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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But Rich

벵갈보리수가 점령한 신들의 도시 앙코르 와트’ - 캄보디아

 

 역사학자 토인비(A.J. Toynbee)가 유적의 경이로움과 함께 여생을 살고 싶다던 앙코르와트(Ankor Wat)

 

안젤리나 졸리의 툼 레이더(Tomb Raider)” 촬영지로 유명한 앙코르와트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유적지는 대부분 신()들의 도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Angkor Wat) 역시 힌두교 신들의 도시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한 앙코르와트는 안젤리나 졸리의 툼 레이더(Tomb Raider)’로 베일에 싸인 앙코르와트를 세상에 알렸다.

벵갈보리수의 굵은 뿌리들이 타 프롬(Ta Phrom)’ 사원을 감싸고 이끼 낀 돌 사이에 파고든 유적지에서의 안젤리나 졸리의 스릴 넘치는 연기로 앙코르와트는 신비의 사원으로 알려졌다. 영화의 내용보다도 사원을 감싼 굵은 나무뿌리가 더 경이로웠다. 이런 이유로 앙코르와트는 꼭 한번쯤 가보고 싶은 유적지 중 하나였다.

 

툼 레이더(Tomb Raider)의 촬영지로 유명한 타 프롬사원의 거대한 벵갈보리수 뿌리

 

오죽하면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이곳에서 경이로운 유적과 함께 남은 여생을 살고 싶다고 경탄했겠는가! 하지만 나의 관심은 좀 다르다. 문명의 흥망성쇠가 더 큰 관심사이며, “거대한 왕국이 어떻게 한순간에 숲속의 전설왕국이 되었는가?”가 의문이다.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로 도읍이며, 와트(Wat)는 크메르어로 사원이라는 뜻으로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읍'이라는 의미다. 12세기 초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옛 크메르 제국의 도읍으로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에게 봉헌되었고,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도 쓰였다. 30년에 걸쳐 건설된 이 사원의 정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왕의 사후세계를 강조한 측면이 있다. 참고로 바르만(Barman)은 힌두교의 2번째 계급인 크샤트리아에 해당하는 성()이다.

중동을 연구하느라 가까운 동남아지역을 방문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마침 아내도 방학이라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에 앙코르와트를 택했다.

지난해 12월 고향에서 홀로 생활하시던 어머님이 낙상사고로 입원하셨는데 회복하시어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바쁜 연말연시를 보내며 지치기도 했고 퇴원 후에는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병원이 서울에서 먼 충북 앙성에 있고 고향집은 충주에 있다. 두 명의 동생이 있지만 부모부양은 장남의 몫이라며 관심이 없기에 3지역을 다니다보니 지치기도 했다. 어머님에게는 죄송했지만 머리도 식히며 생각도 정리하고 싶어 캄보디아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전율의 킬링필드(Killing Fields)’ 영화밖에 더 이상의 큰 상식은 없었다. 단체여행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여행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경험 많은 큰딸에게 사실을 얘기하니 노랑풍선이라는 여행사를 소개한다. 역시 젊은이들이 났다며 즉시 결정하고 큰 계획도 없이 아내의 손을 이끌고 캄보디아 여행길에 올랐다.

 

캄보디아 역사를 말해주는 앙코르와트의 벵갈보리수(Spung)

영화 킬링필드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 동남부에 위치하며 베트남, 라오스,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인구 약220만 명의 프놈펜 (Phnom Penh)이며 면적은 남한의 약1.8배 정도, 인구는 약1,700만 명, 언어는 크메르어, 종교는 불교가 약95%이고 나머지는 무슬림과 힌두교다.

캄보디아는 찬란했던 앙코르왕조시대 이후 주변국의 지배와 프랑스 식민통치 받은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캄보디아 국가는 부남(扶南, Funan) 왕국으로 기원후 1세기 무렵에 캄보디아와 베트남 남부인 메콩 강 하류 지역에 건국되어 7세기까지 존속하였다.

크메르 민족은 자야바르만(Jayavarman) 2세가 스스로 자신을 신왕(神王)으로 칭하고 802년 앙코르 왕조를 열어 1431년 현재의 태국인 시암의 침략으로 쇠퇴할 때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후 캄보디아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식민지(1864~1940)가 될 때까지 태국과 베트남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왕국은 명맥만 유지하다가 캄보디아 공화국(1970~1993) 시기를 거쳐 1993년 이후 오늘날 캄보디아 왕국(王國)이 되었다.

크메르 민족은 찬란했던 앙코르왕조 이후 500년 이상 비운의 역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외세의 식민통치 이후에도 대내적인 분쟁으로 국민들은 도탄에 빠졌다. 슬픈 이야기지만 크메르 민족은 긴 세월동안 위대한 통치자 없이 대내외적 핍박을 받아왔기에 지쳐있는 것 같다. 될 되로 되라라는 식으로 케세라세라(chesa·ràsa·rà)를 노래하며 뿌리내리고 사는 것 같았다.

앙코르와트의 스펑나무(Spung) 굵은 뿌리가 캄보디아의 역사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조상이 아무리 출중했어도 후손이 그 유산을 지켜내지 못한 인과응보의 탓이다. 캄보디아인들은 앙코르와트의 스펑나무 뿌리처럼 세상의 변화에 관계없이 그저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느낌이다. 문명의 흥망성쇠도 결국은 인간에 의해 끌려가는 수레바퀴와 같다.

 

캄보디아의 아픈 상처 킬링필드(Killing Fields), 와트마이

 

시엠립에 있는 킬링필드 와트 마이에는 폴 포트정권의 학살만행이 보존돼있다.

 

시엠립에는 작은 킬링필드라 불리는 와트 마이사원이 있다. 와트 마이란 크메르어로 새로운 사원이라는 뜻이다. 사원이라기보다는 추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여기에 전시된 폴 포트 공산정권의 만행 사진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800여구의 해골이 전시돼 있는 이 사원은 들어가기만 해도 등골도 오싹해지는 전율을 느낀다.

킬링필드란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Khmer Rouge)’라는 무장 공산주의단체가 자행한 학살로 죽은 시체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매장지를 말한다. 크메르 루즈는 37개월에 걸쳐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약200만 명 가까운 국민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거나 학살하였다. 캄푸치아 정권의 학정은 19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막을 내렸다.

킬링필드 기록관은 캄보디아인들이 과거 아픈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눈물로 쓴 () 맺힌 역사기록관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아유슈비츠(Auschwitz) 강제수용소의 잔인한 학살에 비견되는 캄보디아의 비극이다. 킬링필드는 현대사에서 가장 잔인한 인간의 만행을 보여주는 교과서이자 인간의 잔혹성을 가르쳐주는 교육장이다. 벵갈보리수로 뒤덮인 앙코르와트의 유산이 다시 세상에 빛을 드러내 크메르 민족의 밝은 등대가 되기를 기원한다.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에 의해 되살아난 시엠립(Siem Reap)

 

앙코르호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가(Naga)가 정문을 지키며 앙코르의 미소 조각상도 있다.

 

이른 새벽에 도착한 탓인지 첫날의 일정은 비교적 여유로웠다. 단체여행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짜여 진 계획표에 따라 정신없이 끌려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던 단체여행의 첫 일정은 그런대로 안심이 놓였다.

인천 국제공항 3M카운터에서 노랑풍선 담당자로부터 안내를 받은 후 이스터(Eastar) 항공편으로 6시간쯤 비행하여 시엠립의 호텔에 도착한 것은 126일 새벽 3시경이었다. 신축 호텔인 앙코르 호텔(Angkor Hotel)은 넓고 깨끗했으며 방 번호도 마음에 드는 223번이다.

시엠(Siem)은 크메르어로 태국, (Reap)은 패배를 의미한다. ‘태국의 패배라는 의미가 있는 시엠립은 캄보디아 북서쪽에 자리 잡은 세 번째 도시로 인구가 약15만 명인 소도시다.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거대제국이었던 크메르왕국은 시엠립에 100만 명이 거주하는 수도를 건설하고 각종 사원들을 건설하여 국력을 과시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앙코르와트이다.

그러나 자야바르만 7세의 과중한 토목공사와 집권층의 부패로 13세기이후 국력이 쇠퇴하였고, 이틈을 노려 태국의 아유타야족이 1431년 수도 앙코르를 점령했다. 그 후 왕국은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긴다. 수도가 함락되자 앙코르와트는 태국의 영향으로 힌두교사원 일부가 파괴되거나 불교사원으로 사용된다. 그 후 전설속의 왕국이 돼버린 앙코르와트는 1860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세계적인 희귀종인 박쥐와 압사라 꽃이 있는 빅토리아 파크

 

압사라 꽃은 캄보디아의 국화는 아니지만 '구름과 물의 요정'이며, 매일 아침 호텔로비에 갈아주는 작은 연꽃모양의 압사라 꽃은 신선하고 아름답다.

 

이른 새벽 도착한 탓으로 첫째 날 오전은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가이드는 민속촌의 일정이 갑자기 변경됐다며 일행을 마사지 숍으로 인솔한다. 아직 통성명도 못한 생면부지의 일행과 함께 마사지를 받는 게 쑥스럽기는 했지만 피로를 풀기에는 좋았다. 마사지를 받은 후 빅토리아 파크방문은 공원의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름도 모르며 집에서 물주고 키우던 화초가 고목나무에 기생하는 모습은 정말 신기했다. 정원에서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가 꽃다발을 들고 커다란 석사자상 옆에서 기념 촬영하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희귀종이라는 자이언트 박쥐가 고목에서 잠자는 것도 신기했고, 야자수 거리에서 파인애플과 과일주스 파는 상인들의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꽃이 많이 수입된 탓이라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들도 많았다. 객지에서 만난 친구처럼 향기롭고 반가웠다.

특히 이목을 끈 것은 압사라(Apsara) 꽃이다. 압사라는 구름과 물의 요정으로 인드라의 하늘에 사는 천선(天仙)이다. 간다르바(Gandharva)의 부인으로 춤을 추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캄보디아에서 압사라는 춤의 요정이다. 캄보디아의 전통춤은 압사라 댄스로 대표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여신인 님프(Nimp)아가씨’, ‘신부을 뜻하기에 영어권에서는 압사라를 님프로도 번역한다. 압사라 꽃이 결혼식 화환의 꽃처럼 축복(祝福)의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가이드는 아름다운 꽃마다 압사라 꽃이라고 알려준다. 어느 꽃이 진짜 압사라 꽃인지는 분간하지 못하면서도 압사라 꽃은 춤의 요정과 같이 꽃의 요정일거라는 생각은 했다. 나는 위 사진의 꽃이 압사라 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꽃을 정확히는 잘 모른다.

 

톤레 샵 호수(Tonlé Sap Lake) 수상마을의 애환

 

맹그로브 숲으로 둘러싸인 동남아 최대 담수호 톤레샵은 캄퐁블럭(수상마을)으로 유명하다.

 

빅토리아 파크를 거닐며 시엠립의 공원을 관람한 후 톤레 샵 혼수(Tonlé Sap Lake)로 향했다. 톤레 샵은 한국의 언론이나 관광객들의 여행담을 통해 잘 알려진 곳이기에 그리 낯선 지명은 아니었다.

시엠립에서 남쪽으로 약15km 정도 가면 넓은 황토색 바다로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호수가 톤레 샵 호수다. 이 호수는 세계에서 세 번째, 동남아시아 최대의 담수호로 동남아 최대의 민물어장이다. 건기에는 길이 150km, 너비 30km, 면적 3,000km2의 호수이지만, 우기(雨期)에는 메콩 강물이 역류하기 때문에 평소의 3배로 면적이 넓어진다. 최근에는 충적토가 계속 쌓여 해마다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맹그로브 숲에 둘러싸인 이 호수에서는 수상가옥이 몰려있는 감퐁플럭이라는 수상마을을 관광하며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톤레 샵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기대는 빗나갔다. 황토색 누런 호수에 생선 비린내 같은 역겨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유람선으로 광활한 호수로 나가 수상보트와 수상마을, 감퐁플럭을 마주치며 열악한 원주민들의 생활을 보았다. 맹그로브 숲 아래서 간간이 고기 잡는 어부들의 모습도 보였고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수상보트도 눈에 띠었다.

캄퐁블럭을 체험하는 관광객에게는 기쁨이겠지만 톤레 샵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생활은 고통인 것 같아서 애환(哀歡)의 느낌이 들었다. 내가 느낀 현지인들의 삶은 그리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연민의 정을 느꼈다.

 

톤레 샵의 수상가옥(캄퐁블럭)의 생활은 매우 열악했으며 관광객으로서 즐기기엔 죄송하고 미안했다.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있는 수상가옥에 유람선이 도착하자 가이드 Mr. 주는 카누체험을 권한다. 벽에는 한글로 쓴 용감한 가족촬영지를 카누를 타고 체험해 보세요! 라는 큼지막한 간판이 붙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 꼬마가 졸졸 따라다니며 마사지 시늉하며 관광을 방해한 것도 싫었는데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수영도 수영이려니와 별로 생각이 없었기에 우리 부부는 카누관광을 거절했다. 동행한 일행들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두 거부하여 카누관광은 무산되었다. 순간! 가이드의 얼굴이 갑자기 변하더니 친절하던 안내도 가라앉는다.

찜찜한 마음으로 배에서 내려 출구로 나오니 지뢰피해 상이용사들이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모금활동을 하고 있었다. 6.25 전쟁 후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전쟁직후 나의 어린 시절에는 상이용사들이 참 많았다. 연민의 정으로 시바가 약간의 헌금을 하고 출구를 벗어났다. 출구의 상인들이나 가게 모습도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다. 상인이나 어부나 모두 열악한 생활을 한다는 사실에 관광객으로서 그들을 보며 즐긴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아내를 시바(Sheba)라 부른다. 예멘방문 할 때 우리가 항상 묵었던 호텔이 시바호텔이고 예멘 사람들은 옛 시바왕국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시바는 나를 아는 예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름이다. 이번여행에는 혼란이 많았다. 수없이 등장하는 시바 신()은 파괴의 남신(男神)이지만, 아내를 상징하는 시바는 여왕(女王)이다. 시바 신은 종종 춤추는 여인처럼 묘사되기에 혼동의 여지가 많았다.

톤레 샵을 떠나면서 캄보디아인들의 생활이 사라지지 않는다. 폴 포트 학정(虐政)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애련하다. 관광객들이 톤레 샵에서 환호하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지만 나는 그런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환호성 지를 수 있는 다음 방문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했다.

 

전통춤 압사라 댄스를 관람하며 즐긴 디너는 전통예술을 이해하는 하나의 계기였다.

 

톤레 샵 관광을 마치고 압사라 춤을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뷔페식 식당인 레스토랑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처음 보는 압사라 춤은 가느다란 비단 실을 하늘에 날리듯 섬세했으며 댄서들의 몸 노림도 유연했다. 춤의 동작은 왕자, 공주, 거인, 원숭이 등의 4가지 주체에 의해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전통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압사라 전통춤과 함께 한 디너는 캄보디아인들의 예술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압사라 춤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과일가게도 들렀다. 상점은 흔히 보던 바나나, 파인애플, 수박 등을 비롯하여 처음 보는 신기한 과일들까지 과일의 천국이었다. 야간조명에 반짝이는 과일은 방금 전 식사를 했음에도 침샘을 자극했다. 값이 저렴하여 시바가 좋아하는 망고랑 몇몇 낯선 과일도 구입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가이드 미스터 주는 낮에 톤레 샵에서의 카누사건이후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내일 일정을 소개하며 이곳은 치안상황이 좋지 않으니 절대 외출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떠났다.

 

젊은 관광객들의 활기가 넘치는 팝 스트리트 거리와 야시장의 불야성

 

즉석에서 춤과 공연이 펼쳐지는 야시장은 젊음을 불사르는 외국인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가이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야시장이 구경하고 싶었다. 택시라도 타고 야시장(夜市場)을 구경할 속셈이었다. 호텔 프런트에 알아보니 셔틀버스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하니 일행들도 찬성하며 동행했다.

찾아간 야시장은 팝 스트리트(Pub Street) 부근에 있었는데 북적대는 관광객으로 불야성이다. 낮에 가졌던 찜찜하고 감상적이 마음이 사라지고 모처럼 활기가 넘쳐났다. 외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정말 낭만적이다. 어울리지 못하는 나이가 서럽기만 했다.

기념품가게에서 쇼핑도하고 길거리 음식도 맛보았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놈 크루옥(Nom Khruok)’이란 빵이었는데 우리의 국화빵과 흡사했다. 쌀가루를 코코넛으로 반죽하여 구은 빵(Coconut Rice Cake)인데 가격도 1달러로 저렴했다. 놈 크루옥을 맛보던 중 동행한 여대생들이 지나기에 권했더니 맛있다며 즐거워한다.

서구식 미니 칵테일 바가 있어 호기심으로 들렀다. 맥주나 칵테일을 즐기는 외국의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영어로 ‘The Piano’라고 쓰인 안내표식이 보인다. 안젤리나 졸리가 촬영한 곳이라며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느라 바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기다보니 자정이 되었다. 돌아오는 셔틀버스에서 동행했던 사람들이 흡족한 만족감을 표하니 우려했던 생각도 사라졌다. 화려한 야시장에서의 쇼핑은 낮에 가졌던 모든 생각들을 잊기에도 충분했다.

야시장의 즐거움에 매료된 우리는 다음날도 마사지 숍을 찾았고 마지막 날에도 마사지도 받고 쇼핑하며 즐겼다. 여행은 어느 곳을 방문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는 것은 더 중요하다.

 

비슈누 신()에게 봉헌된 앙코르와트(Ankor Wat)

 

서문에서 나가(Naga) 난간을 따라 길이 250m의 해자(垓字)를 지나야 사원의 도읍’, 앙코르와트에 갈수 있다.

 

해자(baray)에서 미역 감는 아이들 옆에서 축하라도 하듯 한 송이 연꽃도 반갑게 맞이한다.

앙코르와트는 넓은 해자로 둘러싸인 숲속에 있기에 관람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앙코르와트는 서문이 유일한 출입구다. 나가(Naga)가 지키는 해자를 건너 계속 직진하면 앙코르와트가 나오고, 앙코르와트에서 약간 북서쪽에 벵갈나무 숲 타 크롬이 있으며, 타크 롬의 서문으로 나와서 계속 서쪽으로 가면 앙코르의 미소가 있는 앙크로 톰으로 갈 수 있다.

앙코르와트는 인공호수에 둘러싸인 가로 850m, 세로 1050m의 장방형 건물로 높이가 100m를 넘는 세계 최대의 종교건축물이다. 방대한 유적지를 모두 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둘째 날은 서둘러 오전 9시경 호텔을 출발하였다.

동쪽 해자(Baray) 앞에서 하차한 일행은 도로를 따라 해자(垓字)를 감상하며 서문(西門)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머리가 7개인 커다란 뱀신, 나가(Naga)가 있는데 해자를 건너기 위해서는 나가가 지키는 난간을 따라 길이 250m의 긴 사암다리를 건너야 한다. 나가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다섯 혹은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으로 반신(半神)을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용()으로 번역하며 여성형은 나기(Nagi, 龍女)이다. 나가는 물의 신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코끼리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해자를 건너려면 머리가 7개인 뱀신(), 나가가 지키는 긴 사암다리를 건너야한다.

 

길이 250m의 사암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압살라 부조가 있는 탑문을 만난다. 계속 걸어 장서각 또는 제기를 보관했다는 건물을 지나면 앙코르와트의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이 있다. 이곳에는 휴게소가 있으며 화장실은 돈을 내야 이용할 수 있다. 변기 옆에 타일로 된 물통이 있고 그 위에 플라스틱 바가지가 하나 놓여있다. 돈은 냈지만 이용하기가 좀 그래서 억지로 참았다.

휴게소를 돌아 명예의 테라스를 거쳐 3층으로 된 수미산 모양의 앙코르와트를 관람할 수 있다. 명예의 테라스에는 남녀 신들과 함께 전투장면이 벽화로 정교하게 잘 조각돼 있다.

 

명예의 테라스에는 많은 신들과 반인반수의 전사들의 전투장면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많은 힌두교의 신들을 보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부터는 힌두교의 신들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저 고리타분한 유적이나 신기한 부조 조각만을 감상하게 된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비슈누 신에게 헌정한 213m3층 계단위에 연꽃모양의 5개의 탑으로 이루어졌다. 계단이 급격사인 것은 신에 대한 경외감을 표시한 것이다. 3층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조심해야 한다. 일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부주의한 행동으로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고 한다.

 

신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수미산을 상징하는 5개의 탑에 오르는 계단은 신에 대한 경외심의 상징으로 급경사이다.

 

타종교에 대한 경외심이 요구되는 덕목이다. 탑 내부를 관람하다보면 목이 잘려나간 동상도 종종 볼 수 있고 중요 부위에 많은 손길이 간 흉측한 꼴도 흔히 볼 수 있다. 아무튼 힌두교 신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위대한 이 사원을 감상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힌두교의 삼신(三神), 브라흐마(Brahmā), 비슈누(Viṣṇu), 시바(Shiva)

 

힌두교의 주신인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3남신과 그 배우자 사라스바티, 락슈미, 파르바티의 3여신(왼쪽부터, Wikipedia)

 

브라흐마(Brahmā)는 우주의 근본원리이이며 정신으로 창조자를 뜻하며, 불교의 범천(梵天)에 해당한다. 비슈누(Viṣṇu)유지자”, 시바(Śiva)파괴자 또는 변형자를 상징한다.

비슈누(Viṣṇu)는 커다란 금시조(金翅鳥)를 타고 다니며 악을 제거하고 정의의 회복을 유지하는 신으로 평화의 신이다. 힌두 전통에 따르면, 비슈누는 9번을 인간으로 화신(化神)(아바타)하여 인류를 악으로부터 구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일을 했으며, 마지막 10번째 화신인 칼키 아바타가 다시 인류를 구원하고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올 것이라고 한다.

시바(Shiva)는 원래 부와 행복, 길조를 의미하는 신이었으나, 나중에 창조와 파괴의 신이 되었다. 시바가 지상에 인간으로 나타난 것이 왕이며, 왕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고 믿었다. 또한 생식과 뱀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시바는 춤의 왕이라는 뜻의 나타라쟈(Nataraja)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불교에 수용되어 대자재천(大自在天)이 되었다. 시바신은 춤추는 모습이 108가지나 된다고 하며, 불교의 108번뇌도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신(女神)인 사라스바티((Sarasvatī)는 물(호수)의 소유자라는 뜻으로 물과 풍요의 여신이라고도 한다. “지혜 또는 예술의 여신을 상징한다.

락슈미(Lakṣmī)아름다움, 은총, 매력의 여신이다. 행운을 가져오고 모든 종류의 비참함과 돈과 관련된 슬픈 일들로부터 자신의 신봉자들을 보호한다.

파르바티(Pārvatī)는 시바의 부인이며 지고한 신성한 어머니(Divine Mother)”. 파르바티는 파괴, 회춘, 변형의 신인 시바의 두 번째 부인이다. 그러나 파르바티는 시바의 첫 번째 배우자인 사티(Satī)가 재화신 또는 윤회한 것이기 때문에 사티와 파르바티는 사실상 동일한 신으로 본다. 또한 파르바티는 히말라야(雪山)의 딸이라고도 여겨지는데, 이 때문에 설산(히말라야)의 처녀 또는 설산신녀(雪山神女)인 우마(Uma) 불리기도 한다.

이밖에도 힌두교의 신으로는 천계의 지배자인 인드라와 하늘과 물의 신인 바루나와 더불어 최고신들 중의 하나인 불의 신, 아그니(Agni)”, 원숭이 모습의 신으로 라마의 제자인 하누만(Hanumān)”, “태양신, 수리야(Sūrya)”, “전쟁과 승리의 신, 무루간(Murugan) 등이 있다.

 

비슈누는 평화의 신으로 10가지 형태로 몸을 바꾼 아바타(化身))

 

비슈누 신에게 헌정된 앙코르와트는 우주를 상징하는 5개의 수미산 석탑과 1층 회랑에는 힌두교의 창조신화 우유바다 휘 젖기 를 부조로 새겨 놓았다.

 

힌두교의 신은 남신의 삼주신(트리무르티)인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와 그 배우자인 여신(女神; 트리데비)인 사라스바티, 락슈미, 파르바티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남녀 신들이 있다. 인도신화의 기본은 브라흐마가 만들고 비슈누가 유지시키며 시바가 파괴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브라흐마 신이 창조하고, 비슈누가 유지보호하다가, 시바가 파괴하여 없어지면, 다시 브라흐마가 창조하고 계속 돌고 도는 체계이다.

평화의 신 또는 유지의 신인 비슈누의 아바타(화신)로는 10가지가 열거되고 있으며, 9가지의 화신(化身)은 이미 이루어졌고 마지막 10번째의 화신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아홉 번째 아바타(화신)가 붓다라고 한다.

 

앙코르와트는 우주를 상징하는 5개의 '수미산' 석탑과 창조신화가 핵심

 

창조신화는 1층에 있는 회랑 동쪽의 우유바다 휘 젖기부터 시작되어 4면에 조각돼있다.

 

앙코르와트는 우주를 상징하는 5개의 '수미산' 석탑과 창조신화가 기록된 회랑의 부조가 핵심이다. 왕은 보호를 받는 자라는 뜻으로 '바르만'은 성()으로 왕의 이름은 자야(승리), 인드라(전쟁 신) 등 신의 이름을 차용하여 사용했다. 왕들의 이름을 보면 자야바르만은 승리가 따르는 자”, 인드라바르만은 전쟁에 가호가 따르는 자라는 뜻이다. 앙코르 왕은 모계혈통이었기에 왕위찬탈도 많았을 것이다. 왕은 자신을 신격화하여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이 사원을 봉헌하고 힌두신화를 기록했을 것이다.

5개의 탑() 가운데 중앙의 가장 높은 탑은 우주의 중심인 큰 봉우리 메루산(Meru Mt.; 수미산)이며, 주위에 있는 4개의 탑은 주변의 봉우리들을 상징한다. 메루산을 상징하는 5개의 석탑은 210헥타르 면적의 4각형 땅에 쌓은 성벽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250m 길이의 입구통로인 해자는 우주의 바다인 바다를 상징한다.

잔뜩 긴장하며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오르면 탑 내부에 수많은 힌두의 신들이 조각돼있다. 그 중 일부는 현재도 숭배되어 순례자들이 놓고 간 꽃과 과일 등의 봉헌물이 눈에 띄며 향불도 살아있다. 하지만 그 소중한 유물이 많이 훼손돼있었다. 머리가 잘려나간 동상들, 코나 젖꼭지가 파헤쳐진 부조들과 각국 언어로 쓰인 낙서들은 이교도들의 행위로 추정되지만 세계 도처에서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5개의 탑 내부에는 많은 힌두의 신들이 모셔져 있다. 춤의 요정, 압사라 여신은 지상에서도 늘 바쁘며 시련을 당한다.

 

신들로 가득 찬 5개 수미산 석탑내부를 관람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오면 동편의 1층에 회랑에 조각된 부조를 볼 수 있다. 1층 회랑의 외부에는 60개의 돌기둥이 있으며, 중앙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비문이 있으며 부조회랑은 동서남북 각 벽에 2개씩 8개가 있다.

해가 뜨는 곳인 동쪽에는 생명, 탄생을 해가 지는 곳인 서쪽에는 죽음, 사멸을 상징하며, 부조 조각의 주제는 크게 2가지 인도의 전설과 경전, 앙코르시대의 전승기록을 묘사하고 있다.

 

동쪽 회랑은 창조설화로 악마와 신들의 끝없는 전쟁을 비슈누 신이 중재하는 내용이다.

 

동쪽 회랑은 가장 유명한 부조회랑이다. 힌두교의 창조설화로 비슈누가 악마와 신들의 끝없는 전쟁을 중재하는 내용이다. 우유바다를 휘저어서 불로장생의 약(암리타)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우유바다를 젓는데 이 과정에 모든 생명체들이 탄생한다.

 

 

 남쪽 회랑, 수리야바르만 2세가 적을 함락시켜 적군이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받치고 있다.

 

창조신화는 태국을 물리치고 앙코르왕국을 건국하는 과정, 왕권다툼 때문에 발생한 내분, 항복으로서 내란을 종식시키고 안정을 찾는 모습을 동서남북 4면에 기록하고 있다.

힌두신화에 등장하는 신()에 대한 상식이 없이 부조를 관람하는 것은 어렵다. 아쉽게도 북쪽 회랑은 관람할 수 없었지만 나머지 회랑을 본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웠다. 힌두교 신들에 대한 얄팍한 지식으로 앙코르와트를 관광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해는 나중에 하고 우선 기록이나 남기자는 식으로 사진을 찍어댄 것이 그나마 귀국하여 앙코르와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층 회랑의 부조는 동쪽은 창조신화, 남쪽은 태국군대와의 전투장면, 서쪽은 크리슈나의 생애와 왕과 조카간의 전투장면, 북쪽은 크리슈나가 아들(바나)를 살려달라고 시바 앞에 무릎을 꿇고 시바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이다.

특히 남쪽 회랑의 전투장면에는 가루다(Garuda)라는 새가 등장하는데, 가루다는 우주의 수호자 비슈누의 신봉자로 비슈누를 태우고 다니면서 악령이나 사악한 뱀과 싸웠다. 가루다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조(神鳥) 인간의 신체에 독수리의 머리와 부리, 날개, 다리, 발톱을 갖고 있는 형상이다.

1층 회랑 관람을 마친 후 남쪽의 성곽을 돌아 해자를 건너 다시 오전에 입장했던 서쪽 출입구로 왔다. 그 후 일행은 Lotus Suki Restaurant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간판에 대표전화: 017 -”이 한글로 표시돼 있는 걸 보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인 듯 했다. 점심은 먼너 정식이라는 캄보디아 전통음식이었는데 한국의 쌈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사실 오전에 관람한 혼란한 신들 때문에 머리가 혼란스러워 식사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왕비를 위해 건축했다는 인도의 타지마할이 생각났다. 타지마할 사원을 미리 보았으면 앙코르와트 사원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점심 후 일행은 벵갈보리수로 둘러싸인 타 프롬사원을 보기위해 다시 서둘렀다.

 

벵갈보리수가 걸터앉아 참선하는 타 프롬사원

 

 

마치 인간을 대신하여 거대한 벵갈보리수(Spung)가 사원에 앉아 참선을 하는 모습이다.

 

타 프롬 (Ta Phrom) 사원을 찾아가는 길은 입구조차 찾기 힘든 숲속이었다. 몇몇 관광 상품을 파는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기념품을 하나쯤 챙겨야하겠다는 생각에 뱀가죽으로 만든 전통악기 작은 북을 하나 샀다. 숲속 길을 따라 걷다보면 사원이 아닌 나무들의 세상 같은 느낌이다.

관광객들이 진입로를 가로지른 긴 스펑나무 뿌리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기도 하고 고목나무 빈 공간에서 다시 자라는 나무뿌리를 만지며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원은 거의 허물어져 형체조차 분간하기 힘들다. 쓰러지다가 겨우 명맥을 유지한 몇몇 사원건물이나 무너진 돌 더미 사이에서 신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이기도 했다.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하늘의 경고로 보였다. 나무뿌리에 채이며 숲길을 한참 가다가 톰 레이더의 촬영지가 나타나니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경이로운 풍경이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신비로운 나무뿌리다. 오전에 혼란했던 머리가 맑아지며 신()이건 유적이건 모두 잊어버리고 자연 속에 몰입할 수 있었다.

타 프롬 사원은 12세기 이후 800여년을 숲속에 버려졌기에 아예 나무들의 사원이 된 느낌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은 저서 [인간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면 자연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놀라운 회복력을 보일 것이라했다. 그 실험장이 타 프롬사원인 것 같다.

현재는 사원의 4개 출입문 가운데 서쪽 문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나무에 의해 허물어진 상태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없고, 자연은 문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할 뿐임에 틀림없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순리(順理)에 순응해야한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었다.

 

 

덩치 큰 스펑나무는 아예 사원을 누르고 앉았다. 앞으로 나무냐 사원이냐의 문제는 인간에게 달렸다.

 

자연법칙에 따라 사라진 인간문명을 일깨워준 영화 툼 레이더는 안젤리나 졸리를 통해 미약한 인간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보물시계를 찾아가는 장소로 타 프롬을 촬영지로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그 영화 한편으로 이 장소가 전 세계에 알려지고 유명 관광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은 굵은 나무뿌리아래서 문명의 역사를 다시 캐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젤리나 졸리는 인류문명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다.

 

앙코르 왕국의 마지막 수도, 앙코르 톰(Angkor Thom)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kor)'로 유명한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중심사원이다.

 

타 프롬의 관광을 마친 후 폐허가 된 서쪽 문을 통해 나왔다. 가로수 우거진 출구에는 몇몇 상인들과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이택시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kor)'를 보기 위해 바이욘 사원으로 향했다.

앙코르 톰은 12세기 앙코르왕국의 마지막 수도이다. 유명한 '앙코르의 미소'라는 거대한 사면상이 있는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중심사원이다.

앙코르 톰은 12세기 인구 70만 명의 최대 도시였다. 수리야바르만 1(1011~1050) 때에 수도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여, 자야 바르만 7세 때에 바이욘 사원을 개축하고, 성벽과 해자, 테라스를 보충하여 앙코르 톰을 완성했다.

앙코르의 미소로 잘 알려진 바이욘 사원에는 사면상과 1층 회랑에 조각되어 있는 부조가 유명하다. 최근 일부 복원을 끝내고 개방한 바푸욘 사원의 부조도 볼만하다. 비밀의 사원 피미아나카스와 코끼리 테라스, 문둥왕 테라스가 앙코르 톰 동북쪽에 있다. 비밀의 사원과 코끼리 사원은 바이욘 사원에서 설명만 듣고 바라보며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왕과 귀족들만이 다닌다는 왕도(王道)를 직접 걸어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앙코르의 미소로 알려진 바이욘의 사면상은 보는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바이욘(Bayon)은 앙코르 톰 유적지로 힌두교와 불교의 혼합양식 사원이다. 앙코르 톰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바욘은 크메르어로 바는 아름답다, 욘은 탑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탑이 우리식 표현에는 더 어울릴 것 같다.

바이욘 사원은 메루산(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앙코르의 미소로 알려져 있다. 54개의 탑에 조각된 200여개의 부처님 얼굴이 보는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사원의 회랑 외벽에는 당시의 생활상과 전투장면을 묘사한 부조물이 1,200미터에 걸쳐 조각돼 있다.

바이욘 사원은 부처님의 후광을 이용하여 관세음보살을 자신과 일치시켜 현세와 내세에서 국왕의 영광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사원이다. 유독 앙코르 왕국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무굴제국의 왕도 아내를 위해 타지마할 무덤을 만들었고, 태국의 아유타 왕도 어머님을 기리기 위해 앙코르와트를 모방한 사원을 건축했다. 현대문명이라는 것도 혹평하면 독재자들의 화려한 삶에 대한 기록이다. 페르시아나 이집트 왕들의 치적이 그랬고 그리스 로마의 황제들도 같은 행위를 했다.

현대세계에서도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유사한 행위를 한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바빌론 유적지를 복원하며 벽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어 빈축을 산적이 있다. 그밖에도 자신들의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인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을 짓는 경우도 있다. 칭송보다는 자신을 내세우고 정당화하기 위해 신격화(神格化)하며 인간문명은 그런 식으로 계속된다. 평범한 사람은 지혜를 모방하지만, 위대한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지혜 자체를 빼앗는다.

 

힌두교와 불교의 정신이 혼합된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kor)’

 

힌두의 신()보다 불교의 관음보살이 더 웅장하게 돋보였는데 태국불교의 영향인 것 같다.

 

툭툭이를 타고 도착한 바이욘 사원도 입구에는 나가(Naga)가 지키고 있었는데 계단을 오르니 그 규모가 대단했다. 불상이 많은 점으로 보아 태국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1층에는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 문이 있다. 그 중에서 동문 근처에는 양쪽에 연못이 있는 테라스가 있다. 1회랑에도 석부조가 남아있다. 2회랑은 약160m 정도이고,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부조는 다른 앙코르 유적과는 다른 특징적인 면이 있다. 2회랑에는 참파(champa)와의 전쟁 모습이나 바이욘 건설 당시의 시장의 모습, 수도의 모습 등이 부조에 새겨져 있고 서민의 생활상도 담겨있다.

2층에는 16개의 탑이 있고, 모든 탑에 관세음보살이 사방상이 조각되어 있다. 2층의 장랑에는 힌두교의 색채가 강한 부조가 있다. 3층은 테라스로 역시 모든 탑에 관세음보살로 추측되는 사방상이 조각되어 있다. 3층의 중앙에는 과거에 힌두교 유적이 있었으나 현재는 소승불교의 불상이 남아있다.

바이욘 사원의 관람은 우선 규모에 압도당한다. 앙코르와트도 마찬가지이지만, 큰 거석을 어떻게 운반하여 쌓고 조각했는지 궁금하다. 탑 내부를 돌아보며 거석으로 지어진 건축술에 놀란다. 해가 서향으로 기우니 앙코르의 미소는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미스터리하다. 오히려 계속 변하는 관세음보살의 미소는 답답하기만 하다. 부처님이 가섭존자에 보낸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를 깨닫기 전까지는 그 미소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앙코르시대 백성들이 출입하던 문(), 고푸라(Gopura)

 

앙코르 톰의 남문 앞에는 신들이 양쪽에서 나가를 잡고 줄다리기하는 긴 석상행렬이 있다.

 

앙코르 톰 가운데 남문은 총 5개의 출입문 중에서 복구가 가장 잘 된 곳으로 관광객들은 앙코르와트 쪽의 길과 연결되는 남문을 이용한다. 남문으로 향하는 다리 양쪽에서는 원추형의 모자를 쓴 신과 투구를 쓴 악마가 머리가 일곱 개인 나가(Naga)라는 뱀 신을 잡고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의 신상(神像)들이 남문을 지키고 있다.

앙코르 톰의 남쪽은 탑문, 고푸라(Gopura)이다. 고푸라는 탑으로 된 출입문을 말하는데,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앙코르시대의 주 출입문이며 백성과 상인들이 드나들던 문이다. 반면 왕과 왕실 사람들이 드나들던 문은 동쪽의 높이 23m승리의 문이다.

 

자아(自我)를 깨닫게 해준 비슈누 신()과의 아쉬운 작별

 

앙코르 톰을 돌아온 다시 찾은 입구에는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볐고 해자위에 떠있는 것 같은 앙코르와트가 화려한 석양빛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에 해자를 건너 앙코르와트를 감상하고 오후에는 타 프롬과 앙코르의 미소가 있는 앙코르 톰을 방문하여 중요한 유적지는 대부분 본 것 같다. 웬만큼 건강하지 않고서는 돌아볼 수 없는 코스다. 역시 여행은 건강이 관건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여유와 건강이 뒷받침되어야한다. 뜻깊은 여행에서 만난 모든 신들에게 어쿤이라는 크메르어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닐 암스트롱(Neil A. Armstrong)19697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미지의 우주에 대한 인류 최초의 직접 방문이다. 그는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첫 도약입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이후 인류는 우주의 비밀을 찾기 위해 먼 행성을 찾아가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닐 암스트롱이 베일에 싸인 달을 찾아갔지만, 정작 그가 발견한 것은 아름다운 지구였다. 아름다운 지구모습에 경탄한 그의 여행은 사실상 가까이 있는 자아(自我)의 발견이었다.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가 발견하고 아놀드 토인비가 경탄한 앙코르와트를 안젤리나 졸리가 세상에 알렸지만 베일에 싸인 사원에서 배운 것은 나 자신의 발견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완성도 없다. 우주는 항상 변화하며 생멸은 진리다. 창조가 있기에 파괴가 있고 파괴가 있기에 창조가 있는 것이다. 생멸은 창조적 파괴의 한 과정일 뿐이다. 인간은 완성을 추구하지만 현실에는 완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청정한 물을 혼탁하게 흐려놓고 청정수만 찾아가는 이기적인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앙코르와트의 비슈누 신에게 배운 좋은 가르침이었다.

 

툭툭이로 돌아본 앙코르 톰에서 본 관광객을 위한 코끼리와 상인들의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앙코르 톰을 방문할 때는 먼 거리 때문에 툭툭이를 이용했는데 색다른 기분이었다. 코끼리 시승을 기다리는 관광객, 승객을 기다리는 툭툭이 기사들, 줄지어 늘어선 과일가게와 상인들, 길거에 잠든 고양이와 개들, 관광객을 구경하려는 듯 떼 지어 다니는 원숭이 무리들, 툭툭이 타고 즐거워하는 관광객들! 그 자체가 관광이었고 즐거움이었다.

툭툭이를 타고 다시 돌아온 앙코르와트 매표소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해자 옆 나무그늘에서는 하루의 피로를 푸는 관광객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석양을 기다리는 앙코를 와트는 마치 해자위에 떠있는 것처럼 작게 보였다. 앙코르와트를 떠나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앙코르! 어게인!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의 흥망성쇠가 주제인 서사극,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kor)’

 

앙코르와트 방문 후 서사극 관람은 캄보디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다.

 

앙코르와트 방문 후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kor)’라는 서사극을 보기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화려한 전통의상이 관객을 사로잡았고 압사리 춤의 섬세한 손놀림이 황홀했다. 서사극의 내용은 미소와 사랑을 찾기 위해 앙코르로 가야하고 그곳에서 사랑을 찾고 지금은 회개한다는 내용이다. 낮에 본 앙코르와트를 정리하기에 딱 좋은 기회였다.

앙코르의 미소는 앙코르시대의 신화를 주제로 약70분간 공연되는 캄보디아 최고의 서사극이다. 미소와 사랑을 찾기 위해 고대도시 앙코르로 가야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서막인 신들에게 물어 봐로 시작하는 이 서사극은 제5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찬란한 왕국, 2장은 신들의 부활, 3장은 우유바다 휘 젖기, 4장은 생명의 기도, 5장은 앙코르의 미소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화려한 압사라 춤은 관객을 혼연일체로 몰입시킨다.

한 시간 이상 진행된 앙코르의 미소공연은 압사리 춤에 매료되어 시간가는 줄도 몰랐지만 앙코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출연진들은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과 기념촬영하며 팬 서비스도 한다.

공연을 관람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밤10가 넘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제 야시장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즐거워하던 여대생들도 다시 흔쾌히 따라나선다. 이번에는 마사지 숍에 들렀다. 함께 피로도 풀고 야시장도 다시 둘러보며 기념품도 샀다. 야시장의 즐거움은 마지막 날에도 계속됐다.

 

앙코르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저수지, 서 바라이(West Baray)

 

앙코르시대에 축조되어 현재도 저수지로 이용하는 서 바라이는 현지인들의 휴양명소다.

 

마지막 날은 비교적 한가하게 관광을 할 수 있었다. 오전에 시엠립의 작은 킬링필드 와트 마이를 방문했다. 지난번 들렀던 Lotus Suki Restaurant에서 돼지갈비 요리인 전통음식 먼로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쇼핑센터도 들렀다. 쇼핑센터에서는 각종 향료와 상황버섯 같은 의약품 그리고 다양한 보석제품이 있었는데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그저 휴식을 취했다.

쇼핑 후에는 서 바라이(West Baray)’를 방문했다. 시엠립에서 북서쪽으로 약10km에 있는 서 바라이(West Baray)는 수라야바르만 1세 때 만든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다. 앙코르시대에 만들어진 바라이 가운데 유일하게 물이 남아 있는 저수지이다. 가로세로의 길이가 2km, 8km인 초대형 저수지는 당시 강력했던 왕권의 상징이며 현재도 관개수로로 이용된다. 매주 휴일이 되면 많은 캄보디아인들이 수영을 즐기며 휴식장소로 이용되는 주말 휴양지다.

서 바라이 방문은 현지인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호숫가에 자리 잡은 수상가옥에서 현지인들이 생활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우리의 원두막처럼 생긴 가옥들이 늘어서 있고 강가에는 나무기둥위에 간이지붕을 씌운 파라솔들이 있다. 많은 튜브가 준비돼 있는 것을 보니 행락객이 많이 찾는 표시다. 현지인들은 그 시설에서 대화하며 식사하거나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반면에 입구나 도로 쪽에는 노점상과 기념품 가게들로 혼잡했다. 계란이나 옥수수도 구워 팔고 바나나에 싼 밥과 다양한 과일도 팔았다. 의류가게 옷들은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바라이에 온 기념으로 10달러주고 코끼리가 그려진 면 티셔츠를 하나 샀다. 정말 시원하고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고 여행을 계속했다.

 

호수를 중심으로 아름답게 조성된 테마파크, 민속촌(民俗村)

 

호수를 중심으로 아름답게 조성된 민속촌은 민속공연과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테마파크다.

 

울창한 숲속에 호수를 중심으로 테마파크로 조성된 민속촌은 가족과 함께 즐기기에 좋은 공원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서인지 입구에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사당이 눈길을 끈다. 넓은 면적의 민속촌에는 수상가옥을 포함한 다양한 민속마을이 있다. 각 마을마다 서로 다른 민속춤, 전통혼례, 놀이문화 등 다채로운 공연과 행사가 개최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마리린 몬로와 같은 조형물이다. 관광객들의 사진촬영을 위해 마련한 코끼리, 토끼, , 원숭이 등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아름다운 꽃과 함께 소인국처럼 조성된 미니어처도 인상적이다. 넓은 잔디밭에 조성된 하얀 왕궁은 마치 동화 속의 궁전과도 같다. 대만에서 본 소인국과 같은 느낌이다.

 

젊은이들이 하트를 만드는 모습이 부러워 쑥스럽지만 처음으로 도 만들어보았다.

 

숲속의 호수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꽃과 함께 조성된 공원을 거닐며 민속공연도 구경하고 호수에 비치는 전통가옥들을 감상하다보면 물아일체의 경지에 빠진다. 캄보디아에서 처음 만나 즐거운 시간을 함께한 여대생들이 호숫가에 앉아 하트를 그리며 좋아한다. 멋쩍기도 했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카메라를 맡기고 결혼이후 처음으로 도 만들어보았다. 장미가시에 찔린 것 같이 손가락이 짜릿했다.

캄보디아에서 처음 알게 된 여대생 커플은 여행을 즐길 줄 아는 관광객이었다. 해외여행 중 만난 몇 안 되는 멋진 여행자들이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의 여행은 목적지에 관계없이 즐겁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공감하는 여행은 일상생활에서도 필요한 태도다.

민속촌을 여유 있게 관광한 후 마지막 디너는 꽃나무가 우거진 멋진 식당에서 샤브샤브 요리로 석별의 시간을 가졌다. 식당입구의 아취에 긴 뿌리를 내린 이름 모르는 식물은 입장부터 우리를 감동시켰다. 땅에 뿌리를 박지 않고 자라는 식물은 난생처음 보았다. 자연의 신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긴 아취에 공중뿌리를 내린 식물의 환영을 받으며 찾아간 식당은 환상적이었다.

 

모든 여행 일정이 끝나긴 했지만 공항출발은 밤늦은 시간이었기에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저 시간만 보내기 아까워 다시 여학생들과 함께 펍 스트리트를 찾아 마사지도 받고 마지막 쇼핑을 했다. 비행기는 새벽 120분 출발예정인데 1시간 지연되어 220분에 34일 동안 정들었던 캄보디아를 떠났다. 짧지만 긴 행복이었다.

 

공항에서 아버님 선물이라고 건네 준 여학생의 손 팔지는 인연의 정표다.

 

공항에서도 비행기의 지연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잠시 우정을 나눴던 여학생들이 아버님 선물이라며 손 팔지와 케이크를 건네준다. 딸 같기도 해서 아버님 어머님으로 정을 나눈 탓이다. 그 짧은 시간에도 간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아쉬워도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는 철칙이다. 만나면 헤어지는 게 인생이고 자연의 순리다. 공항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음은 캄보디아가 맺어 준 인연이다. 귀국 후에도 캄보디아를 떠올리면 착하고 예쁜 그 학생들이 생각난다.

귀국하자마자 어머님을 찾았다. 밝은 표정으로 2월의 퇴원 날짜를 기다리신다. 다행이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앙코르의 미소는 분명 염화시중의 미소였다. 관세음보살의 미소가 어머님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

훗날 앙코르 톰 사원에서 본 관세음보살의 미소가 생각나면 낙산사 해수관음이라도 찾아갈 것이다. 앙코르의 미소는 양양의 관음보살과 소리()로는 통할 것이다. 벵갈보리수가 점령한 신들의 도시 앙코르 와트에서 만난 관세음보살은 미소를 통해 염화시중의 묘법을 가르쳐줄 것이다.

벵갈보리수가 점령한 신들의 도시는 이제 인간의 도시가 되었다. 인간들이 거닐며 나무뿌리가 휘감은 신들을 들춰내며 찬란했던 왕국의 영광을 노래한다. 부귀영화 덧없음을 일러주는 앙코르의 미소는 가루다 타고 찾아 올 비슈누를 기다리는 인간의 몸으로 화신(化身)한 아바타였다. (2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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