鏡巖 중동의 문화유적 탐방: Explore Cultural Heritage of the Mid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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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진주, 필래신전

 

이시스(Isis) 여신을 위해 잘 건축된 신도(神島)인 필래 섬에 위치한 '이집트의 진주, 필래신전'

베일에 싸인 상업도시,

페트라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필레신전-싸인.jpg

이집트의 진주,

필래 신전

왕들의 계곡

Valley of Kings

움마이야 왕조의 고도,

다마스쿠스

 피라미드가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

 ■ 나바트 왕국과 고대의 향료길

 

 

홍성민(중동경제연구소장)

아스완을 찾은 것은 지난 해 연말! 중동에 자료 조사차 이집트로 출장을 갔다가 타이트한 일정에 쫓기기는 했지만, 일찍이 삐에르 로티가 '이집트의 진주'로 명명한 필래 섬은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욕심에 발길이 아스완에 이른 것이다. 인구 약 20만명 정도인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약 12km 지점에 1964년 독일과 소련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유명한 아스완 댐(폭 3600m, 높이 111m)이 있고, 이곳으로부터 상류쪽으로 약 500km에 이르는 소양호의 7.3배에 해당하는 거대한 인조 호수가 나일강의 근원지 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필래 섬은 아스완 댐의 하류 쪽에 위치한 환상의 섬으로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를 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누비족(Nubian)들이다.

 

아스완댐 기념탑: 1964년 독일과 소련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유명한 아스완 댐(폭 3600m, 높이 111m)

 

누비人들은 아스완 댐을 경계로 약 100km정도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요즈음은 대부분 '다우' 혹은 '페루카'라 부르는 범선을 이용하여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누비인들이 이곳에서 수천 년을 살아오긴 했지만, 외부 세계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그들은 이집트인이기를 거부하고 흑인이기도 거부하며, 그저 누비인으로 남기를 발랄뿐이다. 더욱 더 특이한 것은 "누비인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자화되지 않은 구전의 언어를 독특하게 사용하며, 그들의 언어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들이 국가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비족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필래 섬으로 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나야 하는 누비인들의 공통점은 착하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필래 섬으로 향하는 도중, 사진 찍으라고 천진스럽게 포즈를 취하던 꼬마 누비와 나일강 유람을 하고 고별의 차(茶)를 함께 마시던 운전기사 누비의 기억이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른다.

 

누비족: 누비아인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자화되지 않은 구전의 언어를 독특하게 사용하며, 그들의 언어를 잘 보존하고 있다.

 

필래(Philae) 섬은 역시 지상 낙원처럼 보였다. 조그만 보트들이 짙푸른 종려와 무화과 나무 잎새에 의해 그늘져 있는 신선하고 아담한 벼랑에 정박해 있었으며, 그곳의 약간 높은 위치에 이시스 신전과 우아한 트라잔의 키오스크(Kiosk)가 버티고 서 있었다. 이시스(Isis) 여신을 위해 잘 건축된 신도(神島)가 바로 필래 섬이었고, 그래서인지 더욱 매력적이고 환상적이었다. 필래 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가장 잘 보존된 3개의 신전중 하나이고, 나머지 둘은 에드후(Edfu)와 덴데라(Dendera)에 있다. 필래는 길이 400m, 폭 135m인 제1폭포 남쪽 하단의 세 섬들 가장 큰 섬이며, 그 이름 자체가 독특한 지리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 원문에서 필락(Pilak)은 '모퉁이 섬' 또는 '마지막 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원래 필래는 나일강 동쪽 둑위의 작은 만의 구석인 제1 폭포의 최남단 끝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개의 섬중 하나인 비게(Bigeh; 현재는 부분적으로 침수됨) 섬은 이시스 여신의 남편인 오시리스(Osiris)의 영면(永眠) 장소였기에 모든 인간의 출입이 금지된 신성한 장소이다. 따라서 배를 타고 온 성직자들만이 오시리스가 묻힌 이곳에서 360개의 제단위에서 의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필래 섬의 신전들은 오시리스가 그의 부인 이시스의 사랑의 힘으로 흩어진 그의 부하들을 재집결하여 오시리스를 부활시켰던 이시스를 위하여 헌납된 것이다. 필래 섬의 여신에 대한 제사는 고대로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이집트인들은 1년에 한 번은 이렇듯 신성한 섬에 순례 여행을 떠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유스티아누스 1세가 지배하던 A.D. 535년 제사에 종사하던 성직자들이 제게 됨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나일강에서 바라 본 필래신전:  이시스(Isis) 여신을 위해 잘 건축된 신도(神島)가 바로 필래 섬이다.

 

필레 신전의 또 다른 가치는 이곳, 즉 아길키아(Agilkia)로 부터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던 유적들을 원형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신성한 섬은 1898년까지는 연중 내내 물위에 있었지만, 올드 댐의 건설로 인공 호수에 잠기게 되었다. 단지 8-9월에만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댐의 소문이 열려질 때, 물에서 살며시 신비의 베일을 벗고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만 우리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문자 그대로 신비의 섬이었다. 더욱이 아스완 댐의 건설은 필래 섬을 위기 상황으로 몰아 넣었고, 신전의 기초들은 부식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1972-80년 기간에 호수의 물을 고려하여 필래의 지형이 재창조된 현재의 위치로 신전이 완전히 해체되어 정교하게 복원이 되었다. 출렁이는 물살을 가르고 이곳에 도착하자 마자 관광 기념품을 파는 누비인들의 외침과 함께 신비와 환상을 간직한 섬에 오르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필래 신전은 크게 나누어 - 넥타네보(Nectanebo) 유적, 트라잔(Trajan) 유적을 부속 건물로 갖는 불멸의 이시스 신전 그리고 작은 하도르(Hathor) 신전 등 - 세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래 신전 장식물의 특징은 대부분 신성한 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대부분 신에게 헌납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실체가 상징하는 상징성이나 틀에 박히지 않는 창의력이 돋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하드리(Hadrian)의 문 혹은 요새'이며, 이는 안토니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시스 신전의 서쪽 날개 부분에 있는 부조로서 나일강의 근원에 대한 개념을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상 상 하 나일강의 신성함, 즉 하피(Hapy)는 신인(神人)동형동성설과 양성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신은 뱀에 둘러싸인 동굴 속에서 물이 흐르는 두 개의 물병을 쥐고 있다. 사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근원이 '하피의 물'을 의미하는 무 하피(Mu Hapi)라 불려지는 산 가까이에 있는 제1폭포에 이웃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연례 의식은 파라오 자신에 의하여 거행되었고, 소티스(Sortis) 별로 대표되는 나일강의 홍수가 시작되는 6월 중순에 시작되었다.

 

필래신전 입구:  필래 신전은 크게 나누어 - 넥타네보(Nectanebo) 유적, 트라잔(Trajan) 유적을 부속 건물로 갖는 불멸의 이시스 신전 그리고 작은 하도르(Hathor) 신전 등 - 세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스완 댐 공사로 이전하기 이전의 필래 신전: Roberts David(1796-1864), A Journey in Egypt(1994), 복사본

좌측, 석주와 그 위의 연꽃은 본래 아름다운 채색이 보존돼 있었으며, 우측은 원형 그대로의 필래신전

 

필래는 이집트, 그리스 및 로마 문명의 완전한 종합형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곳의 건축과 디자인은 하나의 형태로 함축돼 있다. 과거 올드 댐의 물이 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묻어버리기 이전에 모든 문자들은 파랑, 빨강, 노랑 및 녹색의 찬란한 색깔들로 채색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스완 댐의 준공으로 필래가 인공호수에 침수되기 이전에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에 의해서 입증이 되고 있다. 영국인 출신 대이비드 로버트(David Roberts; 1796-1864)라는 유명한 화가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본래의 색깔대로 섬세하게 그려 놓고 있어서 그 당시의 아름다움을 상상하기엔 충분하다. 아무튼 본래의 채색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삐에르 로티가 '이집트의 진주'라고 찬양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우아한 자태를 오늘날까지 지니고 있는 값비싼 우리 인류의 문화 유산인 것이다.

 

필래신전의 벽화:  필래 신전 장식물의 특징은 대부분 신성한 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대부분 신에게 헌납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역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닌 경제학자가 세계의 문화 유산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사실이 다소 쑥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여행 때마다 문화 유적이라면 무조건 셔터를 눌러 대고 돌아와서는 사진 설명을 위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던 습관이 이제는 또다른 전공이 돼 버린 것 같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양의 사진을 막 정리해 놓고 설명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던 중 원고 청탁을 받게 된 것이고, 내친 김에 용기를 내어 글을 써 보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가 한눈에 보존 된 값비싼 문화 유산을 감상하면서 감회를 느끼는 점은 이교도의 침입으로 인한 문화재의 파손 행위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목격되었다는 점이다. 신전의 곳곳에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각인이 된 듯한 십자가 모양을 보면서 말이다. .(통일 한국) 6월호. 통권150호. 평 화문제연구소. 1996.

 

* 이 글은 필자가 1996년 6월부터 평화문제연구소의 [통일 한국] 제 150호에서  153호에 게재했던 것으로 판권에 관한 사항은 평화문제연구소에 있음을 밝혀둔다.위 내용에 사진을 추가하였으며,내용은 추후 수정보완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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