의 기반을 다졌다. 아쉬웠지만 한국인은 즐거워했고, 터키와는 우정을 남긴 채,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고 있었다. ‘Dae ~ Han Minguk’이라는 말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나타난 새로운 세계어(世界語)가 되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 네 단어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 왔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의 노력은 성공을 했고, 이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를지라도 ‘Dae ~ Han Minguk’하면 쉽게 KOREA를 기억해 낼 것이다. 이 네 마디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우리의 ‘붉은 악마’ (Red Devils)들은 폭염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모두가 하나 되어 대~한 민국 짝, 짝, 짝을 전 세계에 알렸다. 남녀가 없었고, 노소가 없었다. 그리고 밤낮이 없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한국인이 얻은 소중한 교훈은 자신감이다. ‘Can Do Spirit'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우리는 금(金) 모으기로 IMF의 터널을 통과했다. 바로 그 정신(情神)이다. 잘 아는바와 같이 한국은 자원(資源)이 거의 없지만, 유능한 인간자원(Human Resources)은 풍부한 나라이다. 그들에게 자신감이 되살아날 때, 한국인은 분명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족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외치고 싶다. 대~한 민국(Dae ~ Han Minguk) 짝, 짝, 짝 ---
한국과 터키 4강에서 형제애로 만나다. 한국이 8강전에서 스페인을 물리치고 승리한데 이어 터키도 세네갈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하자, 터키인들은 ‘형제 국가인 한국과 터키가 함께 4강 신화를 이룩했다'며 열광했다고 교민들이 전했다. 터키 TV방송들은 한국 교민과 터키인들이 서로 두 나라를 응원하는 모습을 취재해 보도했으며 한국식당측은 터키 손님들에게 한국음식과 맥주 등을 무료로 대접하기도 했다. 터키인들은 ‘형제국가인 한국과 터키는 비슷한게 너무 많다'며'한국이 월드컵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처럼 50년만에 월드컵에 나간 터키도 역사를 창조했다'고 두 나라간의 일체감을 강조하고 있다. 터키인들은 특히 이날 경기에서 ‘한국의 이운재 골 키퍼가 선전했듯이 터키도 골 키퍼의 선방으로 승리를 얻어냈다'며 '한국과 터키는 정말로 한 배를 탔다'고 강조했다. 휴리예트지를 비롯한 터키신문들은 ‘한국이 역사를 창조했다'며 한국의 4강 진출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과 터키가 자신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결과 이 만큼의 역사를 창조했으며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연합뉴스, 2002/06/22 23:51) 대구에서 있었던 3-4위전에서 투르크 전사 터키가 한국에게 이번 대회 두 번째 패배를 안겨 줌에 따라 동화 같던 축구의 전설도 끝을 맺었다. 불굴의 터키는 개최국 한국과 열광적인 홈팬들의 응원에도 주눅이 들지 않았고, 반세기 만에 진출한 월드컵 본선에서 3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한편 터키의 하칸 수쿠르는 경기 시작 11초만에 골을 성공시켜 FIFA 월드컵 역사상 최단 시간 득점을 기록함. 이전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은 1962년 대회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바클라프 마세크가 보유하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이 아쉽게 패하긴 했지만, 이을용이 기록한 골이 베스트 골로 기록되는 등 한-터키전은 후회 없는 한판의 경기였다.(아래 표는 양국의 경기전적과 출전선수를 소개하고 있다.)
<한-터키의 역대 전적 및 출전선수>
(자료: FIFA World Cup Yahoo!) 2002 FIFA World Cup FIFA 월드컵™은 단일종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행사이다. FIFA 월드컵TM 은 20세기 초 올림픽운동, 특히 1920년 올림픽대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대회의 축구경기에는 남미, 아시아 및 아프리카를 포함한 14개국이 참가했고, 1928년 암스텔담 올림픽에는 17개국이 참가했으며, 이때까지 FIFA에서 주관하는 축구대회는 없었다. 따라서 1920년 5월 26일 FIFA는 독자적인 축구대회 개최계획을 발표함으로써 FIFA 월드컵™이 탄생하였다. Jules Rimet회장은 1926년 FIFA 총회에서 ' FIFA 회원국 축구협회가 파견하는 모든 국가대표팀이 참가할 수 있는 제1회 FIFA 월드컵™을 개최한다.' 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1930년 제1회 FIFA 월드컵™의 개최권은 우루과이에 주어졌다. 유럽의 전후복구사업과 대공황 사이의 기간에 열린 이 대회는 개최 2개월을 앞두고서도 참가신청을 한 유럽국가는 한 나라도 없었다. Jules Rimet 회장의 적극적인 교섭의 결과 유럽의 4개국을 포함 13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FIFA 월드컵™ 첫 대회는 1930.7.13 - 7.30.까지 우루과이의 3개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올림픽 중간 연도를 택해 4년에 한 번씩 개최키로 한 FIFA 월드컵™은 프랑스에서 열린 제3회(1938년)대회 이후 12년 동안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전쟁의 종식과 함께 1950년 제4회 대회가 브라질에서 다시 개최되었다.(자료:KOWOC)
Period : May 31 ~ June 30, 2002 Venues: Ten cities in Korea and Japan, respectively Korea : Seoul, Incheon, Suwon, Daejeon, Daegu, Jeonju, Gwangju, Ulsan, Busan, Seogwipo Japan : Sapporo, Miyagi, Ibaraki, Saitama, Yokohama, Niigata, Shizuoka, Osaka, Kobe, Oita
Expected number of participants 13,000 (32 teams, FIFA representatives, media etc.) Type of matches
Preliminary matches (March 2000~November 2001) Participants from 198 nations 32 teams to advance to the final competition
Number of participants for the finals per continent
Final competition : 64 matches (32 matches each in Korea and Japan) First round : League (Four teams in 8 groups)
Major events Preliminary Draw : Dec. 7, 1999 (Tokyo, Japan) Final Draw : December 2001 (Busan, Korea) Workshop for the 32 Final Teams : March or April 2002 (Japan) Referee Course : April 2002 (Korea) FIFA Congress : 2~3 days before the opening ceremony of the World Cup (Korea) Opening Ceremony : 30 minutes to 1 hour before the opening match, May 31, 2002 (Seoul, Korea) Opening Match : May 31, 2002 (Seoul, Korea Cultural and Arts festivals : Organized by the hosting cities Final Match : June 30, 2002 (Yokohama, Japan)
Expected spectators: 3.5 million (in both countries) TV spectators 42 billion (accumulated) (32 billion in U.S.A World Cup, 37 billion in France World Cup
사진으로 보는 월드컵
양손에 태극기와 터키 국기를 들고 있는 한국 응원단
붉은 악마(Red Devils) 응원단. (자료: FIFA World Cup Yah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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