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경제는 단기적인 경제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 추세로 본다면 희망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원유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와 Rafsanjani 대통령의 경제개혁에 대한 국제적 고립 및 국내의 반대에 의해서 제약받고 있다. 1994년 초에서 중반에 걸쳐 이란의 무역 적자를 재조정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유럽과 아시아 무역상들과 여러차례에 걸친 양측 협상 끝에 정부는 이란의 부채 문제를 극복하는데 커다란 성과를 거둔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대략 미화 100억 달러에 가까운 빚이 재조정되었고, 이란의 국제고립은 완화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나라는 여전히 부동의 유가와 새로운 국제적 압력, 특히 1995년 5월의 미국의 무역금지조치에 직면하고 있다.
이란은 아시아의 서남부(북위 25°- 40°, 동경 44°- 63°)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식 국명은 '이란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다. 인접국으로는 동부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서부에 이락과 터어키, 남부에 페르시아灣(The Persian Gulf)과 오만灣(The Gulf of Oman), 북부에 러시아와 카스피해(The Caspian Sea)에 접해 있다. 총면적은 1,636,000km2로서 한반도의 약 7.5배에 달하며, 인접국 이락의 4배에 달하는 거대한 국토를 가진 국가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토는 불모지로서 전체 면적의 11%는 산림지대, 경작중인 농지가 9.2%, 목초지가 27%이며 그 나머지 52.8%는 경작이 불가능한 불모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표준시는 그리니치 표준시보다 3시간 빠르며 한국보다는 6시간이 늦다. 외교통산부 이란은 국토의 약 절반이 산악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1/4은 사막 및 황야지대이고 그 나머지가 평야지대이다. 국토는 평행사변형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엘부르즈산맥(Elburz Range)과 자그로스산맥(Zagros Range)이 있고, 사막으로는 카비르사막(Kavir Desert)과 루트사막(Lut Desert)이 있다. 자그로스산맥은 이란에서 가장 큰 산맥으로 북서부의 러시아, 터어키 및 이락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엘브르즈산맥은 북부의 카스피해에 접하고 있으며, 이란의 최고봉인 다마반드산(해발 5,671m))이 있다. 또한 이란은 호수가 많으며 그 대부분은 염수호로서 레자이야(Rezaiya)湖는 폭이 최대 50km, 길이가 130km에 이르는 이란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러시아와 접경을 이루는 카스피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해(길이 1,170km, 폭 200-420km, 면적 약 44만km2)이며, 이러한 카스피해와 엘브르즈산맥사이와 레자이야 대염호 근방은 비옥하며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 수도 테헤란(Tehran)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은 지역에 따라 상당한 기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내륙 고온지대는 대륙성기후로 건조하며 한서의 차이가 심하다. 카스피해연안은 지중해성기후로 온화하고 여름철에는 강우량이 적으며 겨울에는 강우량이 많다. 또한 남서부 쿠제스탄(Khuzestan)지역은 고온다습하며, 걸프만 연안은 덥고 습기가 많다. 계절적으로 보면 동계는 일반적으로 降雨期이며 이란의 연간 강우량의 절반이상이 동절기에 내리며, 특히 남부지역에는 동절기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하절기에는 카스피해 연안을 제외한 이란 전지역이 건조기이며 봄과 가을은 매우 짧다. 이란의 총인구는 5천7백80만명(1991년 센서스)이며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3.6%이다. 1992년 기준 도시화율이 54.0%정도이며, 평균수명은 남자 64세, 여자 65세정도이다. 언어는 페르시아어(Farsi)가 공용어이며, 종교는 이슬람(대부분 쉬아파)이 국교이다. 페르시아人이 대부분인 이란인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인 등으로 구성되는 多民族를 형성하고 있다. 이란민족은 옛부터 '페르시아 商人'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타고난 상업적 기질을 갖춘 민족으로 매우 사교적이며 매사에 신중하게 대처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이란의 일반개황은 <표>와 같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형성하였던 이란은 그리스,
아랍, 터키 및 몽고 등 이웃 주변국들에의해 통치돼왔다. 16세기 주변국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19세기에는 영국과 러시아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중동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이란은 공통의 언어, 문학 및 예술을 간직한 통일된 단일국가로서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 왕조(B.C. 559-330)로 건국된 오늘의 이란은 사산왕조(A.D. 226-651)를 거쳐 한때 아랍의 지배(651-1258)를 받기도 하였다. 그후 몽고의 침입으로 몽고의 지배(1256-1349)를 받았으며, 티무르 왕조(1369-1500), 사파비 왕조(1501-1736), 아프샤르 왕조(1736-1749) 및 카자르 왕조(1796-19250를 거치면서 20세기로 넘어왔다. '입헌혁명'(Constitutional Revolution; 1905-1911)으로 알려진 국민운동의 결과 이란은 1906년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이란은 제1차 세계대전중에 오스만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아 오다가 1932년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였다. 1973-74년 유가의 대폭적인 인상과 함께 시작된 이란의 석유의존형 고속성장은 인프라부문에의 투자보다는 국방부문에 과도한 지출과 샤의 명성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집중됨으로써 인플레를 유발하여 경제구조에 심각한 결함을 노출시켰다. 경제적 어려움, 행정의 소홀한 관리 및 샤 자신이 서구에 國益을 팔아 넘겼다는 인식으로 국민들의 불만은 광범위한 불안의 요인이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1979년 1월 팔레비 왕조(Pahlavi dynasty)를 전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샤(Shah)의 망명과 프랑스 유배로부터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의 귀국으로 이란은 1979년 3월 이슬람공화국이 되었다.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국민투표에 의해 합법화되었으며, 그 해 12월 법률이 시행되었다. 한편 1980년 이란은 이락의 전략적 요충지 샤트 알 아랍수로(Shatt al-Arab waterway) 지역에 대한 이란 영토의 병합에 대하여 미미한 정도의 저항을 예상하면서 이락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란 군대는 즉각적인 반격을 받았으며, 이란-이락 전쟁은 UN의 휴전 결의안을 받아들였을 때인, 1988년 8월까지 지속되는 소모전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와중에 호메이니가 이락과의 8년전쟁으로 이슬람공화국이 - 심각한 경제상황과 많은 국가들과의 대외정책에서의 갈등 및 기타 국가들의 국내문제에 대한 간섭주장 등 -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었던 1989년 6월 3일 사망하였다. 호메이니의 죽음은 상당한 헌정상의 갭을 남겼다. 발리-예 화끼흐(vali-ye faqif; 이맘의 부재시 자격있는 종교지도자)로서 그의 자리를 계승할 후계자가 없었고, 그 절충안으로 라흡바르(rahbar; 지도자)를 약간 격상시켜 호메이니 사후 수일 이내에 카메네이(Hojatolislam Ali Khamenei)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었다. 카메네이는 원로 아야톨라흐(ayatollah)들의 만장일치의 지지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아야톨라흐에 임명되었다. 호메이니 사후 이슬람공화국의 기반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헌법은 대통령에게 보다 강력한 행정권을 제공하는 형태로 개정되었다. 호메이니에 의해 공석이 된 자리에 라프산자니(Hashemi Rafsanjani)가 후보로 지명되었고, 그는 1989년 7월 국민투표에서 94.5%의 지지를 획득하면서 커다란 반대 없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친-호메이니 정부의 급속한 구축은 이맘의 사후 외세에 의해 정권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반대자들의 희망을 무산시키면거, 강력하고 완고한 형태의 이슬람공화국을 구축하였다.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변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1) 경제재건을 위한 국가자원의 할당, 2) 5개년 경제계획의 채택 및 3) 성장의 보조를 가속화하기 위한 해외원조의 동원,을 제안하였다. 그의 제안은 일반 시민의 생활수준 개선을 위해 복지문제를 갈망하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부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외국자본의 개입과 그 과정에서 인력과 경영의 개입문제에 대해 별로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고, "비용에 관계없이 외국 이권은 이란에서 모두 추방되어야 한다"는 호메이니의 교시에 대부분 이란인들은 공감을 표했다. 종교, 정치 혹은 경제적인 이유에 대해 설득력있는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라프산자니 정부의 실패는 이슬람공화국을 무기력하고 비활동적인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3년 6월 58%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투표율과 지지율이 63%로 감소하긴 하였지만 라프산자니는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이란의 정치약사 ■ BC 533년 : 페르시아 제국 건설 ■ 651년 : 아랍 이슬람의 지배 ■ 1256년 : 몽고의 침입 ■ 1796년 : 카자르 왕조의 건국 ■ 1906년 : 최초의 헌법에 의해 입헌군주국이 되었고, 샤(Shah)의 절대적 통치 종식 ■ 1919년 : [英 페르시아조약] 체결로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이 됨 ■ 1921년 : 레자 칸(Reza Khan)에 의한 쿠데타 ■ 1925년 : 카자르 왕조 멸망, 팔레비 왕조 건국, 군사 지도자 레자 칸(Reza Khan)이 레자 샤 팔레비(Reza Shah Pahlavi)로 즉위 ■ 1935년 : 페르시아에서 이란(Iran)으로 국호 변경 ■ 1941년 : 팔레비 왕(Mohammed Reza Pahlavi) 父王으로 부터 왕위 계승(9월) ■ 1951년 : 모사디끄(Mosaddiq) Anglo-Iranian Oil Company 국유화 ■ 1953년 : 모사디끄, 영 미 지원의 자헤디(Zahedi) 장군에 의해 제거됨 ■ 1962년 : 서구화 지향의 백색혁명 시작(1월) ■ 1963년 : 호메이니(Khomeini)가 주도한 反백색혁명의 폭동으로 수백명의 사망자 발생, 호메이니 망명(6월) ■ 1975년 : 정당해산 및 언론규제령 발표, 단일정당에 의한 최초의 의회 탄생(4월) ■ 1977년 : 在美 이란인 유학생들에 의한 반정부시위 발생(11월) ■ 1978년 : 반정부 시위활동 이란의 주요도시로 확산(3월) ■ 1979년 : 팔레비 망명, 호메이니(Ayatolla Ruhollah Khomeini) 귀국(2/1), 국민투표에 의해 이슬람공화국 선포(4월), 이란 학생들에 의한 미대사관 인질사태 발생(11월), 신헌법 제정(12월) ■ 1980년 : 바니사드르 대통령 당선(1/25), 국민회의 구성 완료(5월), 이라크와 국경분쟁(Shatt al-Arab)으로 전면전 돌입(9/21) ■ 1981년 : 미국인 인질석방(1월), 바니사드르 대통령 해임(6월), 이슬람공화당사 폭발사건으로 바헤시트 당수 등 74명 폭사(6월), 수상관저 폭발사건으로 라자이 대통령과 바호나르 수상 폭사(8월), 카메네이 대통령 당선, 모우사비 수상 취임(10월) ■ 1986년 : 미국 관리 비밀리에 이란방문, 레이건 행정부의 스캔들 원인이 됨 ■ 1988년 : 미 해군함정 실수로 이란 항공기 사격(290명 탑승자 전원 사망), 이라크와 휴전협정 체결(8/20) ■ 1989년 : 호메이니 사망(6/3),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 실시, 라프산자니(Rafsanjani) 대통령에 당선 ■ 1990년 : 이란 이라크 외무장관 회담후 관계 정상화 합의(9월) ■ 1993년 : 라프산자니 제6대 대통령에 취임(8/4) ■ 1997년
: 하타미 대통령에 당선(5월) 1) 투자환경 2) 주요 경제지표 3) 산업활동 4) 석유산업
■ 공식 수교 : 1962년 10월 23일 ■ 주 이란 대사관 : 1967년 4월 1일 설치, 1981년 7월 7일 대사대리급 관계로 격하, 1989년 1월 24일 대사급 관계 정상화 합의 ■ 주한 대사관 : 1975년 8월 25일 설치, 1996년 1월 Rahimi Gorji 대사대리 부임 ■ 주 이란
진출 업체 : 대우, 해태, LG, 삼성물산, 동부건설, 코오롱상사 ■ 공식
수교 : 1973년 4월 19일 ■ 주요 수출품 : 석유(79.3%), 카페트(7.7%), 천연개스, 과일, 철강 ■ 주요
수입품 : 수송장비 및 기계, 철강 및 공산품, 자본재, 소비재, 원자재,
중간재 ■ 주요 수출국 : 일본(13.8%), 이태리(8.6%), 프랑스(6.8%), 한국(6.1%), 독일(4.0%), 네덜란드(3.4%), 그리스(2.9%), EU(32.8%) ■ 주요
수입국 : 독일(14.7%), UAE(7.9%), 일본(5.9%), 프랑스(5.0%), 영국(4.7%),
이태리(4.6%), 아르헨티나(4.5%), EU(41.3%) ■교역량(1999년, 단위: 1000달러) : 수출 811,290 수입 1,505,775 무역수지 -694,485 ■ 한국의 대 이란 주요 수출품 : 선박, 자동차, 전기, 전자 ■ 한국의 대 이란 주요 수입품 : 원유, 화학, 철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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