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레이트   United Arab Emirates

UAE를 구성하는 일곱 개의 Emirate는 주로 Abu Dhabi의 대규모 원유 매장량과 선택적인 경제전략의 일환으로 두바이의 상징적인 투자 때문에 주변 이웃 국가들보다는 훨씬 커다란 압력을 감내 하고 있다.

지  도

 

 


1. 일반개황

세이크 자이드(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 대통령이 25년동안 이끌어 오고 있는 UAE는 비교적 평온한 정정(政情)을 유지하면서 석유산업을 주도적으로 육성하는 걸프만의 OPEC 산유국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즉 UAE는 7개의 에미레이트(emirate; 에미레이트는 세이크와 같이 아랍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로 우리말로는 족장, 토후 및 수장으로 번역되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원명을 그대로 사용하였음)가 연합하여 만든 공식 명칭 그대로 United Arab Emirates의 약자이다.

다시 말하면 UAE는 인구 약93만명의 아부 다비(Abu Dhabi), 67만명의 두바이(Dubai), 40만명의 샤르자(Sharjah), 15만명의 라스 알 카이마(Ras al-Khaimah), 12만의 아즈만(Ajman), 4만의 움무 알 쿠와인(Umm al-Quwain) 및 15만의 후자이라(Fujairah) 등 7개의 에미레이트들이 연합하여 만든 국가이다. 현재는 수도가 위치한 아부 다비의 에미레이트가 대통령으로 UAE를 대표하고 있으며, 상업도시로 크게 발돋움한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세이크 막토움(Sheikh Maktoum bin Rashid al-Maktoum)이 수상직을 맡고 있다.

UAE는 오만 국경으로부터 카타르의 코르 알 오다이드(Khor al-Odaid)까지 650km의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7개의 에미레이트로 형성되어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동북부에 위치한 UAE는 걸프만을 따라서 북서쪽으로는 카타르, 동남쪽으로는 오만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6개의 에미레이트는 걸프만의 해안에 위치한 반면, 7번째 에미레이트인 후자이라는 오만만(灣)에 닿을 수 있는 반도의 동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연근해 섬과 모래톱과 함께 수심이 낮은 바다로 이루어져 있고, 해안선같은 모래뚝과 소규모 만(灣) 등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지중해와는 대조적으로 이곳에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 또한 걸프만은 비교적 풍부한 양의 어족(魚族)을 갖고 있기에 수산업이 매우 발달하였다. 아부 다비가 위치하고 있는 남서지역은 사우디와 사막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동부지역은 라스 알 카이마를 중심으로 해발 2,000m의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농업이 가능한 지역이다. UAE에서 농업이 가능한 지역은 라스 알 카이마와 후자이라 두지역으로 채소류가 풍부하게 경작된다.

UAE의 총면적은 남한 면적과 비슷한 90,559km2이며, 총인구는 240만명 정도밖에 안되는 인구 소국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수도인 아부 다비와 두바이에 모여 살고 있다. 기후는 아열대성 기후로 여름에는 50도까지 올라가며, 겨울에도 몇 주일을 제외하고는

습도가 매우 높다(85% 수준). 동절기에는 온도가 10도까지 하락하며 주간에는 보통 20-30도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기온은 모든 지역이 높은 편이며, 습도는 해안지대와 사막지대간에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강우량은 평균 50mm이하이지만, 산악지대는 연평균 75mm(알 카이마의 경우 150mm) 정도이다. 강우는 매우 불규칙한 편이며, 주로 1월과 2월에 비가 많이 내리며 7월부터 9월까지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UAE 국민들은 각기 다른 직업에 종사해 왔다. 두바이 주민들은 무역업에 종사해 왔고, 샤르자와 라스 알 카이마 주민들은 수산업에 그리고 후자이라 주민들은 농업과 목축업에 각각 종사해 왔다. 하지만 1960년대 석유개발과 함께 이들의 생활패턴은 크게 변모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부 다비로, 석유발견이전에는 가장 가난한 에미레이트였는데 현재는 가장 부유한 에미레이트로 탈바꿈하였다. 현재는 농업 2%, 공업 56% 및 서비스업 42%의 산업구조를 보이고 있는 UAE는 전통적 생활 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여전히 예의를 중시하고 외국인에게 친절한 관습은 잘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주민들은 아직도 유목민 아랍족이며 공용어는 대부분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아랍어이다. 그러나 현재는 비아랍 이주 노동자들 때문에 아랍족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해안도시에는 수많은 이란인, 인도인, 파키스탄인, 발루치인 및 흑인들이 있다. 흑인들은 수세기 동안의 노예무역 전성기 동안 아프리카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원주민 대부분은 이슬람을 믿는 순니파 무슬림들이다.

 


2. 정치약사

16세기초 걸프지역에서 포르투갈인들의 상업적 독점권은 유럽국가들, 즉 처음에는 네델란드 그리고 다음에는 영국에 의해 도전받고 있었다. 1650년 오만으로부터 포르투갈이 철수하자마자, 네델란드와 영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19세기 영국인이 도착했을 때 UAE는 협상해안(Trucial Coast)으로 알려진 지역을 7명의 독립된 에미레이트들이 연합하여 통치하고 있었다.

16세기초 포르투갈의 걸프만에 대한 독점적 상업적인 지위는 동부 무역에서 이윤을 분할하려는 유럽의 무역업자 -첫 번째는 네덜란드 나중에는 영국에 의하여- 들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었다. 동부에서 포르투갈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였고, 1650년 그들은 모든 아랍의 해안에서 세력을 잃고 오만으로 퇴각하였다. 그후 이 지역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각축이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네덜란드가 우세하였으나, 1766년 영국이 인도에 대한 패권을 강화함으로써 네덜란드 세력은 실질적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걸프만에서 유럽국가들과 아랍의 해적 행위는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매우 왕성하게 전개된다. 까와씸(Qawasim)이라는 아랍의 해상 부족들이 권한을 휘둘렀고 걸프만의 모든 아랍 해안에 패권을 장악한 와하비(Wahhabi) 일당에 의한 약탈행위가 자행되었을 때인 19세기초에는 불법 행위가 고조에 달했다. 영국기를 게양한 선박에 대한 해적들의 공격은 결과적으로 1818년 라스 알 카이마의 해적 사령부와 240km에 이르는 해적해안(Pirate Coast)의 항구에 대한 공격을 유도하였다. 1820년 해적행위와 노예무역을 억제하기 위한 일반 평화협정이 영국과 걸프만 아랍 부족국가들간에 이루어졌다. 이 조약은 해적해안과 바레인의 주요 세이크(Sheikh)들에 의해 서명되었고, 조약의 시행을 위해 영국의 강력한 함대가 라스 알 카이마에 주둔하게 되었다.

1820년 일반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이곳에는 단지 5개의 '협상국가'(Trucial State)가 있었다. 1866년 샤르자의 최고 세이크가 사망하자, 그 영역은 그의 네 아들의 통치지역으로 분할되었고 샤르자, 라스 알 카이마, 디바(Dibba) 및 칼바(Kalba)에 독립된 분가(分家)를 형성하였다.

19세기말이 되자 프랑스, 독일 및 러시아도 걸프만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92년 영국은 Trucial 통치자들과 각각 분리되었지만 본질적으로 내용은 동일한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로써 이 지역은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52년 칼바의 통치자는, 후자이라의 통치자가 했던 것처럼, 기존의 영국과 Trucial 국가간에 존재하는 모든 협정을 받아 드림으로서 칼바는 샤르자에 병합되었다.

드디어 1952년 영국의 충고로 두바이에서 7개의 모든 통치자들이 최소한 1년에 두 번 만난다는 조건으로 협상위원회(trucial council)를 설립하였다. 이의 주된 목적은 국가연합을 주도할 수 있는 행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공통적인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편 1960년대 중반 석유의 상업적 생산은 아부 다비에게 발전을 위한 커다란 기회를 제공하였다. 1928년이래 아부 다비의 통치자인 세이크 샤크부트(Sheikh Shakhbut bin Sultan an-Nahayan)가 폐위됐을 때인 1966년 8월 개발에 대한 장애는 제거되었다. 왕가의 샤크부트는 그의 젊은 동생 세이크 자이드(Sheikh Zayed bin Sultan)로 대체되었다. 이와 같은 아부 다비의 역사는 엄청난 부(富)의 축적으로 급격히 변모한 한 사회의 전형적인 예가 되고 있다. 1966년 이웃의 두바이에서 석유가 발견되었고, 두바이 또한 석유로 인해 거대한 수익을 얻게 되었다.

영국 세력의 철수로 인한 연합(federation) 형성의 최초 제안은 바레인, 카타르 및 7개의 Trucial State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보다 크고 발전된 이들 국가들은 궁극적으로 분리 독립을 선택하였다. 1971년 12월 1일 영국은 Trucial State과의 모든 기존의 협정을 종결하였다. 그 다음날 아부 다비, 두바이, 샤르자, 움무 알 꽈이완, 아즈만, 및 후자이라는 등 7개국의 에미레이트는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United Arab Emirates)을 형성하였고, 영국과 하나의 '친선협정'(treaty of friendship)을 맺었다. 이 연합은 공식적인 헌법이 작성될 수 있는 5년후에 만료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임시 헌법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임시 헌법은 계속 갱신되었다. 라스 알 카이마는 이란이 장악하고 있는 걸프만에 두 개의 Tumb 섬에 대하여 영국이든 아랍 국가이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힌 1972년까지 이 연합에 참가하지 않았다. 아무튼 UAE는 1971년 '아랍연맹'과 UN의 회원국이 되었다. 독립하자마자 아부 다비의 통치자 세이크 자이드는 UAE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1958년이래 두바이의 통치자인 세이크 라시드(Sheikh Rashid bin Said al-Maktoum)는 부통령이 되었고, 그의 맏아들 세이크 막토움(Sheikh Maktoum bin Rashid) 왕자가 수상이 되었다. 비록 아랍국가중 가장 보수적인 국가중 하나였지만, UAE는 1973년 10월 전쟁시 아랍주의에 상당한 지원을 하였으며, 석유의 생산감축과 보이코트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UAE는 미국에 대해 석유의 금수조치를 단행한 최초의 국가가 되기도 하였다.

1990년 8월 쿠웨이트 침공으로 야기된 걸프전 때에도 UAE는 다른 아랍국가들과 함께 이라크의 침공에 대한 저항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모든 국민들에게 6주동안의 군사훈련을 위해 군대에 입대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라크의 침공을 반대하는 군대는 에미레이트에서 군사시설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한편 두바이의 통치자인 부통령 겸 수상 세이크 라시드는 1990년 10월 사망하였다. 그의 직위는 그의 아들인 부수상 세이크 막토움(Sheikh Maktoum bin Rashid)에 의해 두바이의 통치자로서 승계 되었다. 이러한 UAE의 정치 약사는 <표 >와 같다.

■BC 3000년경 : 수메르시대에 교역과 상업의 중심지

■16세기초: 포르투갈인 독점적인 상업활동 전개

■1622년 : 영국의 지원하에 샤 압바스(Shah Abbas) 포르투갈 세력 축출, 그 이후 영국이 주도권 장악

■1650년 : 포르투갈인 아라비아해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오만으로 철수

■1820년 : 영국과 대형 선박과 요새 신축을 금지하는 일반평화협정(General Peace Treaty) 체결

■1853년 : 영국과 항구적 해상평화조약(Perpetual Maritime Truce Treaty) 체결

■1892년 : 협상해안(Trucial Coast) 영국의 보호령이 됨, 영국은 국방 및 외교정책을 통제

■1903년 : 영국과 인도간 두바이 정기항로 개설로 두바이 근대화 시작

■1932년 : 영국의 British Imperial Airway사 샤르자에 공항 개설, 원유의 매장 가능성 확인

■1952년 : 에미레이트들 Trucial States Council 창설

■1958년 : 아부 다비에서 최초로 원유 발견

■1965년 : 아부 다비에 방위군 창설

■1971년 :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아랍에미레이트연합, UAE(United Arab Emirates)라는 이름으로 국가 수립(12월 2일), 아부 다비의 지도자 세이크 자이드(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가 연방

의 대통령이 됨

■1979년 : 두바이의 지도자 세이크 막토움(Sheikh Maktoum bin Rashid al-Maktoum) 수상에 임명됨(6. 25)

■1981년 : UAE 중앙은행(UAE Central Bank) 설립

■1991년 : 세이크 자이드(Sheikh Zayed) 1971년이후 대통령에 연임됨

■1994년 : 미국(7월) 및 프랑스(9월)와 안보조약 체결

■1996년 : UAE 탄생 25주년(세이크 자이드 아부다비의 지도자가 된지 30년)


3. 산업 경제

1) 투자환경

2) 주요 경제지표

3). 경제 동향

4) 석유산업

1. 석유산업의 역사

2. 석유산업과 석유회사



3). 경제 동향

석유발견이전 협상국가(Trucial State)를 형성했던 7개 에미레이트의 경제는 진주채취, 수산업, 무역 및 소규모 농업이 기반이었다. 19세기 이 지역과 관계를 갖게 된 서구에 의해 규정된 해적행위 또한 해안 부족들을 위한 중요한 소득의 근원이었다.

아부 다비에서 최초로 석유가 발견되었을 때인 1958년과 특히 석유가 최초로 수출되었을 때인 1962년이래 이 지역의 경제는 전격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UAE의 연합정부 창설을 주도한 1971년 독립이후 그리고 1973/4년 가입한 OPEC에 의한 유가상승에 따라 상당히 빨라졌다. 1988년 World Bank의 추계에 따르면, UAE의 1인당 GNP는 15,720달러를 기록하였고, 1995년 현재 22,020달러로 크게 증대되었다. 1989년 전반기동안 유가의 인상과 걸프전이후 지역경제의 확대는 UAE 경제의 장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UAE의 경제는 유가하락과 달러화 가치하락으로 1980년 중반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9년이후 유가회복과 이란-이라크 전쟁이후 중개무역의 증대로 10%이상의 고도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2차산업과 3차산업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UAE의 경제는 석유부문(1994년 기준 석유산업은 GDP의 33.7%, 전체 수출의 51.8%)에 커다란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건설부문이 성장의 주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도 석유수입(收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종합적인 개발정책의 부재와 기술인력의 부족은 UAE 경제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UAE는 달러에 대한 디르함(Dh)이 Dh3.671로 고정됨으로써 원유수출과 석유수입 감소의 압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일량 220만 바렐의 OPEC 쿼타는 1995년이후 차츰 초과되고 있으며, 18달러수준의 원유를 17.30-17.90 달러 수준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현재 UAE의 지탱 가능한 산유량은 일량 260만 바렐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석유수출로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매년 20-3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던 UAE는 1993-94년 국제 유가하락으로 경상수지가 10억대 수준으로 감소하기도 하였으나, 1995년 32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회복하였고 향후에도 커다란 유가의 변화가 없는 한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가 기대된다. 1995년말 현재 UAE의 대외지급준비자산은 74.7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한편 정부의 산업구조 다양화 정책의 노력으로 GDP중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1975년 1%에서 1987년 9.4%로 크게 증대되었으나, GCC국가들의 경기침체 여파로 1994년에는 8.3%로 감소하였다. UAE는 인구가 적고 자원도 석유와 개스에 한정돼 있어 일반 제조업의 기반이 취약한 편이며, 기존의 제조업도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및 비료 등을 비롯한 중화학공업에 편중돼 있다. 건설부문은 석유산업에 이어 GDP의 점유율이 10%를 차지하고 있는 제2의 산업이 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석유수입(收入)을 배경으로 이룩된 산업이므로 석유산업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1990년대이후 석유수입의 증대로 건설부문은 활기를 되찾고 있기는 하지만, UAE 정부의 체계적인 개발계획이 마련되지 못해 활기를 띠지는 못하고 있다.

농업생산은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에도 불구하고 타부문에 비해 매우 낙후되어 있다. 국내에서 필요한 농산물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UAE는 용수(用水)의 확보, 관개시설의 증대, 농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에 따라 생산실적이 증대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국내수요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아부 다비의 농업지대는 알 다프라(Al-Dhafra), 리와(Liwa), 마디나 자이드(Madina Zayed) 및 알 아인(Al-Ain) 등으로서, 특히 오아시스에 위치한 알 아인에는 많은 농장이 있다. UAE의 경우 채소류는 매우 풍부하게 생산된다. 수산업 부문은 최근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어장의 확대와 연근해 어업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 UAE 주요 산업별 연평균 성장률(1972-1994)은 <표 3>과 같다.

<표 3> UAE 주요 산업별 연평균 성장률(1972-1994)

(단위: %)

 

부문

성장률

부문

성장률

원유

농업

일반 산업

건설 및 건물

식당 및 호텔

21.5

16.5

23.6

17

17.4

부동산

기타 서비스

정부 서비스

비석유 G에

18.8

20

20

18

자료: UAE, The United Arab Emirates 1996

UAE의 경제개발계획은 아부 다비의 제1차 개발계획(1968-72)과 제2차 개발계획(1973-76) 기간중에 석유산업, 제조업 및 사회간접자본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을 기록하였다. 특히 제2차 개발계획 기간에는 제조업 분야에 커다란 중점을 두었으나, 개발계획의 수립과 추진 역량의 부족으로 포괄적인 계획수립과 실행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77년 수립된 제3차 개발계획에서는 총투자 규모 87억 달러, GDP의 연평균 13.5% 성장을 목표로 추진하였지만, 1977년 하반기부터 정부의 긴축정책과 국내 경기침체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드디어 1981년 UAE는 최초로 종합경제개발 5개년계획(1981-85)을 수립하였다. 연평균 GDP 성장률 4%의 계획이 수립되어 건설 및 농업부문에 총 Dh160억이 투자될 계획이었으나, 유가하락에 따른 투자재원 부족으로 제한적으로 수행돼 오다가 현재는 각 에미레이트별로 개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아부 다비의 경우, 1989년초 인프라부문의 개발을 위해 총 Dh148억 규모의 10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1990대에 들어와 각 에미레이트간에 개별적으로 추진해 온 인프라부문의 중복투자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는 합리화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4. 한국과의 관계

■공식 수교 : 1980년 6월 18일

■주 UAE 한국대사관 : 1980년 12월 5일 설치

주한 UAE 대사관 : 1987년 3월 7일 설치(Al-Owais대사 1995년 5월 1일 신임장 제정)

■주 UAE 진출 업체 : 23개사

5. 북한과의 관계

■외교 관계 없음

6. UAE의 주요 수출입품

■ 주요 수출품 : 원유, 천연 가스, 생선, 재수출품

■ 주요 수입품 : 기계류, 자동차, 공산품, 식료품, 가축, 화학약품, 연료, 광물,담배, 자본 및 소비재, 중간재

7. UAE의 주요 수출입국

■ 주요 수출국 : 일본(38%), 인도(6.0%), 한국(5.8%), 싱가포르(5.4%), 오만(4.5%), 이란(3.6%)

■ 주요 수입국 : 일본(8.6%), 미국(8.1%), 영국(7.6%), 이태리(6.7%), 독일(6.6%), 한국(5.4%)

8. 한국과의 교역 관계

■교역량(1999년, 단위: 1000달러) : 수출 1,550,550 수입 2,568,131 무역수지 -1,017,581

■한국의 대 UAE 주요 수출품 : 섬유, 전자, 전기, 자동차

■한국의 대 UAE 주요 수입품 : 원유, 유류, 알미늄

 

 


  Copyright ⓒ 1997-2000 KIME. All rights reserved. E-mail; kime@hop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