鏡巖 중동의 문화유적 탐방: Explore Cultural Heritage of the Mid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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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마이야의 고도(古都), 다마스커스

 

움마이야 왕조의 이슬람 대사원: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대사원(The Great Mosque)

베일에 싸인 상업도시,

페트라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필레신전-싸인.jpg

이집트의 진주,

필래 신전

왕들의 계곡

Valley of Kings

움마이야 왕조의 고도,

다마스쿠스

 피라미드가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

 ■ 나바트 왕국과 고대의 향료길

 

 

홍성민(중동경제연구소장)

 

세계 최고(最古) 상업도시중 하나인 다마스쿠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향하는 발길은 설레임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아는 아직 우리와 국교 관계가 수립되어 있지 않은 유일한 아랍 국가였고, 따라서 비자 허가나 입국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었다. 다행히 한국의 기업체들이 우호를 다져 놓은 터라, 요르단에 있는 동문의 도움을 얻어 자세한 관광 안내와 함께 암만(Amman)으로부터 다마스쿠스 입성은 비교적 손쉽게 이루어졌다. 다시금 국력(國力)을 생각해 보았고 중동에서 한국인의 자부심이 마음을 뿌듯하게 해주었다.

고대로부터 동서의 교통로로 유명하여 '사막의 항구'로 잘 알려진 다마스쿠스(Damascus)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 하나이며, 안티 레바논 산맥 동쪽 기슭의 바라다 강 유역에 발달한 시가지로 구시가와 신시가로 구분되어 있다. 움마이야(Umayyads)의 고도(古都), 다마스쿠스의 유적들은 대부분 구시가지에 몰려 있고, 옹기종기 붙어 있어서 단시간에 유적을 감상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성 바울이 유폐 당했다가 탈출했다고 전해지는 요새의 높은 창, 아름다운 조각의 천장과 샘으로 알려진 아잠(Azzam) 궁전, 그리스도의 사도 아나니(Anani)가 눈먼 자를 고쳐 주고 세례를 베풀었다는 아나니의 집 등이 유명하다. 코린트식 회랑(回廊)과 넓은 안뜰이 있는 움마이야의 이슬람 대사원, 성 요한의 머리가 있다고 전해지는 황금색의 작은 건물, 그리고 시리아 국립 박물관 등이 있다. 이들 유적지들은 하마디예(Hamadiyeh) 전통시장과 인접해 있기에 아랍인의 체취와 여유를 맛보면서 유적지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다마스쿠스 하마디예(Hamadiyeh) 전통시장 입구: 중요한 유적지들이 대부분 이 전통시장에 인접하고 있다.

 

움마이야의 '이슬람 대사원'. 다마스커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움마이야 모스크((The Great Mosque; 이슬람에서는 사원을 모스크라 부름)이다. 움마이야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감이 있지만 이슬람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왕조이다. AD 634년 무함마드 사후 아라비아 반도에서 계승권을 놓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시리아는 AD 636 이슬람 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그후 다마스커스는 이슬람의 주류인 움마이야 왕조(661-750)의 중심지가 된다. 이슬람은 멕카에서 발생되었지만, 그 문명과 문화는 다마스쿠스로 옮겨와 움마이야 왕조에 의해서 형성이 된다.

그후 이슬람은 압바스에 의한 계승권 승리로 아라비안 나이트로 유명한 이락의 바그다드에서 '압바스 왕조'(Abbasiyyads; 750-1258)가 형성되어 이슬람 문명은 바그다드에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따라서 이슬람 제국의 중심이 지중해의 시리아로부터 비옥하고 관개 시설이 좋고 통상로가 교차하는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한다. 이러한 사실은 비잔틴의 계승 국가로부터 보다 아랍적인 국가로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 과정에서 페르시아는 커다란 역할을 하며 성장한다. 1516 오스만 터어키가 바그다드를 점령함으로써 찬란했던 이슬람 문명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하에 서구 문명과의 만남을 통해서 완성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슬람 학자 S. D. 구아땡이 "이슬람을 '중간문명'(intermediate civilization)"이라고 표현한 점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움마이야 왕조의 대표적 건축물인 다마스쿠스의 '이슬람 대사원'을 찾아가면서 이곳이 상업 도시의 전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매표소에서 100 시리아 파운드(약 5달러)를 내고 잔돈을 요구했더니, 잔돈이 없다며 다 내고 관람을 하던지 아니면 관람을 포기하라는 거였다. 그 유명한 이슬람 사원을 보기 위해 사막을 달려왔는데 못보고 간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물론 한국에서는 큰돈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 다시 문 앞으로 나와 10 파운드 주고 오렌지쥬스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잔돈을 바꿨다. 의기양양하게 매표소 관리인에게 잔돈을 내밀고 개선 장군처럼 대사원의 뜰로 들어섰다. 이 도시의 성격을 잘 모르는 사람은 지금 나의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일물다가의 원칙'(一物多價原則)의 전통이 살아있는 다마스쿠스의 하마디예 전통시장

 

다마스쿠스는 세계 최고(最古)의 상업도시중 하나이고, 이들의 상업주의 정신은 '일물다가의 원칙'(一物多價原則)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쉽게 말하면 "한 물건에 일정한 가격이 없고 상인은 능력껏 가격을 받아도 좋다"는 상업주의 정신이다. 따라서 물건을 사는 사람도 능력껏 값어치를 알아서 사야 하고,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라 해서 사기(詐欺)니 하는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정신은 아직도 이슬람 사회에서는 많이 남아 있으며, 특히 팁의 경우, 비싼 돈을 요구하다가도 거절당하면 그만이지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게 이슬람의 특성이다. 이슬람을 모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야속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

 

대사원'의 돔(dome)은 원래는 목조로 이루어졌으나, 1898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하였다.

 

AD 714-15년에 완성된 다마스쿠스 '이슬람 대사원'의 돔(dome)은 원래는 목조로 이루어졌으나, 1898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움마이야를 대표하는 이 사원에 발길이 닿는 순간 눈에 띠는 것은 화려한 초록 빛 나무와 건물로 이루어진 벽화이다. 다마스커스 사원은 건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이슬람 초기 건축물을 대표하는 예루살렘의 '바위 돔'(Dome of Rock; AD 691-2)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이 사원은 또한 장방형 탑을 갖춘 서구 이슬람 초기 첨탑의 효시로 알려지고 있으며, 아라비아 반도 시기인 이슬람 초기의 평평한 '미흐랍'(mihrab; 멕카방향으로 벽면을 파내어 조각품이나 장식물을 놓도록 만든 곳) 대신 곡선 형태의 미흐랍을 도입하고 있음이 특색이다.

 

모스크 양식은 교회와 궁전 모두를 위해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바실리카(basilica) 풍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마스쿠스 건축물은 로마 사원의 범주 내에서 건축되었기 때문에 타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고, 그만큼 수난의 역사도 함께 하면서 손상을 많이 입어 왔다. 비잔틴 시대에는 성(聖) 요한의 교회로 대치되었고, 그의 성골함도 현재 이슬람 대사원에 보존되어 있다. 따라서 모스크 양식도 교회와 궁전 모두를 위해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바실리카(basilica) 풍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깥채는 커다란 기둥 위에 작은 아치를 갖는 두 개의 아케이드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다. 중앙에는 미흐랍의 축위에 세개의 바실리카 풍의 낭하(廊下)를 갖는 건물이 지붕 끝과 안뜰로 연결되어 있다. 안뜰은 두 개의 아케이드를 갖고 수도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선지자의 머리카락이라고 전해지는 유품

화려한 대사원 내부와 무슬림 순례자들

 

'바위 돔'과 마찬가지로 외벽의 낮은 부분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서쪽 회랑의 아치와 그 뒤의 벽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단장되어 있다. 대리석 벽의 위아래로 찬란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은 주로 풍경과 함께 푸른 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풍경은 이슬람에 의해 정복된 도시를 의미하고 이슬람 신도를 기다리는 '천국'을 묘사하고 있으며, 키 큰 나무는 황금의 분배에 대한 분배자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화려한 회랑은 곧바로 '하마디예 전통시장'(Souq al-Hamadiyeh)으로 연결돼 있어 신앙과 생활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도 가히 이슬람적 사고라 할 수 있다.

 

다마스쿠스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카시움 산에서 다시 본 모스크는 평화의 의미를 깊게 일깨워주었다.

 

이슬람 대사원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해질녘 시내가 잘 보이는 '카시움 산(山)'에 올랐다. 온통 시가지가 모스크의 돔과 기둥으로 뒤섞인 작고 낡은 도시. 낮에 본 화려한 '이슬람 대사원'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낡고 오래된 유적들이 다시금 신비에 감싸지는 듯 했고, 이곳으로 통하는 '하마디예' 전통시장에서 손님을 불러모으는 상인들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확성기에서 "알라는 위대하다는 알라후 아크바르"와 같은 코란 낭송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도시 전체는 엄숙하고 장엄한 고요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간간이 고층 건물에서 현대식 네온사인이 켜지면서 귀가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통일한국) 7월호. 통권151호. 평화문제연구소. 1996.

 

* 이 글은 필자가 1996년 6월부터 평화문제연구소의 [통일 한국] 제 150호에서  153호에 게재했던 것으로 판권에 관한 사항은 평화문제연구소에 있음을 밝혀둔다.위 내용에 사진을 추가하였으며,내용은 추후 수정보완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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