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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상식 Flower Wisi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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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無窮花) rose of sharon/shrub

【대한민국 국화】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는 한자어지만 중국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산해경》에 한국에 훈화초(薰華草:무궁화)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아욱과의 낙엽관목이며 근화(槿花)라고도 한다.

- 최근에 개발된 심산은 우정과 한사랑을 교배하여 얻은 돌연변이로 재래종과는 달리 밤에도 꽃이 피고 개화시간도 3배나 길다.

【원산지와 명칭의 유래】

학명에 syriacus가 붙여진 것은 시리아 원산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시리아가 원산지라는 데 대해서는 이론을 내세우는 학자가 많고 인도·중국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하다.

- 그러나 원산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널리 재식되어온 것은 틀림없다. 무궁화의 품종에는 200여 종이 있고 동아군(東亞群)에 속하는 식물이다.

무궁화의 명칭은 중국에서는 목근(木槿)·순영(舜英)·순화(舜華)·훈화초(薰花草)·단()·친()·일급(日及)·조개모낙화(朝開暮落花)·화노옥증(花奴玉蒸)·번리초(藩籬草) 등 여러 가지로 쓰였고, 무궁화로는 쓰여지지 않았다.

- 한국에서는 한자로 無窮花·無宮花·舞宮花로 쓰였는데, 최근에는 無窮花로만 쓰고 있다. 옛날부터 쓰여 오던 무궁화라는 한글명은 16세기부터 나타나는데 한자로는 목근화(木槿花)로 표기하고 있었다. 이로써 볼 때, 목근화 → 무긴화 → 무깅화 → 무궁화의 형태로 변했으며 여기에 뜻이 좋은 무궁화(無窮花)로 차음(借音)하여 표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정상(金正祥)은 그의 논문 《무궁화보(無窮花譜)》에서 1923년에 전남 완도군 소안면(所安面) 비자리(榧子里)에서는 노인들이 무궁화를 ‘무우게’로 부른다고 보고하였고 ‘무궁화’라는 꽃이름은 ‘무우게’에서 변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일본에서는 무쿠게[牟久計]·모쿠게아사가오[牟久計朝顔]·하치스·기하치스 등으로 쓰고 있는데 ‘무쿠게’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무궁화가 도입될 때에 전해진 이름이다. ‘무쿠게’라는 한자가 오직 음만을 표시하고 별로 뜻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더욱 그렇게 믿어진다.

- 속명 Hibiscus는 이집트의 히비스신(Hibis神)을 닮았다는 뜻으로, 곧 히비스신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또 속명이 Althaea라고도 쓰였는데 그리스어로‘치료한다’라는 뜻이다.

영명(英名)으로 rose of sharon이라고 한 것은 가나안 복지 중에서 제일 좋은 곳 샤론에 피는 장미라고 하여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크게 찬미한 것이다. 무궁화가 유럽에 도입된 것은 1596년이다.

【특성】

무궁화의 가장 큰 특색은, 온대지방에서 여름에 피는 좋은 나무꽃이 거의 없는데, 7∼10월에 약 100일 동안 계속하여 화려한 꽃을 피운다는 점이다. 홑꽃은 반드시 이른 새벽에 피고 저녁에는 시들어 날마다 신선한 새로운 꽃이 핀다. 공해에 강하고, 번식이 쉬우며 관리도 어렵지 않다. 정원수·분꽃·생울타리·가로수 등 다방면에 걸쳐 가꿀 수 있다. 추위에 약한 것으로 알기 쉬우나 내한성(耐寒性)이 강한 것도 있다.

【재배 역사】

한국에서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진(東晉)의 문인 곽복(郭璞:276~324)이 쓴 지리서(地理書) 《산해경(山海經)》에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君子之國有薰華草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다. 또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君子之國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기록도 있다. 이상에서 보면 4세기 중엽의 한국에는 가는 곳마다 무궁화가 만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무궁화가 한국 자생(自生)인 것으로 믿을 만도 하다.

-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 하였고, 《구당서》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중국에서 한국을 근역(槿域)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예종(睿宗)은 고려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하였다.

- 무궁화는 주로 자가불화합성 식물(自家不和合性植物)이므로 오랫동안 수많은 잡종이 생겼을 것이고 또 변이(變異)에 의한 품종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나 오늘날 재래종으로서 볼만한 것이 드물다. 이러한 현상이 된 것은 외환(外患)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과 한국인들이 정원 꾸미는 것을 전통적으로 지나친 사치로 생각해 왔던 까닭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일제강점기에 무궁화가 한국 민족의 상징적인 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적으로 뽑아 없애버림으로써 큰 수난을 겪은 때문이다.

- 꽃나무가 한 민족의 이름으로 이처럼 가혹한 시련을 겪은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광복 이후 1950년대부터 서울대학 농과대학 화훼연구실에서 학문적인 연구와 육종(育種), 세계적인 원예품종의 도입과 일반재배법의 개발 등이 시작되었다. 72년 역사상 처음으로 약 100품종의 무궁화를 전시하였다.

【재배】

번식은 주로 꺾꽂이·접붙이기 등 영양번식에 의한다. 종자도 많이 채취할 수 있고, 발아도 용이하지만 자가불화합성 식물인 관계로 육종을 목적으로 하는 이외에는 실생으로서는 기대하는 꽃이 피지 않는다. 양수(陽樹)인 까닭에 일조(日照)가 많은 양지바른 곳에 심는다.

【병충해】

무궁화는 병충해가 적으므로 재배하기 쉽지만 입고병(立枯病)·진딧물·박쥐나방 등 몇 가지가 두드러진다.

【이용】

수피에서 섬유를 얻어 제지원료로 쓴다. 한방에서는 4-6월에 수피 또는 근피를 벗겨 햇빛에 말린 것을 근피(槿皮)라 하며 해열·해독·소종(消腫)의 약효가 있어 기관지염·인두염·장염·이질·탈항(脫肛)·치질·대하(帶下)·옴 등의 치료에 달여서 복용하게 하였다. 동의보감에는 사혈(瀉血)을 멎게 하고, 설사 후의 갈증이 심할 때 달여 마신다고 하였다. 어린 잎을 나물로 하고 차로 대용하기도 한다.

 【풍속·민속·상징

 혼례 때 입는 활옷[闊衣]에 무궁화를 수놓는 것은 무궁화의 다산성에 유감(類感)한 습속이다. 무궁화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지는 하루살올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나무 전체로는 끊임없이 피고지는 무궁한 영화의 나무로서 나라의 꽃으로 삼은 한국인의 종교적인 심성이 깃들어져 있다.

- 대표품종인 백단심(白丹心)은 꽃이 백색이어서 무구청정(無垢淸淨)을 나타내고 진홍빛 화심(花心)은 겨레의 얼을 상징한다. 옛 당나라의 어느 여왕이 꿈에서 동지섣달에 꽃이 피라고 기원하여 다른 꽃은 모두 피었는데 무궁화만은 피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한국민족이 당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자료: 1996, Doosan Dong-A'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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