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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猶不及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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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巖 보타닉 가든의 역사  Garden History

鏡巖 농원은 理氣樂(Truth, Energy, Happiness) 3가지 목표로 조성되었다.

  경암농원은 1983년부터 40여년 가까운 성상을 거치며 충북 충주시의 농장에서 조성되었다. 자연농법을 활용한 농장에는 아름다운 꽃나무와 각종 조경수로 조성되었고 그 밖의 초목은 식용이 가능한 각종 산야채로 한마디로 자연농장이다.

농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를 받고 즐기는() 농원이라고 이기락(理氣樂; Truth, Energy, Happiness)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충주시 호암동에 위치한 경암농원의 생각하는 농원에는 각종 꽃나무, 유실수, 조경수로 조성되었고, 충주시의 명물 범바위가 자리 잡은 기를 받는 농원에는 감나무 위주로 조성하여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충주시 동량면에 위치한 즐기자는 농원의 산에는 매실나무를 위주로 조성하여 봄에는 거송아래 매화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초여름에는 매실을 수확하기 위해 매년 축제가 열린다. 봄부터 이어지는 꽃들의 향연과 고라니 뛰노는 농장에 풀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는 농장에 각종 석물로 의미를 더하니 사계절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장관이다.

수목을 키우는 일이란 자식을 키우는 것만큼 쉽지 않다. 세찬 비바람과 폭우, 가뭄, 혹한, 폭설 등에 가슴 조여야 하는 세월을 감내해야 하고 피땀 흘리는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 알밤줍고 홍시따는 충만과 즐거움의 이면에는 인고의 세월이 더 길었다. 농장을 일구며 깨달은 점은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며, 인간은 자연 앞에는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농장에서 함께 한 시간은 그 자체가 인생 공부였기에 자연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았다. 항상 서둘지 마라는 경험을 체득했기에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모두에게 나눠주고 싶다.

 

이기락으로 조성된 鏡巖 농원

이(理, Truth)

기(氣, Energy)

락(樂, Happiness)

 

 

충주시의 명물, 범바위(虎岩)

범바위는 토박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충주시의 명물이다. 충주시 남산의 끝자락(호암동 산4-8)에 위치한 이 산은 봉황(鳳凰)이 살던 신성한 산으로 금봉산(636m)의 정기(精氣)가 모여 있는 정상에는 '남산성'이라 불리는 마고산성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삼한시대에 천상에서 쫓겨난 마고선녀(仙女)7일 만에 쌓았다고 하여 '마고성'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한편 이 산에 자리잡은 <범바위>신령스런 호랑이가 사천개를 지켜주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일명 호랑바위로도 널리 불리며 그 아랫마을을 호암동으로 부른다. 호암동 아래는 용산동(龍山洞)이 있으며, “용이 승천한 못이 있었는데 고구려가 점령한 후 용이 승천한 충주에 왕기(王氣)가 있다하여 지맥으로 누르기 위해 못을 없애고 석탑을 세웠으며 그 후 영험이 없어졌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충주시 용산동에서는 해마다 '비룡승천제"을 개최한다.

 

범바위 산아래에는 호랑이 조형물과 노래비가 있다.

 

경암농원의 조형 기념물

범바위 상징물

사모원

범바위 노래비

경봉 송비, 경봉헌정

자연속의 쉼터, 경봉헌정

용정의 보수공사

해태상.JPG

경암농원 상징물, 해태상

농원의 쉼터 분수대

경암농원 연혁

 

 

경암농원의 발자취 History Of Botanic Garden

1983년 사과 과수원에서 출발한 조경수 농장

본래 충주시 호암동 140 한 필지의 과수원이 조각조각 분할되어 도시계획에 편입되는 바람에 농장은 파산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자식처럼 키운 나무를 버릴 수 없기에 나무이사를 결심했다. 1998년 그 첫 번째 대체용지로 마련된 것이 충주시 호암동 832의 농장이다. 1997년부터 개발하여 감나무 농장이 된 호암동 산4-8 토지가 두 번째 농장이고, 1999년이후 벌목 후 매실농장으로 개발한 임야가 동량면 대전리 산91-5의 농장이다.

2010년 이후 뿔뿔이 흩어진 조경수를 한데 모아 관리하려고 야심찬 작업에 돌입했으나, 30년 이상된 값진 주목 수천 그루가 이사 후 적응을 못해 고사하는 아픔도 있었다. 자연의 시련은 혹독했다. 여기에 인간도 가세했다. 농장을 지키려는 안간힘이 계속되고 있지만, 산을 제외하고 밭에 심겨진 나무들의 앞날은 보장할 수 없다. 인간이 가진 한계다.

1990년대 충주시의 도시계획 편입으로 산산조각난 농장

 

 마지막으로 남은 약200평 정도의 호암동 140-4 농장

 

나무의 이사와 함께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농장

나무의 이사는 사람의 이사보다 매우 까다롭다. 이식의 시기도 문제려니와 하늘의 도움도 필요하다. 충주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거의 완성된 농장이 수난을 받았다. 1990년대말부터 시작된 나무이사는 2011년이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최소한 3년은 지켜보아야 생사여부를 알 수 있는 나무이식은 새로 키우는 것보다 힘들었다. 수천 그루의 거목이 죽은 후에야 나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충주시의 도시계획 편입에 따라 조경수의 이식과정에 토지가 부족하여 2003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1415, 534-3 토지를 추가매입했고, 아내가 충주지 이류면 588에 토지매입 후 협조해줌으로 제법 농장은 규모를 갖추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뿔뿔이 흩어진 농장을 관리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물의 확보"였다. 인간이 물없이 살 수 없듯이 나무도 마찬가지다.

 

사람보다 힘든 나무이사

20년 자식처럼 정성으로 키워 성목이 된 주목나무를  이식시켜야 했다(2003)

나무는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기증에도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모과나무 기증, 2012)

 

충주시 호암동 140에서 이기락 세 농장으로 흩어진 소중한 나무들

성목이 된 주목들이 호암동 140 농장으로부터 이사하는 장면(2003)

 

평소 아끼던 감나무를 충주 호암동 산4-8로 옮기고 감나무 동산으로 가꿨다.

 

소중한 유실수와 조경수는 충주 호암동 832로 모았다.

 

구상나무와 은행나무 거목은 충주 동량면  산91-5로 이사했다.

 

 

소중한 주목은 공익시설과 사찰에 기증

나무를 자식처럼 키웠기에 자식들이 태어날 때 마다 기념식수를 했다. 오랫동안 지켜지리라는 염원에서 제천시 월악산 덕주사에 탄생목을 남겼다. 이밖에도 내 소중한 나무들은 충북 충주시의 대원사, 덕주사, 석종사, 음성군의 미타사, 청원군의 탄공정사는 물론 멀리 전북 고창의 소요산 등 사찰에 주로 기증하였고, 경북 문경의 교회부지에의 기증은 이식상의 경비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

 

충주의 사회복지시설에 주목을 기증하고 둘러보는 경암(20111)

 

 

끝 없이 밀려오는 농장의 시련

농장은 자연으로부터의 시련도 혹독하지만 인간으로부터의 시련은 더 가슴아픈 상처를 남긴다. 오랜 고심끝에 흩어진 조경수를 한데 모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하늘은 내 뜻을 알아주지 않았다. 이밖에도 농장주변의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수목의 관리에 어려움을 주었고 급기야는 혈육의 토지탐욕 때문에 가꾼 농장이 무주공산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자식처럼 가꾼 내 소중한 나무들은 그 어느곳에선가 해를 거듭하며 나 죽은 후에도 나를 지켜주며 세상을 버틸거라는 생각에 정성은 계속 된다.

농장정리를 위해 2012년 충주 동량면 1415에서 동량면 534-3으로 다시 이식한 주목

2012년 재이식한 수천 그루의 소중한 주목이 3년을 버틴 후 대부분 고사했다(2016년).

 

자연재해보다 심한 인간에 의한 피해

자연재해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에 의한 피해다. 애써 옮겨 심은나무에 영농확장을 목적으로 제초제를 살포하여 고사시키거나 윗도랑을 고의적으로 파헤쳐 수로를 망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농장진입을 방해하는 행우위다. 특히 대규모 공사가 있을 때는 … 흔히 "자연재해라고 하는 피해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인간에 의한 인재"다.

작은 폭우에도 윗토지의토사유출로 농자에 큰 피해(호암동 832, 2019)

 

주변 관계자의 제초제사용과 진입로 방해(동량면 산91-5, 2012)

 

시련은 나를 키우고 나무들은 세월을 지켜준다.

일년에 두 번은 가까운 친지들을 불러 자연속의 잔치를 벌인다. 매실익는 6월초에는 인진쑥, 취나물, 고사리 등 산야초가 반기며 뽕나무 오디도 방문자에게 만족을 준다. 소쩍새 뻐꾸기 함께 흥을 돋운다. 홍시가 익어가는 10월에는 농장의 고추, 파, 노각오이, 늙은 호박 등이 마음을 채워주며 향 좋은 모과, 탱자도 찾는이들을 흡족하게 해준다. 더 관심있는 사람들은 봄에는 두릅, 가을에는 산초의 향기도 맡는다. 세월을 지켜주는 나무가 고마울 뿐이다.

 6월초면 매화는 어김없이 매실을 남겨준다. 때마춰 뽕나무도 달콤한 오디를 자랑하며 유혹한다.

 

찬서리 맞은 홍시는 범바위의 명물이다. 감잔치 벌일 때 샛노란 은행낙엽은 재회를 약속한다.

 

"나중에"는 포기한다는 말이다.

농장을 개척하며 얻은 교훈 중 하나는 "나중에 … "라는 말이다. 자연농법에 의한 농장을 개척하는데 나중에는 곧 포기를 의미한다. 눈에 보일 때 마주칠 때 즉시해결하지 않으면 다음해에는 폐농이 되기 일수고 노력과 경비도 2배이상 들어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일 다시 해가 뜨는 한 농장은 계속 된다는 생각으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만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기락 농장을 구상할 당시 충주 동량면 산91-5에서 경암(1999)

 

여행자 Vistor

이 땅에 초대받은 짧은 여행.

인연 따라 부모 만나 인간의 몸 받았으니 무엇이 부러우냐.

 

전생업보 모르고 방황하다 부부인연 맺으니,

혈육도 시기하며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만나더라.

 

이 세상에 내 것이 무엇이더냐!

부귀영화는 한낮 꿈이요 자식 또한 흩어지는 꽃잎이다.

 

피 나눈 소중한 자식을 여행선물로 얻었으니,

맑은 영혼 남겨주고 홀까분히 고향 찾아 떠나자.

 

생물은 재를 남기고 만물은 유전한다

나는 모닥불을 좋아한다. 기쁘건 슬프건 옛 추억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시간이 날 때면 마른 전지목이든 잡초든 태우며 한적한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다.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게 끝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죽음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매사에 바쁘게 살아간다. 그래도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말못하는 식물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다하면 영혼은 하늘로 보내고 대지로 돌아가 새 생명의 밑거름이 된다. 나무가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못 알아들을 뿐이다. 그래서 나무와 대화하는 것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인간이 불을 좋아하는 건 본능이다. 그래서 축제에 불이 항상 등장한다.

 

시간나면 추억을 태운다. 아픈 상처 훌훌 털고나면 보름달이 밝은 미소로 반긴다.

 

기다려주는 고마움에 훗날 약속을 다시한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간다. 나이든 부모나 정나눈 친구, 첫사랑도 기다려주지 않고 떠난다. 그러나 내게는 기다려주는 꽃과 나무들이 있어서 항상 즐겁다. 한때 농장에 병아리를 키운적이 있다. 대부분 들짐승에게 당해 살아남지 못했다. 그 이듬해 봄 먹이도 없이 살아남은 암탉에게 짝을 지어줬다. 모처럼 농장을 방문할 때면 먹이도 주지 않았는데 계란을 선사하고 농장 일을 할 때는 졸졸 따라 다니며 정을 나눴다. 하지만 결국 그들도 들짐승에게 피해를 당해 하늘로 갔다. 정성스레 묻어주긴했으나, 닭이 없는 농장은 허전하다.

식물은 동물보다 더 강하다. 농장에는 특별히 돌보지도 않았는데도 때가 되면 피고 시간 흐르면 지는 꽃들이 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자생하며 꽃 피우고 사라진다. 언제 어느때가 방문할 때면 그어떤 꽃이라도 피어서 나를 반긴다. 혹한의 겨울이 오기전까지는 … 내가 농장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기다림 없이 찾아가면 항상 반기는 꽃과 나무가 있기에 나는 늘 마음의 부자다. 기다려주는 고마움이 있기에 사는 날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2020/10/05)

 

 한쌍의 닭들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2012).

 

 

 영산홍 어우러진 농장에 빨강 노랑 하양 튜울립이 피고나면 탐스런 모란이 피어난다.

  

불 피워 노래하던 축제의 밤이 다시 그립다.

초여름 풀향기 그윽한 농원에서 불피워 술마시고 노래하니 이태백도 안 부럽더라.

 

 

Dr. Hong's Poem

Story of Botanic Garden

Flower Story

Dr. Hong's Botanic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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