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레 인  States of Bahrain

1994년 말에 발생하여 1995년 초반까지 계속된 산발적인 반정부 항의와 그것과 연관된 폭동은 바레인의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잠재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문제는 석유로부터의 수입 감소와 예산 적자의 증대이다. 결과적으로 정부 지원금과 보조금의 삭감 때문에 정부는 과거 그들이 해 왔던 방식대로 국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힐 수 없다.

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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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개황

아랍어로 '두개의 바다'(two seas)를 의미하는 바레인의 정식 국명은 '바레인국(國)'(State of Bahrain)이다. 여기서 두 개의 바다란 유명한 진주잡이 다이버들에 의해 이용되던 바다 밑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자연적인 물의 근원'(natural springs of water)을 말한다. 바레인은 풍부한 문화와 유산(遺産)을 갖고 있으며, 박물관, 유적지, 수공예 센타 및 기타 보존 기관에서 이러한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바레인에서는 과거 '백만 종려나무의 섬'(The island of a million palm trees)으로 알려진 5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명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다우(dhow: 아라비아해에서 이용되던 커다란 삼각 돛을 단 연안 항해용 범선)의 건축술, 바구니 제조, 도자기 및 의류 제조술은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다. 외교통산부

'아라비아만(灣)의 진주', 바레인은 걸프만의 심장부에 위치한 30개 이상의 매력적인 다도해(多島海)로 이루어져 있다. 바레인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동부해안과 거의 마이애미(Miami)와 맞먹는 북위 26도에 위치한 카타르반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섬들은 싱가폴보다 다소 작은 약 700 sq km의 총면적을 갖는다.

총면적 676㎢의 규모를 갖는 다도해 바레인은 그 자체 길이 50km, 폭 13-25 km의 섬이다. 수도는 마나마(Manama)이다. 무하라끄 섬은 1986년 11월 바레인과 사우디를 연결하는 고속도로(causeway)와 자동차 도로에 의해 동북쪽까지 연결되며, 대략 6km의 길이를 갖고 있다. causeway는 또한 바레인을 씨트라 섬으로 연결한다. 이밖에 다른 섬들로는 Nabih Salih, Jeddah, Hawar, Umm Nassan 및 Umm Suban 등이 있다.

과학자들은 "바레인이 아라비아 반도가 되기 이전 약 6000년전에는 유일한 하나의 섬이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1986년에 개통된 4차선 바레인-사우디간 고속도로(The Bahrain-Saudi King Fahad Causeway)는 바레인을 내륙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 도로의 개통은 GCC 국가들로부터 방문객의 유입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바레인은 바위 사막(rocky desert)으로부터 푸른 목초지, 모래 해안, 전통적인 건축 및 모든 섬에 흩어져있는 공원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지형을 갖고 있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연근해 순항(巡航))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돼있다.

바레인의 연중 좋은 기후는 육지이건 바다이건 간에 넓은 지역에 대해 레저활동의 범위를 제공한다. 이러한 바레인의 섬들은 수영, 낚시 게임 그리고 스쿠버 다이빙, 스노쿨(snorkeling), 수상 스키 및 다이빙과 같은 모든 형태의 수상 스포츠에 대한 시설들을 연중 내내 제공한다. 지상에서 보다 마음 편하게 지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골프장, 경마장, 경마클럽 및 헬쓰 클럽 등이 있다. 또한 바레인 주위를 따라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있는 자동차를 렌트할 수 있다.

바레인은 절대군주국(absolute monarchy)이다. 현재의 에미르(emir), 세이크 이사 빈 쌀만 알-칼리파(Sheikh Isa bin Salman al-Khalifa)는 1961년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비록 매일 매일의 통치가 수상인 그의 동생, 세이크 칼리파 빈 쌀만 알-칼리파(Sheikh Khalifa bin Salman al-Khalifa)에 의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정부는 내각을 통해 발효된 에미르 칙령에 의해 관리된다. 입법권이 없는 자문위원회(Consultative Council)를 임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행정부에 대한 임명은 에미르에 의해 관리된다. 따라서 정치적인 정당은 허용되지 않는다. 바레인은 왕가(王家)내에서 엄격한 장자상속(primogeniture) 통치를 채택한 걸프만의 유일한 국가이다.

1994년 기준 바레인의 총인구는 55만명이며,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3.2%이다. 1992년 현재 도시화율이 46%이며, 평균 수명은 남자가 71세, 여자가 76세로 매우 높은 편이다. 언어는 아랍어가 공용어이며, 이란어도 약간 사용된다. 종교는 이슬람이 국교이며 순니파와 쉬아파가 각각 50% 및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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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치약사

포르투갈의 통치(1521-1602)와 간헐적으로 이란의 통치(1602-1782)를 받아왔다. 이란인들은 아라비아의 우투브(Utub) 부족에 의해 1783년 축출되었고, 알 칼리파(Al-Khalifas) 가문이 바레인의 독립된 세이크가 되어 1810년 이전 잠시 동안을 제외하고, 1782년이래 바레인을 다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8세기 이란인의 점령을 기반으로 이란인들은 때때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바레인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떨어진 약 33개의 도서(島嶼)로 이루어진 낮은 지형에 위치한 다도해(多島海)이다. 천혜의 자연적 물의 공급에 의존하면서 바레인에는 5000년동안 주민들이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다. 제3 밀레니엄(millennium)까지 바레인의 주요 섬들은 '딜문'(Dilmun)으로 알려졌으며, 메소포타미아 제국과 인도간의 중요한 무역센터였다.

바레인은 포르투갈의 통치(1521-1602)와 간헐적으로 이란의 통치(1602-1782)를 받아왔다. 이란인들은 아라비아의 우투브(Utub) 부족에 의해 1783년 축출되었고, 알 칼리파(Al-Khalifas) 가문이 바레인의 독립된 세이크가 되어, 1810년 이전 잠시 동안을 제외하고, 1782년이래 바레인을 다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8세기 이란인의 점령을 기반으로 이란인들은 때때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바레인의 통치가문, 알-칼리파(al-Khalifa) 가문은 알-싸바(al-Sabah)가 권력을 잡을 때, 그들의 먼 친척들이 도움을 주었던 쿠웨이트로부터 18세기 중반 이곳에 도착하였다. 영국이 인도대륙에 대한 그들의 무역 및 공급로(路)를 유지하기 위하여 바레인에 방어물을 설치함으로써, 19세기에 바레인은 걸프만에서 영국의 정치적 교두보(橋頭堡)가 되었다. 1968년 영국의 발표, 즉 1971년말까지 영국의 모든 군대는 걸프만으로부터 철수할 것이라는 발표로 이란이 이 도서에 대한 오랜 청구권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이란의 샤(Shah)는 UN의 중재와 뒤이은 바레인을 주권국가로 인정한 UN의 결정을 따랐다.

1971년 8월 15일 바레인은 독립을 선포하였고, UN 및 아랍연맹(Arab League)의 회원이 되었다. 영국의 철수와 함께 세이크 이사 빈 쌀만 알-칼리파(Sheikh Isa bin Salman al-Khalifa)는 에미르에 즉위하였고, 그의 동생 세이크 칼리파 빈 쌀만 알-칼리파(Sheikh Khalifa bin Salman al-Khalifa)는 수상이 되었다. 1972년 남자들만의 선거에 의해 직접 선출된 33명중 22명으로 의회(Constituent Assembly)를 구성하였다. 1973년 6월 정당의 수립 및 독립적인 상업조합을 허용하는 헌법이 공표(公表)되었고, 동년 12월 새로운 국회(National Assembly)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8개 선거구에서 44석의 의원중 30명을 선출하였고, 나머지 14석은 내각의 각료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상업조합(trade union)이나 파업 허용에 대한 정부의 거절은 석유산업을 불안정하게 만든 산업의 불안정을 촉발시켰다. 정부는 무력으로 대응했고, 1974년 10월 전복에 대해 보안군의 권력 사용을 인정하는 국가보안법(State Security Law)을 의회를 통하여 밀어붙였다. 이러한 물결은 에미르가 1975년 8월 26일 의회를 해산함으로써 정부와 의회간의 충돌로 이어졌다. 에미르와 의회간의 난국은 6명의 저명인사와 300명의 기술 전문가들이 에미르에 대해 헌법을 회복하고, 선출된 국회를 회복하며, 1974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모든 죄수와 추방자들을 사면해 줄 것을 요구한 탄원이 이루어졌을 때인 1992년 12월까지 계속되었다. 이에 따른 조치로서 에미르는 이미 정부에 의해 통과된 법률을 검토하고 자문하기 위하여 새로운 30명으로 구성되는 정부 및 임명된 자문위원회 설립을 발표하였다.

탄원의 요구와 대응조치간의 모순은 불만이 고조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유명한 쉬아파 성직자 세이크 알리 쌀만(Sheikh Ali Salman)의 체포와 함께 1994년 12월 반정부 저항운동의 물결이 확산되었다. 세이크 알리 쌀만은 정부의 비헌법적 행동을 비난하는 설교를 그의 무기로서 이용하였고, 선출된 국회의 회복과 여성에 대한 참정권 부여를 요구하는 두 번째 탄원서에 신뢰할만한 조인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동 탄원서는 쉬아파는 뿐만 아니라 순전히 바레인의 분파주의자들에 의해 동기가 유발된 정부에 대해 반대하는 비평가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순니 공동체 모두들로부터 2만 5천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도자들을 체포함으로써 탄원에 대응했고, 저항이 가라앉지 못하자 두명의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세이크 알리 쌀만을 추방하였다. 그 당시 정부는 탄원의 지원 역할을 해왔던 이미 해체된 의회의 의원인 세이크 압델-아미르 알-잠리(Sheikh Abdel-Amir al-Jamri)를 포함한 모든 쉬아파 지도자들을 체포하였고, 탄원서에 서명한 순니파 지도자들을 모든 정부의 직(職)에서 해고시켰다. 바레인이 독립한 이후 가장 광범위한 내각 개편이 1995년 6월말 발표되었지만, 위기를 극복하는데는 실패하였다.

1995년 8월말 투옥된 지도자와 영국 시민권자인 보안참모장 이안 헨더슨(Ian Henderson)간에 비밀 회담이 있었다. 그 결과로 정부는 데모의 종식에 대한 대가로 야권 지도자와 억류자들을 석방하기로 합의하였다. 한때의 평온이 회복되었고, 탄원자들의 요구가 다시 토의될 것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1995년 9월 이와 보조를 맞추어 세이크 잠리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다른 수백명의 억류자들이 석방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나머지 억류자들을 석방하는데 실패하였다. 동년 10월 세이크 잠리는 5명의 협력자들과 함께 10일간의 단식투쟁을 시작하였고, 세이크와 다른 쉬아파 성직자들의 재수감으로 저항은 다시 시작되었다. 1996년 5월 에미르는 자문위원회의 규모와 역할을 확대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바레인의 정치 약사는 <표>와 같다.

바레인의 정치약사

■ 8세기 : 이슬람 압바스 왕조의 점령

■ 1521년 : 포르투갈 지배

■ 1602년 : 페르시아 점령

■ 1783년 : 현 왕족인 Khalifa 가문이 바레인 점령

■ 1820년 : 영국 바레인에 대한 광범위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시작

■ 1861년 : 바레인 영국의 보호령이 됨.

■ 1882년 : 영국과의 조약(방위에 대한 영국의 책임 부가)

■ 1932년 : 석유가 발견되어서, 어업과 농업에 의존하던 생활이 끝남

■ 1971년 : "State of Bahrain"으로 완전 독립을 선언(8월)하고 영국과 평화 조약을 맺음,

Sheikh Isa bin Salman bin al-Khalifa 국왕 즉위

■ 1972년 : 제헌의회 구성

■ 1973년 : 헌법 공포

■ 1973년 - 1974년 : 다른 아랍 국가들과 함께 석유수출 금지조치에 가담

■ 1975년 : 정부가 석유 산업의 주식을 사들임

■ 1979년 : 헌법 개정과 의회제도 개선방안 작업에 착수

■ 1986년 : 15 mile의 바레인과 아랍 본토 사이의 도로 개통

■ 1992년 : 30인으로 구성되는 자문회의 구성(12월)

■ 1994년 : 미국 및 영국과 안보협력 각서 교환

■ 1995년 : 민주화 요구로 대폭적인 객각 단행((6월)

■ 1996년 : 자문회의의 규모(30인에서 40인)와 권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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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업 경제

1) 투자환경

2) 주요 경제지표

3) 경제 동향

4) 석유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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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과의 관계

■ 공식 수교 : 1976년 4월 17일

■ 주 바레인 한국 대사관 : 1976년 6월 29일

■ 주한 바레인 대사관 : 주 중국 대사관에서 겸임

■ 주 바레인 진출 업체(1994년) : 7개업체

5. 북한과의 관계

■ 외교 관계 없음

6. 바레인의 주요 수출입품

■ 주요 수출품 : 원유, 석유제품, 알루미늄, 어류, 기계류, 재수출품, 공산품

■ 주요 수입품 : 석유제품, 자동차, 식료품, 직물, 소비재, 기계류, 공산품, 운송장비

7. 바레인의 주요 수출입국

■ 주요 수출국 : 인도(17.9%), 일본(8.4%), 한국(5.2%), 사우디(4.5%), 캐나다(3.3 %), UAE(2.7%)

■ 주요 수입국 : 사우디(40.3%), 미국(6.8%), 영국(6.4%), 독일(3.7%), 일본(3.1%)

8. 한국과의 교역 관계

■교역량(1999년, 단위: 1000달러) : 수출 41,268  수입 162,962  무역수지 -121,694

■ 한국의 대 바레인 주요 수출품 : 자동차, 타이어, 섬유

■ 한국의 대 바레인 주요 수입품 : 알미늄, 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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