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타 르   State of Qatar

1995년 카타르는 석유수입의 하락에 대한 보충과 거대한 천연가스 개발에 의한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 금융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가지고 향후 5-7년간 가스를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을 비축하기 위해서는 미화 300억달러를 모으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1956년 6월 조카인 Sheikh hamad bin Khalifa Althani를 축출한 sheikh khalifa bin hamad al thani의 왕궁 쿠데타의 결과는 그 나라의 에너지 산업이 과거에 비해서 좀더 빨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왕정 쿠데타에도 불구하고, 카타르의 Al-Thani의 정치는 전혀 고삐를 늦추거나 다른 민주국가와의 수교에 있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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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개황

카타르는 걸프만 서쪽 해안에 위치한 아라비아 반도 북쪽에서 뻗어 나와 폭이 55-90km로 변하는 대략 160km의 길이를 갖는 반도국이다. 카타르의 서부 해안은 사우디 아라비아 해변과 접경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UAE와 오만이 자리잡고 있다. 총면적은 11,437km2이며, 1986년 3월 최초로 실시한 인구 센서스 결과, 카타르 인구는 36만 9,079명이며 이중 약60% 정도는 동부 해안의 도하(Doha)에 밀집되어 있다. 1995년 현재 카타르의 인구는 약 61만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외교통산부

원유의 중요성 때문에 서부 해안에 위치한 자크리트(Zakrit)와 동쪽에 위치한 움무 싸이드(Umm Said) 항구가 카타르의 주된 항구가 되고 있다. 자크리트는 바레인으로부터 재화 수입을 하기 위한 항구로서 적합하며, 움무 싸이드는 심해 탱커와 화물선들에 대한 정박지 역할을 한다.

카타르는 또한 다수의 섬을 갖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섬으로는 ‘하와르 군도’(Hawar Archipelago)와 연근해 유전의 주된 수출 터미널인 ‘할룰’(Halul), ‘쉬라오’(Shra’ouh) 및 ‘알·바시리야’(Al-Bashiriya) 등의 섬이 있다.

카타르의 기후는 7월에서 9월까지 25-46도에 이르는 매우 덥고 후덥지근한 특성을 갖고 있으며, 85%이상의 습도를 갖고 있다. 겨울에는 기온 10-20도 정도로 온화한 편이며, 비가 조금 내리지만 연간 평균 강우량이 75.2mm를 초과하지는 않는다.

카타르는 일반적으로 평평한 바위 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카타르는 두칸(Dukhan)과 서부의 ‘제벨 후와이리트’(Jebel Fuwairit) 및 북부 지역에 해발 40m 높이에 일부의 언덕과 모래 언덕을 포함하고 있다. 아라비아만의 서부 해안에서 유일하게 다양한 지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지반이 함몰된 지역(depressions)과 주로 북부나 국토의 중심부에서 발견되는 ‘알·리야드’(Al-Riyadh), 즉 정원으로 알려진 천수의 배수작용을 하는 지역과 함께 내포(cove) 및 후미(inlet)를 포함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알·리야드’ 지역은 알·마지다(Al-Majida), 알·샤하니야(Al-Shahaniyah) 및 알·술라이미(Al-Sulaimi)이다.

북부와 중앙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고 자연적·계절적 초목이 있기에 농업을 육성하기 위한 최적의 지역이 되고 있다. 카타르 정부는 식량의 자급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농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공 및 민간부문 모두에서 집중적인 투자를 실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아무튼 카타르는 암벽과 모래 그리고 황량한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수의 제한된 공급량과 높은 광물질 함유량 때문에 음료수나 농업 용수는 매우 부족하다. 현재 물 공급의 절반 이상은 바닷물의 담수화 과정을 통해서 공급된다. 카타르 주민은 과거에는 전통적으로 무역, 진주 채취, 어업 및 유목 생활을 하면서 살아왔다.

입헌군주제의 정부 형태를 취하는 카타르는 인종이 매우 다양하여 카타르 아랍인이 약 20%, 비카타르 아랍인이 약25%, 인도 및 파키스탄인이 약34%를 차지하며 나머지 소수 인종도 약 5% 정도 있다. 언어는 아랍어를 공용어로 하며 파르시(23%)나 우루드어(7%)도 일부 사용된다. 이슬람이 국교이며, 대부분은 이슬람 순니파를 믿고 있다. 산업은 석유산업이 기간산업이며, 산업구조는 농업 1%, 공업 48% 및 서비스업 51%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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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치약사

카타르의 초기 거주는 덴마크(1965), 영국(1973) 및 프랑스(1976) 탐험대에 의해 탐사된 비문, 바위 조각, 부싯돌 창끝 및 정교한 도자기와 같은 많은 문화 유적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BC 4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적 발견으로 이라크 남부와 아라비아만(灣)의 북부에서 번성하였던 '우바이드 문명'(Ubaid civilization)이 카타르 반도에까지 이르렀음이 밝혀지고 있다. BC 5세기에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카타르의 원주민을 "선원 생활을 하는 가나안 사람(canaanites)"으로 언급하였다. 더욱이 지리학자 프톨레미(Ptolemy)는 그의 아랍세계 지도에서 '카타라'(Qatara)를 걸프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 가운데 하나로 명망이 높은 주바라(Zubara)의 카타르시(市)라고 믿고 있었다. 7세기 중엽, 이슬람 출현 시기의 이슬람 역사에서 카타르 반도와 이 주변 지역은 알 문지르(Al-Munzir) 아랍인의 통치하에 있었다. 카타르의 왕이었던 알 문지르(Al-Munzir Ibn Sawi Al-Tamimi)는 이슬람의 계속적인 무대와 시대에 참여하였고, 카타르를 이슬람 문명의 영역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이슬람(Islam)을 포용하였다.

카타르의 초기 거주는 덴마크(1965), 영국(1973) 및 프랑스(1976) 탐험대에 의해 탐사된 비문, 바위 조각, 부싯돌 창끝 및 정교한 도자기와 같은 많은 문화 유적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BC 4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적 발견으로 이라크 남부와 아라비아만(灣)의 북부에서 번성하였던 ‘우바이드 문명’(Ubaid civilization)이 카타르 반도에까지 이르렀음이 밝혀지고 있다.

BC 5세기에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카타르의 원주민을 “선원 생활을 하는 가나안 사람(Canaanites)”으로 언급하였다. 더욱이 지리학자 프톨레미(Ptolemy)는 그의 아랍세계 지도에서 ‘카타라’(Qatara)를 걸프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 가운데 하나로 명망이 높은 주바라(Zubara)의 카타르시(市)라고 믿고 있었다.

7세기 중엽, 이슬람 출현 시기의 이슬람 역사에서 카타르 반도와 이 주변 지역은 알·문지르(Al-Munzir) 아랍인의 통치하에 있었다. 카타르의 왕이었던 알·문지르(Al-Munzir Ibn Sawi Al-Tamimi)는 이슬람의 계속적인 무대와 시대에 참여함하였고, 카타르를 이슬람 문명의 영역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이슬람(Islam)을 포용하였다. 아랍 이슬람 역사는 세련된 항해 민족 카타르인을 기록하고 있으며, 알·하드라미(Abu Al-Al’a Al-Hadrami)의 지휘하에 이슬람 군대를 운송하기 위해 조직된 최초의 항해 선단을 구성하고 준비하는데 매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선단은 이슬람의 성전(Jihad)을 수행하기 위하여 카타르로부터 항해를 시작하였다.

아랍의 역사가들과 여행자들은 카타르의 시인 알·후자흐(Qatari Ibn Al-Fujaah)의 명성과 탁월한 아름다움도 언급하고 있다. 그의 저서 ‘무잠 알·불단’(Mu’jam Al-Buldan)에서 아랍의 역사가로 잘 알려진 알·하마위(Yaqut Al-Hamawi)는 카타르를 그 당시 ‘카타르 망또’로 잘 알려진 정교한 줄무늬로 짠 망또와 당시에 ‘카티야의 창’(khattiyah spear)으로 알려진 창의 개량 및 정교한 마무리에 있어서 카타르인의 놀라운 기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카타르의 의상은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의 아내 아이샤(Aa’isha)가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14세기 압바스(Abbas) 왕조하에서 카타르는 커다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였고, 바그다드의 칼리프 체제(Caliphate)를 유지하기 위하여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칼리프에 대한 재정 지원의 증거는 압바스의 건축술로 지어진 서부 해안의 ‘무르왑 요새’(Murwab fort)의 비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인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오스만 터키와 동맹을 맺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걸프 아랍 국가들처럼, 카타르도 4세기 동안 오스만 터키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오스만의 통치는 실질 권력과 통치가 세이크와 지방의 아랍 부족들의 왕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단지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 카타르에서 오스만 터키의 통치는 끝났다. 1916년 카타르는 영국과 보호조약을 체결하였고, 영국의 영향력은 일부 행정문제에 국한되었다.

1939년 원유의 발견은 카타르에게 커다란 부(富)를 약속해 주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개발이 지연되었고, 1949년이 되어서야 상업적 규모의 생산이 이루어졌다. 1961년 1월 카타르는 OPEC 회원국이 되었고, 1970년 5월 OAPEC 회원국이 되었다.

1949년이래 카타르의 통치자였던 Sheikh Ali Al-Thani는 그의 아들 Sheikh Ahmad Al-Thani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영국은 1971년까지 군대를 철수시킬 의사를 밝혔고, 그 결과 카타르는 바레인과 연합도 구상하였다. 1970년 4월 Sheikh Ahmad는 일부 평의회의 선출을 규정하는 임시 헌법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은 군주의 손에 남게 되었다. 카타르는 통치자가 에미르(Emir)의 명칭을 갖게 되었을 때인 1971년 9월 1일 완전한 독립을 성취하였다. 한편 1916년 영국과의 조약은 새로운 우호조약으로 대치되었다.

1972년 2월 에미르의 해외출장중 왕자 겸 수상인 Sheikh Khalifa에 의한 무혈혁명으로 칼리파는 왕위를 계승하였고, 광범위한 사회 및 경제개혁을 단행하였다. 카타르는 1982년 사우디 아라비아와 쌍무방위협정을 체결하여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가장 온건한 아랍국가중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카타르는 1981년 걸프협력위원회, 즉 GCC의 창설 회원국이 되었다.

1972년 즉위이후 에미르는 신중한 변화를 추구하였지만, 이슬람적 생활 패턴은 계속 유지되었다. 1970년 헌법에 따라 세이크 칼리파는 내각을 보완하기 위하여 최초로 ‘자문위원회’(Advisory Council)를 채택하였다.

석유를 통하여 얻어진 부(富)로 카타르 정부는 획기적인 사회 및 인프라 부문을 개선하였다. 1983년까지 6,000 가구의 주택이 정부로부터 제공되었고, 복지 및 무보험 연금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학교 및 병원의 건설이 거의 완성되었다. 1989년 사회 및 경제개발을 위한 계획을 조정하기 위하여 ‘최고계획위원회’(Supreme Council for Planning;SCP)가 구성되었다.

석유부문의 경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하여, SCP는 Sheikh Khalif bin Hamad Al-Thani의 지도하에 산업의 다양화 및 농업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카타르의 정치 약사는 <표>와 같다.

카타르의 정치 약사

■ 18세기 : 아라비아 반도의 서북지역에서 할리파족이 이주

■ 1783년 : 페르시아인 침략

■ 1867년 : 바레인과 전쟁

■ 1872년 : 오스만제국 카타르 지배

■ 1893년 : 오스만제국 군대 카타르에 패전후 영향력 감퇴

■ 1915년 : 제1차 세계대전기간중 오스만 터키군 철수

■ 1916년 : 영국과 보호조약 체결후 영국의 보호령이 됨

■ 1939년 : 최초로 석유발견

■ 1949년 : 12월 카타르 석유의 최초 수출이 이루어짐

■ 1971년 : 영국으로부터 독립(9월), 영국과 우호조약 체결, Sheikh Ahmed bin Ali al-Thani 즉위

■ 1972년 : 왕정 쿠데타로 사촌인 Sheikh Khalif bin Hamad al-Thani 에미르로 즉위

■ 1977년 : 석유 및 개스 산업 국유화 완성

■ 1990년 : 자문회의 위원 30명중 19명 교체

■ 1992년 : 민주주의의 실천을 위한 시도로 6명의 각료 교체

■ 1995년 : 6월의 궁정 쿠데타로 Sheikh Hamad 소폭의 개각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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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요 경제 지표

1) 투자환경

2) 주요경제지표

3) 경제 동향

4). 석유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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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과의 관계

■ 공식 수교 : 1974년 4월 19일

■ 주 카타르 한국 대사관 : 1976년 10월 14일 설치

주한 카타르 대사관 : 1992년 2월 설치, 1995년 11월 28일 Al-Muslemani 대사 신임장제정

■ 주 카타르 진출 업체 : 신화건설

5. 북한과의 관계

■ 공식 수교 : 1993년 1월 11일

6. 카타르의 주요 수출입품

■ 주요 수출품 : 석유(66.6%)

■ 주요 수입품 : 기계류 및 운송장비(42.4%), 공산품(19.1%), 식품(12.9%)

7. 카타르의 주요 수출입품

■ 주요 수출국 : 일본(54.3%), 싱가포르(7.3%), 한국(5.8%), 호주(3.5%), UAE(3.4%)

■ 주요 수입국 : 이태리(15.5%), 독일(11.2%), 일본(10.2%), 프랑스(8.7%), 영국(8.7%)

8. 한국과의 교역 관계

■교역량(1999년, 단위: 1000달러) : 수출 97,295  수입 868,350  무역수지 -771,055

■ 한국의 대 카타르 주요 수출품 : 자동차, 전자, 전기, 섬유

■ 한국의 대 카타르 주요 수입품 : 원유, 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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