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제 리  Democratic and Popular Republic of Algeria

알제리의 폭동은 1994년과 1995년 초까지 있었던 시민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정부와 이슬람 주류간 공통의 정치적 기반을 만들려는 시도는 양측의 과격파에 의해 좌절되었다. 군 밖에서는 그들이 투쟁적인 원리주의자들과 과격한 통치방법을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미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IMF는 알제리의 채무 지불의 어려움을 완화시켜왔으며, 알제리 에너지에 대한 외국의 관심은 고조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은 알제리의 유전 시설들을 파괴했으며, 외국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경제 파업을 선동하는 분리적인 캠페인이 투쟁적인 파벌들에 의해 채택되고 있다.

지 도

 


 1. 일반개황

공식명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Democratic and Popular Republic of Algeria; 아랍명 Al-Jaza'ir 혹은 Al-Jumhuriyah Al-Jaza'iryah Ad-Dimuoratiyah Ash-Sha'biyah)인 알제리는 마그레브의 지중해 해안에 자리잡은 아프리카 국가이다. 알제리는 수단에 이어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큰 국가이다. 외교통산부

알제리는 남북으로 약 2,000km, 동서로 약 1,800kmd의 거리에 펼쳐있으며, 동으로는 튀니지와 리비아, 남동쪽으로는 니제르, 남서쪽으로는 말리, 모리타니아 및 서부 사하라, 그리고 북서쪽으로는 모로코와 북쪽의 지중해 정면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수도는 알지에(Algiers)이며, 면적은 2,381,741km2에 달하며, 1995년 기준 인구는 27,939,000명이다.

주민이 거의 거주하지 않는 남부의 커다란 사하라 지역은 알제리 총면적의 85%이상을 차지한다. 보다 작은 지중해 북쪽해안의 텔(Tell) 지역은 산재한 평원과 아틀라스(Atlas) 계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지형은 남북으로 간헐적으로 주름잡힌 해안의 단층 지괴(地塊)와 단층 지괴의 남쪽으로 분리되고 확대되는 평원을 포함하고 있다; 서쪽으로 모로코, 동쪽으로 튀니지까지 펼쳐지는 마그레브의 아틀라스 산맥의 일부인 텔 아들라스 산(the Tell Atlas); 반건조지 고원(高原)(Hauts Plateaux); 건조한 사하라로부터 남쪽으로 마그레브를 분리하는 사하라 아틀라스 산(the Saharan Atlas)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막은 외견상으로는 regs로 알려진 광활한 돌로 이루어진 도로와 ergs라 불리는 커다란 장애물 없는 모래 언덕 지역과 매우 흡사하지만, 알제리의 대표적인 남동쪽의 아가르 산(the Ahaggar 혹은 Hoggar)과 최고봉인 해발 2,918m의 타하트 산(Mount Tahat)을 구성하고 있다. 북쪽의 Tell 산맥은 지질구조적인 플레이트 경계를 따라 위치하며, 주기적으로 심한 지진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1717년 대규모 지진은 오난(Onan) 시(市)를 완전히 파괴하였고, 1790년 알지에는 지진으로 약 2만명의 인명을 잃었다.

또한 알제리는 1954년과 1980년 지진으로 츨레프(Chlef, el-Asnam)에서 약 5,200명의 주민이 사망하였다. 알제리의 주요 강(江)들은 강우량이 가장 많은 북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 깊은 대수층(帶水層)이나 분출하는 샘에 의해 흘러나오는 흩어진 오아시스는 사하라 지역에서 유일한 물의 근원이다. 알제리의 강들은 계절적으로 고르지 않은 강우량 분포 때문에 계절적 혹은 간헐적인 경우가 많다. 단지 알지에 부근의 저수지의 개발이 연중 관개(灌漑)를 가능케 해주고 있다. 첼리프(Chelif) 와 하미즈(Hamiz) 유역은 알제리 관개 수요의 약 1/3을 충당한다.

일반적으로 연평균 800mm 이하인 강우량과 북쪽의 연평균 400mm 미만인 강우량은 불충분하며, 강우량은 매년 현격하게 변화한다. 연간 100mm 이하 강우량을 갖고 일년 내내 가뭄이 지속되는 Sahaaran Atlas의 남부지역에서 사하라 기후가 시작된다.

해안 지역의 월평균 기온은 가장 따뜻할 때와 가장 추울 때 약 20도의 온도차를 갖는 매우 낮은 기온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알지에는 밤중에 평균 21도까지 떨어지는 7월 오후 평균 온도가 28도 정도이며, 1월중 온도는 매일 15-9도를 유지한다. 일일 및 연간 온도 변화는 내륙쪽에서는 심하게 나타나며, 사막지역에서는 극에 달한다.

떡깔나무, 침엽수 및 곱향나무(juniper) 숲은 거의 북부지역과 Tell Atlas 산맥에만 분포한다. 완충지대인 고원지대(High Plateau)의 스텝과 유사한 기후는 초원과 관목(灌木)의 성장을 가능케 해준다. 위험스러운 동물로는 표범(leopard), 치타(cheetah) 그리고 다수의 영양(gazelle) 종류들이 있다.

국토의 북중부 및 북동부에 자리잡고 있는 알제리의 천연개스전(田)은 세계 최대의 매장지중 한나이다. 알제리는 리비아와 나이제리아 다음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석유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가운데 하나이다. 아프리카의 유일한 수은(mercury) 생산국으로서 알제리는 세계 공급량의 약 1/10을 공급한다. 이밖에 주요 철광 자원이 조업중인 오웬자(Ouenza)와 미개발된 매장량을 갖고 있는 서부 사하라의 가라 제빌레(Gara Djebilet)에 매장돼 있다.

알제리 인구의 4/5는 아랍인이며, 베르베르인(Berbers)이 주된 소수 그룹이다. 공식언어는 아랍어이며 소수 토착 프랑스인들의 프랑스어와 베르베르어가 사용된다. 베르베르 인종은 Kabyles, Shawias 및 M'zabites 산맥을 포함하는 알제리에 거주하고 있다.

이밖에 베르베르의 하부그룹인 투아레그인(Tuaregs)은 알제리 남서부 아드라(Adrar)나 남동쪽 Ahaggar 산맥과 같은 소규모 오아시스에서 주로 살아가는 유목민인 목자(牧者)들이다. 그 밖의 인종은 비교적 소수의 프랑스인, 스페인인, 이태리계 유럽인들이 있다. 이슬람(Islam)이 공식 종교이다.

알제리의 인구는 연간 성장률이 매우 높으며, 북아프리카의 평균을 웃돌고 있다. 출생률은 1950년대이후 꾸준히 감소하기는 하였지만, 낮은 출생률을 상쇄하는 효과를 갖는 사망률이 그 이상 감소하였다. 총인구의 2/15이상이 15세이하의 젊은층이며, 절반정도는 도시지역에 거주한다. 실업에 대한 대안으로 유럽으로의 이주는 1970년대 중반 프랑스가 이주를 제한하는 바람에 감소하였다. 평균 수명은 남자 67세, 여자 69세로 북아프리카 평균보다 높다.

 


 2. 정치약사

초기부터 베르베르인이 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의 주민이다. 알제리는 페니키아, 로마, 비잔틴, 아랍, 오스만 터키에 의해 지배되었던,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을 따라서 유서 깊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아라비아에서 이슬람이 출현하자 급속히 그 영향력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최초 아랍인의 침투는 7세기 중반에 이루어졌고, 오늘날 튀니지의 '까이라완'(Qairawan)은 그 기지로서 670년 아랍인에 의해 설치되었다.

알제리 북부지역에서의 고고학적 발굴은 약 50만-70만년전 그곳에 직립원인(Home Erectus)이 살았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페니키아(Phoenicia) 상인들이 BC 제1 밀레니엄 초에 지중해 해안에 정착하였다. 오늘날 튀니지인 카르타고(Carthage)는 페니키아의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후에 카르타고 제국의 중심이 되었다. 카르타고는 BC 146년 로마에 의해 함락되었다. AD 40년까지 로마의 지배는 최소한 해안을 따라 확고하게 실시되었고, 알제리는 로마인들이 Mauretania Caesariensis라 불렀던 지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후배지(後背地)는 로마 통치를 벗어난 지역으로 남았다.

5세기 로마의 몰락은 반달인(Vandals)들이 침입하였고, 그후에는 비잔틴(Byzantines)의 침입이 있었다. 이 기간동안 기독교가 상당히 성장하였고, 일반적으로 라틴어가 북아프리카를 통하여 사용되었다. 7세기에 이슬람의 침입이 시작되었고, 711년까지 모든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움마이야(Umayyad) 칼리프(Caliphate)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토착민 베르베르인들이 이슬람화되었다. 740년 카리지파(Kharijite) 이교도의 영향하에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움마이야 왕조의 통치로부터 분리되었고, 몇몇 이슬람 베르베르 제국은 가장 유명한 스페인까지 영역을 확장한 알-모라비드(c. Almoravid; 1130-1269)와 알-모하드(c. Almohad; 1130-1269)의 뒤를 따랐다. 알-모하드의 쇠퇴는 정착민을 근본적으로 유목민으로 변형시킨 베두윈(Bedouin) 이주자들의 유입으로 연결되었다.

16세기초 스페인에 의한 북아프리카의 침입은 아프리카인들을 1536년까지 이 지역에 실질적인 통치권을 수립한 오스만제국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바버리(Barbary: 아프리카 북부 지역의 옛 이름)의 해적들은 수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을 위협하였고, 이는 1830년 프랑스에게 알제리에 입성할 구실을 주었다. 전투가 1884년말까지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프랑스는 대부분의 알제리 저항을 진압하였다. 프랑스로부터 국가 독립을 위한 알제리 운동은 프랑스 군대가 민족해방전선(FLN; National Liberation Front)을 제압하고 국가의 평온을 되찾기 위해 동원된 쓰라린 알제리 독립전쟁의 서막이 오른 1954-55년의 봉기를 가져왔다.

샤를르 드골(Charles de Gaulle) 프랑스 대통령은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1962년 평화협상을 주도하였다. FLN이 국가를 인수하고 1962년 7월 3일 알제리를 독립으로 이끌었기에, 대규모 프랑스 공동체 대부분은 알제리를 떠났다.

1965-78년 알제리를 통치한 보메디엔(Houari Boumedienne) 대령과 1979-92년 통치한 벤제디드(Chadli Bendjedid) 대령의 통치하에서 알제리는 석유 및 개스 산업을 국가가 중앙집권적으로 운영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FLN의 오랜 권력 장악은 점차 부패와 실수를 낳았고, 1988년 FLN이 다수당 선거를 허용하는 1989년 신 헌법을 채택하도록 만든 중대한 반정부 봉기를 가져왔다. FLN의 최고 역할은 대부분 이슬람 원리주의(Islamic fundamentalism)를 신봉하는 다른 당(黨)에 의해 재빨리 도전을 받았고, FIS가 1991년 국가인민의회(National People's Assembly)에서 다수의 의석 확보가 확실해지자 군사그룹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테러 행동과 정부에 대한 보복적인 폭력을 시작하였다. 1995년까지 알제리는 정부 보안군이 무장된 이슬람 반대파를 성공적으로 분쇄하지 못함으로써 실질적인 시민전쟁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알제리의 정치 약사는 <표>와 같다.

알제리의 정치약사

■ BC 9세기 : 카르타고 지배

■ BC 2세기 : 로마제국 지배

■ 7세기 : 아랍인의 침입으로 이슬람화

■ 16세기 : 오스만 터키 지배

■ 1830년 : 프랑스가 권력을 장악하고, 오스만 터키를 몰아냄

■ 1920년대 중반 : Messali Hadi를 중심으로 근대적 민족주의 운동 시작

■ 1954년 : 민족해방전선, FLN(National Liberation Front) 결성후(11월 4일), 알제리에서 프랑스 정부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시작

■ 1962년 :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은 정전(停戰)과 독립을 선언(7월 5일),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을 수립(9월)하고, 초대 수상에 Ahmed Ben Bella가 됨

■ 1963년 : 대통령 중심제의 신헌법을 제정하고(9월), Ben Bella가 대통령에 피선

■ 1965년 : 군사 쿠데타는 군 장교들로 이루어진 혁명 의회를 구성하고, Colonel Houari Boumedienne이 정권을 장악하고(6월) 의장으로 선출됨

■ 1967년 :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다른 아랍 국가들과 연합, 미국과의 관계가 깨짐, 구 소련과 군사적, 원조에 있어 더욱 밀접한 관계를 이룸.

■ 1976년 : FLN의 통제하에 일당체제 선포

■ 1978년 : Houari Boumedienne 대통령 사망(12월)

■ 1979년 : Chadli Bendjedid 대통령에 당선(2월)

■ 1979년 : Chadli Bendjedid 대통령에 당선

■ 1988년 : 악화된 경제 상황에 대한 항의와 폭동으로 수백명이 사망, Chadli Bendjedid 대통령 3선에 당선(12월)

■ 1989년 : 국민투표로 새 민주 헌법 채택(2월)

■ 1991년 : 1차 총선에서 이슬람구국전선(FIS) 승리(12월)

■ 1992년 : 친 FLN 세력인 군부가 정권 장악, Chadli Bendjedid 대통령 사임(2월)

■ 1994년 : Lamine Zeroual 대통령 취임(1월)

■ 1995년 : Lamine Zeroual 대통령 당선(11월)

■ 1996년 : 헌법 개정으로 종교정당의 결성 금지(11월)

 


3. 산업 경제

1) 투자환경

2) 주요경제지표

3) 경제 동향

4)석유산업

 


4. 한국과의 관계

■ 공식 수교 : 1990년 1월 15일

■ 주 알제리 한국 대사관 : 1990년 4월 3일 설치. 1994년 11월 16일 공관원 잠정 철수(주 프랑스 대사관에서 업무수행)

주한 알제리 대사관 : 1992년 10월 설치(A. Boutache 대사 1996년 6월 19일 신임장 제정)

■ 주 알제리 진출 업체 : 삼성물산, 경인에너지(광구석유탐사), (주)대우, 유개공(알제리 석유공사와 합작 투자)

5. 북한과의 관계

■ 공식 수교 : 1963년 4월 18일

6. 알제리의 주요 수출입품

■ 주요 수출품 : 원유, 연료, 윤활유, 천연 가스, 수은, 인산 광물, 포도주, 석유제품

■ 주요 수입품 : 기계류, 밀, 옥수수, 콩, 육류, 달걀, 음료수, 소비재, 원료, 자동차, 비행기, 자본재, 석유제품

7. 알제리의 주요 수출입국

■ 주요 수출국 : 이태리(18.8%), 미국(14.8%), 프랑스(11.8%), 스페인(8.0%), 독일(7.9%), 네덜란드(7.5%)

■ 주요 수입국 : 프랑스(29.6%), 스페인(10.5%), 이태리(8.2%), 미국(8.0%), 독일(5.6%), 오스트리아(3.0%)

8. 한국과의 교역 관계

■교역량(1999년, 단위: 1000달러) : 수출 248,618  수입 76,292  무역수지 172,327

■ 한국의 대 알제리 주요 수출품 : 전자, 전기, 기계, 자동차

■ 한국의 대 알제리 주요 수입품 : 화학, 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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