鏡巖 중동의 문화유적 탐방: Explore Cultural Heritage of the Mid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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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베일을 간직한 중동의 문화유적

 

인류문명의 발자취|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요람: 이라크| 뉴 실크로드| 한-중동경제교류

 

홍성민(중동경제연구소장)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문제와 마주친다. 절대불변의 진리(眞理)인 유한한 삶, 죽음()의 문제는 생사의 비밀이라는 숙제를 인간에게 던져주고 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단순한 의문에 대해 인간은 ()의 존재여부와 종교(宗敎)’에서 그 답()을 구하며 내면의 공허(空虛)를 메우는 삶()에서 행복(幸福)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문명(文明)의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인간들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지역과 종교에 따라 삶의 방식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다름 아닌 인종과 종교간의 갈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동에서 아니 지구상 곳곳에서 행해지는 커다란 일들이라는 것도 크게 보면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삶의 궁극목표인 행복은 뒤로 한 채 눈앞의 생존경쟁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대인들과 다른 점은 과학문명의 이기를 크게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학문명은 어떻게 진보해왔는가? 그 해답도 중동의 유적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동양, 특히 중국의 문명에서도 이 점은 발견된다. 하지만 남아있는 기록이나 유물이 부족하기에 증명에 어려움이 있다. 그 만큼 기록이 중요한 것이다. 그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대부분 중동, 특히 메소포타미아지방에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기에 중동의 문화유적은 큰 의미를 갖는다.

 

쐐기문자로 기록된 세계 최초의 카디시아전쟁의 평화조약문(터키 고고학 박물관)

 

중동을 연구하는 방법은 이러한 문제들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세계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많은 유적(遺蹟)들이 발견되고 그 유적들이 소중한 이유도 이 점에 있다. 미스터리한 동물형상의 신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난해한 문자들 등등 그저 관광객의 입장에서 볼 때 그저 신기하고 놀랍다는 표현은 고대인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만 더 증폭시키고 만다. 이제 그들의 문명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까지 인간은 성서(聖書)에 기초하여 인류의 역사의 대부분을 추적해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성서는 구전이건 문서이건 간에 문자에 기초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아담(Adam)으로부터 시작되는 인류역사를 토대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이라 불리게 된 것도 사실이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크게 발달한 고고학은 종교적 범주를 벗어나며 사고의 폭을 넓혀주었다. 중동에서 각종 유물이 발견되고 고대 문자들이 해석되었다. 단순히 설화로 외면당하던 오딧세이가 재해석되고 실화로 반전되고 있으며, 길가메시 서사시가 해석되면서 성경에 대한 반증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스핑크스와 원주

 

문자(文字)의 해득은 성서의 범주를 넘어 설화(說話)나 전설(傳說)로 치부했던 기록들조차도 이제 문명이전의 역사까지 파헤치게 되었다. 그래서 신()에 대한 해득이나 이해도 가능해지고 있다. 이제 창조주를 일컬어지는 신들(Gods)의 이름까지 밝혀지고 있으며 그 신의 실재여부까지 파헤치며 지역간·학제간 연구로 확대되는 것은 놀라운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

그 결과 찾아 나선 것이 우주(宇宙)이고 외계인(外界人)이다. 세계가 글로벌화하여 한 가족이 된 지금! 인간은 이 숙제에 머리를 맞대고 공동대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핵() 분쟁이나 기후변화(climate change)에 대한 대응이다. 천문학이건 물리학이건 생태학이건 모두 중동의 연구를 통해 가능해졌다함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중동의 연구가 중요한 것도 이 점에 있다.

이 같은 성과는 그저 이리저리 뒹굴던 고대의 화석(化石)과 유물(遺物)들 덕택이었고, ‘문자(文字)의 해득을 통해서 가능해졌다. 문명의 발생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신들의 존재는 이제 동북아지역의 신들과 만남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지역의 신들을 연구하는 것은 인류문명의 발자취를 연구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중동에서 신들의 이해는 중동의 모든 연구의 첫걸음이며 중동의 이해에 대한 필수불가결한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스탄불의 아야수피 사원은 동서양 문명을 연결하는 도서관과 같은 박물관

 

다행히 사진이 취미였던 나는 흔치 않은 중동방문기간에 유적지를 찾아 적지 않은 유적유물 사진을 남겼다. 이제 그 사진들을 토대로 다시 중동의 유적과 유물을 정리하니 갈 길이 다시 바빠진다. 경제학자로서 그동안 연구한 주제가 고고학이나 역사를 도외시 한채 이루어진 것이기에 중동연구의 진수를 알지 못한 채 겉모습만 만졌다는 생각이 든다. 중동의 문화유적을 정리하면서 후학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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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즈네는 요르단의 상징으로 유명하며 페트라 보물(寶物)’로 알려져 있다. 비좁은 출입구 시크를 빠져나오면 사암 절벽에 깎아 만든 유적이 한눈에 들어오는 데 그 건축물이

 

 

 

 

 

 

 

 예루살렘(Jerusalem).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를 의미하는 예루살렘은 그 동안 '약속의 땅', '진실의 도시', '신의 도시' 등으로 불리면서 기독교, 유대교 및 이슬람의 성소(聖所)로서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땅'

 

 

 

 

 

필레신전-싸인.jpg

 

필래신전은 이집트, 그리스 및 로마 문명의 완전한 종합형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곳의 건축과 디자인은 하나의 형태로 함축돼 있다. 과거 올드 댐의 물이 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묻어버리기 이전에 모든 문자들은 '

 

 

 

 

 

 

나일강 서쪽은 사자(死者)의 도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며 이곳에 그 유명한 왕들의 계곡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드 시대 다음인 1580-1085 B.C.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의 왕릉은 경주의 고분 마지도 못한 느낌을 준다.  

 

 

 

 

 

 

세계 최고(最古) 상업도시중 하나인 다마스커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발길은 설레임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아는 아직 우리와 국교 관계가 수립되어 있지 않은 유일한 아랍 국가였고,

 

 

 

 

 

 

 

 

 

 

 

 

 

 

 

 


 

    ■ 피라미드가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

    ■ 나바트 왕국과 고대의 향료길

 

 

 

 

 

 

 

 

 

 

 

 

 

 

 

 

 

 

 

 

 

 

 

 

 

 

 

 

 

 

 

 

 

 

 

 

 

 

 

  

 

 

 

 

 

 

 

 

 

  

 

 

 

 

 

종합경제사회연구원

중동경제연구소

한국예멘교류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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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홍성민(중동경제연구소장)

피라미드는 그저 보고 즐기며 감탄사를 연발하라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피라미드는 미래세계의 앞날을 비춰주는 타임머신이다.

 

 ◯ 단지 신화(myth)로 읽혀지는 세계 7대의 불가사의 만으로의 경이로움인가!

 ◯ 로마문명의 기록은 어떻게 가능했으며? 고대문명의 기록은 왜 사라졌으며? 그 문명은 어떻게 2000년 인류역사에서 폐허로 방치됐는가!

  - 로마문명 이전에도 수메르인은 문자로 고대문명을 기록했다.

  - 더 나아가 35,000년 전의 동굴벽화에도 인류의 발자취는 남아있다.

 ◯ 이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이 어떻게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발굴되고 해석되는가!

  - 단지 신화로만 일축되던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사실로 밝혀지며,

  - 이보다 1500년이나 앞서서 설형문자로 기록된 길가메시의 서사시(Epic of Gilgamesh) 또한 노아의 방주를 언급하며 <구약성서>의 천지창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 세계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은 기원전 18세기 이미 아카드어로 역사를 기록했으며 길가메시에 대한 언급도 기록하고 있다.

    ◯ 인도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리그베다>는 기원전 1000년경 인도문화를 전한다.

    ◯ 중국도 BC 2세기경 사마천의 사기에서 하(, BC 21세기 BC 17세기) 나라는 갑골문자의 해석에 의해 실존했던 국가로 확인되고 있다.

 

신화는 대개 종교적 신앙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신()이며 왕()은 신과 연관을 지어 지배자로 묘사된다.

 - 그런 점에서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왕들이 절대자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 이러한 예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에서 밝혀지고 있다.

 

중동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같은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 바빌론 왕국이 그랬고 이집트왕국도 그랬다.

  - 이러한 이유가 피라미드가 오랜 세월 베일에 가린 채 오늘에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신화와 종교를 배제하고 중동을 이해하는 일이란 강()에서 소금을 찾는 일과 같다.

  - 인도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고대세계는 다신교 사회였다.

  - 로마시대도 다신교 사화였다.

  - 일신교 사상이 정립된 것은 모세를 통한 유대교였고, 로마와 유대인간의 투쟁은 이러한 종교적 배경이 근간이다.

  - 일신교 사상이 로마에 승인된 것은 예수를 통한 기독교 사상이다.

  - 중동이 기독교 사상으로 통합되던 7세기에 다시 유일신을 내세우며 등장한 종교가 이슬람(Islam)이다.

이러한 배경은 중동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공존을 묵인하며 현대로 이어지고 있다.

  - 이러한 투쟁은 전쟁과 평화는 수단을 통해 현대에 이르고 있으며,

  - 십자군 전쟁이 대표적인 경우였으며,

  - 비록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을 내세우며 유대인을 학대하긴 했지만 그 본질에도 유대교라는 종교를 배제하기는 어렵다.

 

전쟁과 평화는 마치 창과 방패와 같은 모순이다.

  - 중동에서의 평화정착 문제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의 문제.

  - 오늘날 IS(Islamic State)의 본질도 이 점에서 찾아야 한다.

  - 더 나아가 이란의 문제도 단순한 이슬람 내부의 시아파에서 찾으려하는 점은 큰 오류다.

 

이란의 문제는 보다 복잡하다.

  - 이란의 종교는 조로아스터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도와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으며,

  - 이란의 종교적 뿌리는 Mithra 사상에서 찾을 수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예수의 탄생일이 1225일도 처녀인 Anahita의 딸인 미쓰라의 탄생일이 1225일이라 하며,

  - 새해 원년도 태양력을 기준으로 춘분이 시작되는 날을 '노루즈(Norooz)로 기념하며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이때를 새해로 기념한다.

 

이라크 또한 유대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문명사회였다.

  - 메소포타미아는 태음력을 쓰는 다신교 사회였으나 유일사상이 확립된 것은 이슬람이후의 일이며,

  - 유대인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노아의 후손으로 아랍인들도 그 혈통을 주장하며,

  - 아브라함의 출생지가 자손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찾아갔다. 오늘날 이라크 지역이며 아브라함은 후손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찾아갔다.

  - 기원전 587년 유대인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바빌론 유수(幽囚)’는 이라크에서 있었던 사건이며, 이들이 풀려난 것도 50년 후인 기원전 538년이며,

  - 아울러 고대사회에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했던 문명국 이라크 문제 또한 단순하지 않다.

 

  - 수메르인은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 다시 하루를 24시간, 한 시간을 60,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원을 360°로 나눴다.

2000년이 지난 오늘도 동일한 시간계산법이 현대사회에서 사용하며, 12황도(Zodiac)도 그대로 인정된다.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무덤이 아니면 신전(神殿)이라는 점은 공통된 인식

 

 

<문제제기>: 피라미드는,

 

어떤 목적으로 건설되었는가?

어떻게 거대 건축물의 건축이 가능할 수 있었는가?

그토록 소중한 건축물의 기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로마문명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문명도 왜 같은 길을 걸었을까?

 

현대문명은 18세기 산업혁명이후 눈부신 발전을 기록했다. 그 발전의 뿌리는 어디서 왔는가?

 

인류는 200년 정도의 역사에 최소한 2000년이라는 기술진보의 공백을 메우며 급속히 발전했다.

 - 식량문제를 해결하며, 문명의 이기로 전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고 있으며,

 - 의학의 발달 또한 DNA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 우주선을 타고 창조주()를 찾아 우주를 떠나고 있다.

# 19778월 지구를 떠난 보이저2호는 40년이 흐른 지금 해왕성을 지나 우주생성의 비밀을 계속 알려오고 있다.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50년이 지났다. 중국도 201913일 중국의 창어 4호가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고 보도했다.

 

라이트 형제가 19031227일 최초의 동력비행기를 발명한 후 눈부신 발전이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215~ 164218)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반박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여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다 종교재판을 받은 것이 불과 500년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베일에 감춰졌던 지난 1만년의 인류의 진보는 최소한 5000년 동안 사막의 무덤에 서 잠자던 고대문명 또는 기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순히 신화(神話)라며 일축하던 고대문명보다 우월하다는 진보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전쟁과 평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종교나 인종분쟁에서 찾을 수 있을까?

환경보존이나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일자리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잊혀진 인류역사로 돌아가거나(멸망), 아니면 지구를 벗어난 생존에서 해결(진보) 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주도 생멸하며 인간도 생멸한다.

그 원리는 단순한 자연법칙이다. 자연법칙은 인간이 관여할 범주가 아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닥쳐오는 미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밖에 없다.

 

피라미드는 그저 보고 즐기며 감탄사를 연발하라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피라미드는 미래세계의 앞날을 비춰주는 타임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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