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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But Rich

 광이불요(光而不耀)의 정신이 투철한 나라 - 일본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
공동체의식이 강한 민족
최대의 노력으로 최소의 상품생산
엄살이 강한 국민, 일본인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뭉쳐야 할때

 

1.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

한일 관계는 흔히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로 불려진다. 오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국은 정치, 경제, 사상, 종교 및 문화적인 상호 교류를 통하여 '유교 문화권'(儒敎文化圈)이라는 공통 문화권을 형성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을 일컬어 "가깝고도 먼 나라"로 자주 인용한다. 한일 양국은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여러 방면에서 교류의 폭을 더해 가고 있다. 이러한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한국과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일본을 방문할 기회는 좀처럼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부모님 세대들로부터 들은 일제(日帝)의 만행과 가시지 않은 강박관념을 마음에 깊이 간직해 두었던 터라 오사카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 흥분과 긴장은 가라 않지 못하였다. 더욱이 강한 반일(反日) 감정이 몸에 흠씬 젖어 있었던 사람이라 경계와 긴장은 다른 어떤 나라를 방문할 때보다 도를 더해 갔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변의 오사카성(性)을 둘러보기 위해 타고 가던 관광버스에서 잠시 내릴 때, "이곳에는 도둑이 없으니, 물건은 그냥 놔두어도 좋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의아하다는 듯 긴장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차하여 성( 城)을 관람하고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오사카 번화가에서 살인 당할 확률이 7만분의 1, 워싱톤에서는 1,200분의 1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는 8,000분의 1이라"고 한다. 역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하면서 서울의 밤거리를 연상해 보았다. 그리고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역시 "일본은 먼 나라"라고 ---

인간을 존중하는 풍토는 물론 교육(敎育)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일본에서 어린이 교육의 기본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나(我)보다는 너(他)를 존중하라는 유교적 영향인 것 같다. 결국 이러한 교육이 오늘날 일본의 질서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공원이나 놀이터, 휴게소 그 어느 곳을 가 보아도 우리처럼 커다란 휴지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모두 깨끗하고 청결하다. 이 또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의식(意識)이 가져다 준 결과 일 것이다.

무엇 보다 부러웠던 점은 도심 어느 곳을 가든지 자전거 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편리한 주차 시설이 즐비하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도로에도 노란 요철 부분을 만들어 신체 장애자를 위한 배려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저 부럽기만 했다. 잘 정비된 도로에 깨끗한 도심의 거리 --- 또 다시 광화문 네거리 생각이 났다. 만일 이곳에서도 마음껏 자전거를 타고 아무 곳이나 가리지 않고 쉽게 주차하고 볼일을 볼 수 있다면--- 교통 소통도 잘 되고 건강에도 좋을 텐데--- 아무튼 이 모든 것들은 인간(人間)을 위한 배려였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 현대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주택가나 도심 어디를 가거나 눈에 띠는 것은 꽃과 나무였다. 빈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들은 꽃과 나무를 심어 아름답고 쾌적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묘지(墓地)도 우리와는 다르게 시내 중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생활에는 불편을 주지 않는 것 같았고 그저 비석(碑石)하나 정도로 생사(生死)의 경계(境界)를 좁히려는 생각처럼 살고 있었다. 같은 유교 문화권인 두 나라가 이토록 커다란 의식구조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 신기할 정도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왜? 한국인은 현재와 과거를 애써 구분하려 하는지?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가능한 멀리 그리고 높은 곳에서 현재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큰 평수(坪數)를 차지하고 영원무궁토록 자기 영역을 지키려 하는 걸까? 의구심 투성이였다. 우리는 새마을 사업이니 근대화라는 미명(美名)하에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성황당 모습이 이곳 일본에서는 생활의 일부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현대식 호텔 정문앞 정원수에 치렁치렁 걸어 놓은 부적(부적(符籍)이며 금(禁) 줄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인 '힘의 젖줄'을 육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그들은 '인간-자연-사회'라는 한 울타리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민족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결국 교육(敎育), 특히 교육의 전통을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이 매우 컸으리라는 생각을 가능케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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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동체의식이 강한 민족

森爦通夫 교수는 "중국의 관료는 중국 고전을 마스터하고 시가(詩歌), 문예에 능숙한 문인(文人) 관료였음에 비하여 일본의 무사(武士) 관료는 무기, 과학 및 기술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기는 하지만 일본은 중국과 다르게 德川幕府(1603-1687)이래 서구의 과학에 커다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이 자본주의를 일찍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이 점에 기인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 가운데 하나는 성(城)의 건축양식의 차이였으며, 그 가운데서 일본인의 개방성(開放性)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점에 관해서는 많은 토론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만, 외래문화의 유입에 따른 민족의식의 차이를 찾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성의 건축 양식이 우리의 경우 대부분 중국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었던 점에 비하여, 일본의 성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유럽식 양식을 취하고 성의 주변에 호수를 파놓았다. 이러한 사실에서 일본인들의 문화유입과정을 엿볼 수 있었고, 또 그들의 개방성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한순간의 차이가 오늘날 양국간에 이토록 커다란 문화적 격차를 벌려 놓을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조건 없는 문화 유입이 아니라 지킬 수 있는 문화 유입을 할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한 민족의 문화 유산을 지켜나가고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커다란 힘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이 교육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군더더기 말 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미 明治時代에 근대 교육제도를 확립하였고, 유능한 대졸자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정부의 관리로 임명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구미열강을 따라 잡기 위하여 국민적 과제로 '부국강병'(富國强兵) 제도를 채택하였고, 이를 뒷받침한 것이 '식산흥업정책'(殖産興業政策)이었다. 관민(官民) 협조체제의 식산흥업정책은 개항(開港) 당시 강호시대(江湖時代)부터 시작된 것이며, 민간 기업인과 정부 관리가 서로 협조하여 노력한다는 관행을 확립시켰다. 이러한 관행은 10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德川末期부터의 연속성(連續性)을 강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인들도 보호육성의 대가로 국민에게 보답하는 자세를 잊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관민협조체제를 우리는 흔히 '일본주식회사'(Japan Trading Co.)로 부른다.

영국의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드(A. Smith)의 [도덕정조론]이 지배하던 시기에 발전하였다. 유럽 사회도 마찬가지로 근검, 절약을 강조하던 '칼빈주의'가 만연돼 있던 시기에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였다. 일본 역시 그들의 정신문화가 서구의 물질주의 문화와 적절히 접목되면서 오늘의 일본식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의(義)를 존중하는 '武士의 倫理', 혈연 이데올로기 및 談(和)合을 바탕으로 한 기능집단과 공동체의 이중구조가 도쿠가와 시대에 이미 내재화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오늘날 생산자와 소비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를 공동체(共同體)라는 틀 속으로 묶어서 배신 없는 경제사회를 이룩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약삭빠른 기업가가 발을 못 붙이는 풍토가 조성돼 있다. 한국처럼 유능한 엘리트 사원이 대기업에 입사하여 업무가 파악될 정도면 회사를 뛰쳐나와 기존 바이어와 새살림을 차리는 일이 다반사인 한국 업계의 현실에 커다란 경종이 되고 있다. 설사 회사를 배신하고 뛰쳐나와 성공을 한다 손치더라도 일본 사회에서는 그를 칭찬하기는커녕 배신자라 하여 아예 따돌림을 받는다고 한다. 기업간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페어 플레이 정신을 지켜진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해외건설 공개입찰시 한국기업들이 수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일본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人間像)은 "한 사람의 유능한 사람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단결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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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대의 노력으로 최소의 상품생산

유학자(儒學者)는 '君子不器', 즉 손으로 하는 기술을 천하게 여기고 관념적인 사변(思辨) 일변도로만 살았다. 일본에서도 "武士는 먹지 않아도 이를 쑤신다"고 했다. 그러나 무사는 현실 감각이 예리했는 데 비해, 유학자는 애초부터 사변적이었기에 마치 신선(神仙)과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일본은 무사단내에서도 계층이 있었으며, '天下 第一의 思想'은 모든 계층에 적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모두가 다 영주(領主)가 될 수 없었기에, 하급의 직위에 있지만 그 사실에 스스로 만족하려는 사상이 천하제일주의를 만들었고 나아가 스스로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가져옴과 동시에 무사단의 조직을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칼(刀)을 만드는 사람이 그 일로써 천하제일이 되려고 노력했듯이 같은 이유로 신하(臣下)의 도리(道理)를 다하는 것이 최고의 충(忠)이었다. 천하제일의 칼이라는 칭호를 받으려면 잘 베어지는 것 외에 고도의 정교한 세련미도 요구된다. 따라서 천하 제일의 명도(名刀)에는 미적(美的) 요소가 크게 가미되었다. 다시 말하면 처음에는 "강하고 용감한 것"에 역점을 두었으나, 점차 세련미가 요구됨에 따라 무력에서도 "모양 좋은 것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정신은 오늘날에도 계승되어 일본인들은 "商品이 아니라 作品"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우리의 경우 100%라는 개념은 대개 생산적 측면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는 데 비해, 일본인들은 "고객 만족도''의 개념으로 소비자를 의식하고 있었다.

더욱 눈 여겨 보아야할 점은 일본인의 '근면정신'(勤勉精神)이다. 물론 요즈음 젊은 계층에서는 일하지 않으려는 성향(性向)이 나타난다고 기성세대는 걱정하고 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일본인들은 여전히 근면하게 일한다. 한 나라의 1인당 GNP 규모가 1만 달러 수준에 이르면 그 나라의 활력(活力)이 급격히 떨러진다는 '1만 달러의 함정(陷穽)'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1984년에 이미 1인당 GNP 1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이 함정을 무난히 극복하고 오히려 30%가 넘는 국민 저축률을 보이고 있다. 영주(領主)나 사농공상(士農工商)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사욕(私慾)없는 경제적 합리성의 추구와 노동은 선(善)이며,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닌다"는 노동관은 장인정신(匠人精神)과 함께 그 맥(脈)을 이어온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일본인들에게 근면성을 심어주었고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특히 생산에 있어서 소비자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하였다.

일본 제품은 정밀(精密), 소품(小品)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일본의 전자제품이나 카메라, 자동차의 경우, 부피가 작고 기능이 좋은 것은 일본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앞서고 있다. 일본 제품의 특성은 자원과 공간절약의 효율성을 최대로 활용하고 있다. 길거리, 주택, 주방, 사무실 그 어느 곳을 가보더라도 일본인들은 빈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택의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작은데도 불구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주택난이 부끄럽기만 하다.

일본인들은 재활용에도 단연 으뜸이다. 가연성 쓰레기는 발전용으로, 부식성 쓰레기는 비료로, 재생 가능한 부품은 재활용함으로써 공해도 줄이고 비용도 절감하는 2중효과를 얻고 있다. 재생 가능한 수은 전지나 전자시계, TV 등은 지하에 매설할 경우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지하수를 오염시키지만 이들은 전량 수거하여 재활용함으로써 환경문제까지도 해결하고 있다. 장인정신과 근면성으로 무장한 일본인들이야말로 "최대의 노력으로 최소의 상품을 생산"하는 경제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명언을 가장 잘 실천하는 민족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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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엄살이 강한 국민, 일본인

일본이 경제대국이라는 말에 이의를 갖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결코 그들의 경제력을 자랑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감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세계에서 몇 번째를 강조하고, 성장률이 몇 %, 1인당 GNP가 세계에서 몇 번째 등 대내외적으로 성과를 자랑하기에 바쁘다. 이러한 행동은 급기야 시장 개방압력과 UR협상에서 자가당착의 모순속에서 꼼짝 못하고 손을 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본이 섬나라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들은 항상 인구와 국토문제에 있어서는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일본인들은 내실을 다지며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조그만 일에도 엄살을 떠는 습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전세계가 불황인데도 유독 일본만은 외화가 남아돌아 걱정이다. 남아도는 외화로 세계 도처에 부동산이나 대형 건물을 매입하고, 대내적으로는 바다를 메워 지도를 바꿔 가면서 '21세기 미래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국내 저출율이 30%를 웃돌며 선진국의 2배 수준에 머물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경제가 어렵다고 엄살을 떨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엄살에 무감각하거나 그저 동정하고 있을 뿐이다. 섬나라, 조그만 섬나라에 인구가 1억 2천명하니까, 과장하면 마치 제주도만한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나라가 일본인 것처럼 한국인들은 착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 7천만이 살아가는 한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국토면적을 갖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1990년 기준으로 볼 때 일본은 실업률이 2.1%, 성장률 4.9%, 승용차 보유대수 2,897만대, 평균 수명 79세로 명실상부한 선진 문화대국이다. 이러한 경제대국이 다시 군사대국을 꿈꾼다면, 그 병력과 화력은 대단할 것이다. 현재 자위대의 수준을 보더라도 그 질적인 면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도 일본은 엄살이 강하다. 동경의 공해가 심각하고, 하수도 보급률이 떨어지고, 농총경제가 파탄이고 ---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공해, 하수도, 경기침체 등은 우리가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 수준과 질적인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개념 차이를 갖고 있다.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우리 중소도시의 공기보다도 깨끗하고 오염이 덜 된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국가가 다소 어려워진다고 하면, 국민들은 그 만큼 더 결속하는 무서운 저력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이 증가하면 저축이 증대된다는 묘한 현상을 갖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망하면, 국민도 망한다"는 의식이 뿌리 깊은 그들은 항상 머나먼 장래를 대비하고 있다. 이것이 광이불요(光而不耀)의 정신(精神)이다. 자신의 의견, 욕구, 재산, 지식, 직위, 명예 같은 것을 드러내지 말고, 또 그것들로써 오만하지 말라는 덕목이다. 광(光)은 바람직하지만, 그 광은 빛나는 광이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수양은 밖으로 화려하게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한국 경제의 공적을 자랑만 하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정신은 하나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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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뭉쳐야 할때

일본이 '먼 나라'일 수밖에 없다고 간단히 규정해버린 점은 외래 문화의 유입에 있어서 소화-흡수의 과정이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 기인한다. 일본의 정신문화가 종교적 영향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측면을 보더라도 쉽게 수긍이 간다. 1981년 일본의 종교 통계를 보면, 각종 종교 신도수가 2억 927만 명으로 총인구의 1.8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현대 일본인들 대부분이 2개의 종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은 인구의 7할 정도는 하나 이상의 종교를 갖고 있고, 다원적인 종교사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신봉하는 유교나 불교도 한국의 종교와는 다른 그들 나름대로의 일본적 종교생활을 하고 있음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의복에서도 우리 한복을 개조한 흔적이 있는 키모노나 유까다를 자신들의 의복문화로 정착시키고 있다. 현대적 감각에 맞춘 키모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을 볼 때마다 우리 문화의 전통 계승이 아쉬웠다. 우리에게 이러한 '맥'(脈)의 단절이 오늘날 한국정신의 부재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일본을 따라 잡아야 한다"는 말은 한국인이면 모두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대부분 일본에 대해서는 이성(理性) 보다는 감성(感性)이 앞서는 게 한국인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일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한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결코 힘(力)으로 살아남을 수 없으며, 머리(智)로 경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을 알기전에 이기려는 감전(感情)만이 앞서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한-일간 스포츠 중계방송때 모든 한국인이 애국자가 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과거의 감정을 결코 잊자는 말이 아니다. 감전에 앞서서 일본을 바로 보고 바로 알자는 뜻이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하며 선진국을 향해 뒤돌아 볼새없이 줄달음치며 일본을 하루 빨리 따라 잡아야한다고 마음 다짐하는 이 순간에도 '빨리 빨리' 일본을 이기려는 감성적인 마음만이 앞서는 것이 우리 한국인이다. 일본 기술축적의 3% 정도밖에 안되는 한국인에겐 정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더 많은 기술 축적을 해야하고, "일본은 왜 잘사는 가?"를 빨리 빨리 서둘러야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시간과 투자가 일본을 배우는데 투자돼야 한다.

바로 이웃한 나라끼리 서로 헐뜯고 얕보려는 '근린반발'(近隣反撥)의 사회 심리현상은 비단 한일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터키 사람들은 몹시 음산한 바람을 '러시아 바람'이라하고, 러시아 사람들은 불청객을 '터키 손님'이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근린반발의 감정이 한일간에 존재함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일본이 서구문명을 일찍 흡수하여 발전시킬 수 있었던 점은 그들의 개방성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도 감정이 그저 앞선다고 문만 굳게 잠그고 있을 수 만 없다. 좋은 점은 찾아서 배울 수 있는 포용성과 개방성을 갖춰야 한다.

유럽은 밤을 중요시하는 '月(다이아나)文化圈'이며, 동양은 대개 낮을 중요시하는 '日(아폴로)文化圈)'이라 한다. 물론 '조기문화'(早期文化)의 선두주자는 한국이다. 그 만큼 한국인은 아침을 중요시한다. 과거 한국의 국명 '조선'(朝鮮)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조정(朝廷)이니 조사(朝事)니 하는 말도 "옛날 임금님은 해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정사를 보았다"는 뜻이다. 그 만큼 한국인은 본질적으로 근면한 민족이며, 밝은 민족이다. 또한 동양문화권은 젓가락(chopsticks)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 중국, 일본이 그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젓가락을 잘 사용하는 민족은 '손재주'가 좋다고 한다. 젓가락의 사용에 있어서도 가장 세련되고 섬세한 손재주를 보이는 민족이 한국인이다. 우수한 한국인의 손재주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우수한 손(手)이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엔진, 즉 경제의 추진력이 필요하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우리 민족처럼 지혜롭게 살아온 민족도 드물다. 이러한 예는 최근까지 즐겨 쓰던 '보자기'의 사용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보자기의 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물건을 포장할 때 가방의 대용으로, 머리에 둘둘 말아서 물건을 이는데, 허리춤에 허리띠로, 추울 때는 머리 수건으로, 멋을 낼 때는 머플러로 --- 그 용도가 매우 무궁무진하고 다양하고 효과적이다. 시중에 나도는 비닐봉지와 쇼핑백의 공해(公害)를 보면서 사라진 보자기 시대의 지혜를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역사를 되돌려 결코 보자기 시대로 다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활의 지혜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살아온 조상들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자는 말이다. 가끔 국회의원들이 서류 뭉치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의정활동에 임하는 장면이 TV에 방영되는 것을 볼 때, 아직은 모든게 사라지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도 든다. 과거 통일신라가 유(儒), 불(佛), 선(仙) 삼교(三敎)를 융화시켜 찬란한 문화를 발전시킨 우리 민족에게 분명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수한 두뇌의 소유국하면 일반적으로 한국, 독일, 이스라엘 3국을 일컫는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유일한 자산은 두말할 나위없이 우수한 '인간자원'(human resources)이다. 인간은 평생 전체 두뇌 용량의 10%도 채 이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한국인 모두가 1%의 정신을 두뇌에서 더 이용할 알면, 아니면 더 이용할 수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잠재력을 갖는 민족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현대의 첨단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였다 손치더라도, 인간의 두뇌에는 결코 미칠 수 없고,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였다 손치더라도 인간의 손재주에는 미칠 수 없다. 따라서 이처럼 우수한 손재주와 두뇌를 갖고 있는 한국인의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단지 문제가 되는 점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충분조건이 구비되어야하고, 협력하는 공동체 의식"이 충족될 때,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교육열이 매우 높다는 현실은 우리에게 밝은 전망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에는 장기적인 시간과 효과적인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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