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E 중동 지역연구  Area Studies of the Middl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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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태와 전망

이라크 석유의 현재와 미래

홍성민 (중동경제연구소장, hong@hopia.net)


Ⅰ. 머리말

Ⅱ. 중동질서 재편과 이라크의 석유

  1. 걸프만 석유의 중요성

  2. 국제석유시장의 새로운 변화

  3. 범세계주의(globalism)와 지역주의(regionalism)의 충돌

  4. 이라크 석유의 지정학적 위치

Ⅲ. 이라크 석유산업과 강대국의 이권

  1. 이라크의 석유산업

  2. 강대국의 이권쟁탈

Ⅳ. 이라크 석유의 미래

  1. 이라크 전쟁과 석유산업의 향방

  2.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에너지 확보경쟁 가속화

Ⅳ. 맺음말

 

2003년 3월 7일 (金) 오전 10:00∼12:30

명지대학교 행정동 3층 대회의실

명지대학교 리서치 아카데미 중동정치·사회연구센터/ 정부행정연구센터 공동주최

 

* 본 내용은 명지대학교 리서치 아카데미 중동정치·사회연구센터/ 정부행정연구센터 공동주최로 개최된 "이라크 사태와 전망"이라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이며, 아직 발간되지 않은 자료이기에 인용은 동 연구센터의 규칙에 따른다.

종합연소식

중동소식

예멘소식

KMEA 소식

 

Ⅰ. 머리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전세계적인 반전·반미운동의 확산과 지난 3월 1일 터키의회에서 6만 5천명의 '미군주둔안'이 부결됨으로써 미·영에 의한 단독 공격 감행은 커다란 암초에 부딪치게 되었다. 물론 3월 7일 UN사찰단에 의한 안보리 보고가 남아 있고, 이를 토대로 미·영은 전쟁 결의안을 상정할 전망이며, 만일 결의안이 부결되더라도 현재로서는 이라크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커다란 원칙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짚어 보아야할 명제가 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강경한 대응책을 마련중에 있으며,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와 일본, 심지어는 러시아와 중국에까지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테러사태에 가장 핵심사항은 누가 배후세력이며, 왜 무역센터를 대상으로 하였는가를 밝혀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인물은 테러의 배후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거주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이다. 알-카에다를 축출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던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아프간 전쟁을 뒤로하고 '이라크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 미국의 목표가 "왜 이라크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부터 아프간 공격은 '에너지 전쟁'의 시작이었고, 이라크 공격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이라크에서의 석유장악은 곧 전세계 에너지 시장의 패권을 장악하는 길이고, 아버지 부시가 못 다한 꿈을 실현하는 현재 미대통령 부시의 마지막 승부처 이기도 하다.

이라크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영국군은 미 제1해병원정대와 함께 이라크로 진격한 뒤 루마일라 유전 등 이라크 석유의 약 60% 정도가 생산되는 바스라 지역과 주변지역을 통제하게 된다. 영국은 1920년대에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를 받은 주둔군으로 진주하였으며, 그들이 세운 하심왕조((Hashimite; 1932-1958)가 까심(Abd al-Karim Qasim)장군의 군사혁명으로 전복된 1958년까지 이라크에서 민족주의자들과 전투를 벌인 과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영국은 아직 전쟁이 발발하지도 않았는데 전후 처리 문제에 고심을 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쿠웨이트에 있는 영국군 병참기지 캠프 폭스에서도 이 같은 우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면서 영국군 병사들의 텐트에는 "우리는 친구다. 정직하게 말해 우리는 석유를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라고 적힌 전단를 붙여놓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미·영이 이라크에서 석유자원 확보를 강한 의지가 표출된 실례라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라크 석유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향후 중동에서 전개될 수 있는 사담 후세인 축출이후의 이라크 석유산업의 미래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아울러 세계경제질서의 재편도 바로 에너지 자원의 보고(寶庫)인 중동에서의 질서재편 과정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Ⅱ. 중동질서 재편과 이라크의 석유

 

1. 걸프만 석유의 중요성

중동의 석유가 중요한 자원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걸프지역의 석유자원은 세계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걸프 OPEC 6개국 전체 인구는 약 1억명 정도이며, 세계 총인구의 2% 미만 수준이다. 이들 국가의 통합 면적은 435만km2이며, 세계 면적의 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6개국의 총 원유 확인매장량은 세계 전체의 65%, 천연개스 매장량은 세계 전체의 30%를 점하고 있다. 또한 GOPEC 6개국의 원유는 세계 원유 생산의 약30%를 차지하며, IEA 회원국 원유 수입의 거의 40%를 점하고 있다. (OPEC 생산추이 및 잉여생산능력 <표 1> 참조.)

 

< 표 1> OPEC 생산추이 및 잉여생산능력 추정(EIA)

(단위: 천b/d)

국 가

'03. 1월 생산량

'03. 2월 생산량

'03. 2월 생산쿼터

생산 능력

알  제  리

인도네시아

이      란

쿠 웨 이 트

리  비  아

나이제리아

카  타  르

사  우  디

U  A   E

베네수웰라

1,050

1,025

3,600

2,000

1,350

2,100

 700

8,500

2,050

 614

1,050

1,025

3,700

2,125

1,370

2,225

 740

8,700

2,200

1,400

782

1,270

3,597

1,966

1,312

2,018

 635

7,963

2,138

2,819

1,100

1,050

3,750

2,200

1,400

2,300

 850

10,000-10,500

2,500

1,400

OPEC 10개국

22,989

24,535

24,500

26,550-27,050

이 라 크

2,455

2,315

-

2,900

OPEC 전체

25,444

26,850

-

29,450-29,950

자료: 한국석유공사, 「주간석유뉴스」, 제1119호, 2003년 2. 21.

 

GOPEC산유국이외도 걸프만에는 오만과 예멘이 현재 신흥 산유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오만은 현재 일량 약 90만 배럴, 예멘은 4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산유량이 합쳐질 때 걸프만의 석유에 대한 비중은 점점 더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원유의 매장량이나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고려할 때, 걸프만 산유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대국들이 중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도 중동의 석유, 특히 걸프만의 석유이권과 깊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이 지역에서 사우디-쿠웨이트에 입지를 강화해놓고 있지만, 만일 예멘과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아덴항의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홍해와 인도양을 있는 예멘의 지리적 여건은 미국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행운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2000년 10월 12일 아덴항에서 발생한 콜호사건(이 사건도 빈 라덴이 사주한 것으로 지목하고 있음)을 최대한 끌어들여 협상을 전개할 것이다. 특히 예멘은 시리아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어 아랍-이스라엘 분쟁 조정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기에 미국으로서는 예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미국으로서는 중동에서 걸프전이후 가장 좋은 질서재편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여기에 걸프전시 이라크 편을 들어 커다란 경제적 타격을 입었던 예멘이 실리를 추구하여 미국편에 서게 된다면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대단해질 것이고, 중동의 경제질서는 그 가닥을 잡아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2. 국제석유시장의 새로운 변화

국제석유시장에서 새로운 변화중 하나는 걸프전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동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함으로써 1970년대 이후 잃어버렸던 메이저의 부활을 돕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산유국 사우디가 이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국제석유시장에서 새로운 변화는 석유가 그 구성요소가 되고 있는 장기적인 미-사우디간 맹약(盟約)으로 구체화되고 있으며, 현재는 일종의 지정학적 실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정치적인 비밀협상같은 것은 이제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일시적인 점령과 소련의 붕괴이후 미-사우디 양국간 기본적인 상호 이해의 명백한 존재만이 문제로 되고 있다. 이들 상호 이해는 각각 세계 최대의 원유 수출입국으로서 사우디와 미국의 위치에서 야기되며 이들 양국이 괄목할 만한 수출입의 물량을 증대시키기 위한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는 점에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국제석유시장에서 미국 석유회사의 지배가 손상되고, 실제적으로 제거된 지 30년이후 그 축은 완전히 한바퀴를 돌아온 셈이다. 석유산업에 있어서 미국의 주도권은 재확립되었다. 국제적인 석유에 관한 강력한 정치, 경제적인 이해 협력에 있어서 사우디의 기본적인 개입은 국제석유산업에 있어서 과거 그들이 수립한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체계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으로서 입증될 수 있다.

 

3. 범세계주의(globalism)와 지역주의(regionalism)의 충돌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역주의 경향은 198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었고, 1990년대 이후 3극체제의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첫째로 국제 경제의 역학관계 변화, 둘째로 다자간 무역 체제의 약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1970년대 일본 경제의 부상과 1980년대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등장은 EU와 미국의 상대적인 지위 저하, 산업 및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였다. 이와 함께 1970년대 이후 나타난 무역 경쟁의 심화, 자원 민족주의의 대두, 남북문제의 첨예화 및 미국 경제의 상대적 우위 상실 등은 보호무역의 재연과 함께 자유.무차별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GATT 체제를 약화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무역문제에 대해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들간에 협정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형태가 지역주의로 표현된다.

범세계주의의 대응 수단으로 출현한 지역주의는 점차 파급효과가 커짐으로써 현재의 WTO 체제하에서 세계경제를 몇 개의 배타적인 경제권으로 분할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 EU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으며, 미국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NAFTA, APEC도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EU의 경제통합 강화는 일본을 자극하여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경제협력 기구를 잉태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면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경제권의 새로운 지역주의 모색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 소블럭 형태를 취하는 각 지역의 인접 국가간의 지역주의는 WTO 체제의 대응 수단으로 보호무역적 성격을 띠는 지역경제 통합의 형태로 경제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세계 경제질서는 양극화의 틀이 깨졌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히 걸프전을 계기로 가속화되었다. 이 과정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화해의 손을 잡고 평화정착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여전히 혼미한 상태이다. 걸프전이후, 중동의 경제질서 역시 이스라엘-PLO간 협상 속도와 궤(軌)를 같이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강조되고 있고 있었고, 새로 출범한 WTO 체제하의 경제질서와 공동 보조를 맞추면서 중동의 경제질서도 재편되고 있다. 특히 EU의 경제통합은 이 지역 국가들의 결속에 하나의 촉진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중동의 경제질서는 크게 보아서 WTO 체제의 향방과 EU의 대응 속도에 따라 재편이 이루어질 전망이며, 이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은 지대하리라 보여진다.

 

4. 이라크 석유의 지정학적 위치

이라크 인들은 "왜 미국과 전쟁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이스라엘의 사주를 받은 미국이 지금 문명(文明)의 중심지인 이라크를 멸하려하고 있다"는 종교적 답변과 함께, "우리는 사담과 함께 이 나라를 지켜 낼 것이며, 이라크는 영원할 것이다"라는 내세관이 담긴 극히 이슬람적인 답변으로 항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라크는 이미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의 자원쟁탈 한 가운데 있으며, 문제는 그 자원(資源)을 소유한 이라크 국민들은 그저 사담 후세인에게 백지 위임장을 던져 놓은 상태였다.

부시 미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틀후인 9월 13일 곧바로 오사마 빈 라덴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미국은 영국과 함께 10월 7일 아프간 공격을 시작하여, 12월 11일 알-까에다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서 아프간 전쟁은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부시의 목표는 아프간이 아니었기에 승리는 충족되지 못했다. 빈 라덴과 이라크와의 연계를 찾아내어 이라크 공격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지만 명쾌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시간에 쫓기는 부시 미행정부는 아예 이라크공격에 테러전쟁의 목표를 맞추기 시작했다. 부시는 2002년 1월 29일 국정연설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devil)으로 지목하고 이라크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2002년 10월 15일 대통령의 7년 임기를 연장하는 국민투표에서 100%의 지지를 얻은 후세인은 자신의 건재함을 다시 한번 전세계에 알렸고, 11월 13일 유엔안보리 결의 1441호를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UN 사찰단도 그 동안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 채 사찰기일을 연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가까운 시일내에 결정적인 단서를 내놓고 공격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반면, 전세계에서는 반전여론 또한 만만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니코시아에서는 2003년 2월 2일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학생 등 시위대 200여명이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 및 이스라엘 대사관까지 행진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부시, 블레어, 샤론은 악의 축'이라고 적힌 이란 피켓을 들며 '이라크 전쟁 반대'라는 구호를 외쳤고 일부 시위대들은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전 반대 여론이 스페인 74%, 프랑스 60%, 러시아 59% 그리고 독일은 50%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전세계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간단 명료하다. 미국의 중동 석유자원 지배이며,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재편과정의 초점을 중동에 맞추고 중동질서 재편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눈의 가시가 이라크인 것이다.

이라크 사태의 배경은 걸프전(The Gulf War)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라크는 미국과 매우 우호적인 국가였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실권을 잡은 서구의 공적인 이란의 호메이니와 싸워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이라크를 지원하였다. 미국의 지원하에 1988년 이란과의 전쟁이 끝날 무렵 이라크는 세계 4위의 군사대국으로 성장했다.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측면 지원하던 미국 정부가 이라크의 전후 복구 사업에도 관심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하에 1989년 6월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경제사절단 초청하였다. 미국은 선결조건으로 이라크의 대외채무 해결을 요구했고, 그 방법으로 국영석유산업의 민영화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은 (정권의 돈줄인) 석유주권을 포기할 수 없었고, 투자협상은 결렬되었다. 이라크는 전비반환을 요구하는 쿠웨이트를 1990년 8월 무력침공하게 되었고, 그 결과 미국은 걸프만에 군사적 개입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부시 전 대통령은 1990년 9월11일 '신세계 질서’를 선언하고 "신세계 질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중동의 이라크 아니 사담 후세인이 부시의 집요한 목표가 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미행정부의 이라크 공격의도를 대별하면, 첫째는 중동에서의 미국의 석유이권 장악이요, 둘째는 불황에 빠진 미군수산업의 보호에 있다. 이러한 의도는 지난 수년간 진행된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독일이 반대하고 프랑스가 주춤거리며 영국이 앞장서고 일본이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면 그 이유는 보다 자명해진다.

1901년 영국 주도로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중동의 석유산업은 1930년대 미국의 자본 참여가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의 영향력 증대로 미국의 석유자본이 중동의 석유를 지배하게 되었다. 1960년 OPEC의 창설과 1973년 '석유무기화’로 힘을 얻은 중동산유국들은 자국의 이권을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미국에 우호적이다. 이란도 팔레비 정권시절까지는 미국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유독 이라크만이 미국의 석유자원 지배에 걸림돌이 돼 왔던 것이다. 이라크 석유 매장량은 1120억 배럴로 2650억 배럴의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다. 미국의 이권개입이 가장 어려운 중동의 산유국은 현재‘악의 축’내지는‘UN의 제재조치’에 묶여있는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 OPEC 내 강경파 국가들이다. 따라서 이라크의 후세인 제거된다면, 그 불씨는 곧바로 이란이나 리비아로 옮겨 붙을 것이다.

 

Ⅲ. 이라크 석유산업과 강대국의 이권

 

1. 이라크의 석유산업

1927년 키르쿡 유전에서 최초로 석유가 발견된 이후, 1934년 상업적 규모의 원유생산을 시작한 이라크는 현재 원유매장량이 1,120억 배럴로 사우디에 이어 세계 제2의 매장량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유종(油種)도 API 24-42도, 즉 중질-경질류로 폭넓게 분포돼 있다. UN의 제재에 따라 2001년도 원유 수출량은 171만b/d로 최대 수출국은 미국이다. 이라크의 원유생산은 2002년 1-3월까지 약 240만b/d 정도이며, 이 가운데 약 150만-200만b/d가 수출이며, 그 절반이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27년 키르쿡 유전의 생산 및 판매권은 이라크석유회사(IPC)와 2개의 계열회사인 모술석유회사 및 바스라석유회사가 소유하였다. 1958년 혁명이후 이라크정부는 50대 50의 자본참여를 위한 협상을 벌이기도 하였지만 실패로 끝났다. 1961년 12월 이라크 정부는 법령 제80조를 공포하여 이들 기업으로부터 탐사 및 개발활동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모든 독점권을 몰수하였고 미개발지에 대한 개발권도 제한하였다. 결국 1964년 2월 법령 제11조에 의해 이라크국영석유회사(INOC)가 창설되어 1967년 8월에는 법령 제97호에 의해 전국토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개발권을 INOC에 부여하였다. 1972년 6월 이라크정부는 IPC의 국유화를 발표하고 IPC의 활동은 INOC가 감독하게 되었다. 1973년 3월 1일 이라크정부와 IPC는 세금과 배상문제에 타협을 보게 되며, 이는 이라크와 메이저간에 12년간 지속되어 온 투쟁에 종지부를 찍고 소위 ‘3월 1일 승리'라는 쾌거를 이룩한다. 동년 12월 8일 정부는 바스라석유회사에 남아 있던 외국기업의 주식(영국 및 프랑스)을 INOC에 흡수함으로써 석유자원과 관련된 모든 기업의 국유화를 종료하였다.

석유산업에 대한 국유화이후 이와 관련된 모든 부문은 석유성(省)이 장악하고 있으며, 외국석유회사의 참가는 탐사, 설비건설 및 서비스제공 등의 형태만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인 회사로는 일본 이라크석유회사(1973년 참가), 프랑스의 Elf/Erap, 브라질의 Petrobas, 인도의 Oil Natural Gas Commission 등이 있다. 석유성 산하에는 INOC가 있으며, INOC는 3개의 공단과 1개의 사업체를 소유하고 석유의 탐사에서 생산에 이르는 모든 분야를 관장하고 있다. 주요 유전으로는 이라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남부의 루마일라(Rumaila), 주베이르(Zubair), 북루마일라(North Rumaila) 유전 등이 있다.

이라크의 석유산업은 걸프전으로 인한 피해와 그 후속조치에 따른 UN의 금수조치로 유전시설은 물론 수송시설에 대한 보수와 관리의 미흡으로 생산 및 수송에 커다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라크의 원유생산량은 1996년 12월부터 UN에 의한 수출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1996년의 74만b/d에서 2001년에는 281만b/d로 급증하였다. 2002년에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항의로 잠정적 수출중단(4월 8일부터 1개월간)을 실시하여 변동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는 국내 12개의 정유공장에서 정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2000년 49만b/d, 2001년 60만b/d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라크는 약 300-400억 달러를 투자하여 생산능력을 600만b/d까지 증대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계획은 원유매장량을 고려하면 실현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성공여부는 UN의 금수조치 해재, 외국석유회사의 자본 및 기술지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3년간 이라크 원유의 수출추이 <표 2> 참조.)

 

<표 2> 최근 3년간 이라크 수출추이

(단위: 만b/d)

기 간

2000

2001

2002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평균

수출량

192

171

155

178

177

55

100

76

107

78

88

170

118

자료: 한국석유공사, 2002.

 

하지만 중동산유국가운데 석유의 상류부문에 대한 개방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역시 이라크이다. 이라크에서는 현재 10개정도의 유전개발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나흐르 우마르, 마즈눈, 할화야, 서(西)꾸마와 같은 대규모 유전이 관심을 끌고 있다. 프랑스계 Total사는 나흐르 우마르에, Elf사는 마즈눈 유전개발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협상을 진행시킨 상태이다. 러시아 또한 75만b/d 생산능력의 서꾸마 광구와 20만-25만만b/d규모의 할화야 유전개발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라크 관리들은 금수조치가 해제된 이후 유전을 개발하는데 약 250억 달러가 소요되며 기간은 8-1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추정하며 신규 정제시설을 건설하는데 추가로 약 50억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이 이루어지면 이라크의 생산능력은 260만b/d에서 600만b/d로 증가될 전망이다.

 

2. 강대국의 이권쟁탈

영국과 미국은 1970년대 국유화이전까지 이라크 석유산업을 지배했으며, 특히 영국의 BP는 이라크석유 주식의 약 1/4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쟁과 1991년 걸프전쟁, 그리고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경제제재로 인해 손상된 석유부문 재건을 위해 최근 프랑스와 러시아로 선회, 지원을 받아오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프랑스, 중국의 주된 관심사는 '후세인 이후' 들어설 이라크 차기정부가 현 정부와 체결한 석유관련 합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있다. 특히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루코일사는 1997년 향후 23년간 35억 달러에 달하는 이라크 서부 쿠르나 유전개발 계획에 서명, 이라크내 최대 지분을 갖고 있으며, 프랑스의 토털피나엘프도 약 200억-300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돼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이눈 유전 탐사협상을 진행중이다. 중국석유공사 역시 이라크 정부와 걸프전 당시 상당한 타격을 입은 루마일라 유전지대 일대의 개발계획에 협정을 체결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프랑스, 러시아 및 중국이 UN에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제동을 거는 숨은 배경이 되고 있다.

이라크 사태에서 주목을 끄는 나라는 러시아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협조하느냐의 여부는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2002년 들어 18건의 유전개발 계획을 체결한 러시아 석유회사들은 이라크 유전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Lukoil사는 1997년초 매장량 150억 배럴의 이라크 동남부 웨스트쿠르나 유전개발권(생산능력 80만b/d 예상)을 확보해 지금까지 4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친미 이라크 정부를 수립하면, 기존 러시아 유전 석유기업의 석유이권 및 계약을 무효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미-영의 이라크 제재안에 대해 그 동안 반대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2001년 11월 22일 성 페트르스부르크에서 부시 미대통령과 푸틴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기존이권 및 계약의 보호를 최종 확인한 러시아는 이라크 제재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선회함으로써 미국은 커다란 탄력을 얻고 있다.

 

Ⅳ. 이라크 석유의 미래

 

1. 이라크 전쟁과 석유산업의 향방

로스앤젤레스 타임스(2002년 10월 16일자)의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경우 석유생산량을 늘릴 수 밖에 없어 유가하락 등 상당한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라크가 수년간 하루 생산량을 150만배럴에서 약 300만배럴까지 점차 늘려 현재 배럴당 30달러인 유가가 20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체 수출의 40%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경제는 이렇게 될 경우 유가하락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고 게다가 이라크산 석유가 러시아 수출물량의 거의 모두가 집중되는 유럽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돼 더욱 곤경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이라크의 최후수단이다. 만일 이라크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지막 몸부림으로 이라크 유전에 불을 지른다면, 세계의 석유공급에 커다란 화(禍)를 불러드릴 것이다. 이라크는 지난 91년 걸프전쟁 때도 자국의 유전 수 백 곳에 불을 지르는 등 파괴 행위를 했으며 이로 인해 이라크는 쿠웨이트 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적, 생태적 손실을 입었다. 이라크에는 매년 200-300억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유전이 남부에 약 1천곳, 북부에 약 500곳이 있으며 유전 파괴행위로 인한 피해액은 300-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 2위의 원유매장국인 이라크의 석유산업은 20여년에 걸친 전쟁과 금수조치 때문에 피폐해져 외국인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전성기였던 1970년대말의 이라크 산유량은 하루 350만배럴이었고 지금도 대규모 인프라 투자만 이뤄지면 최대 하루 600만배럴에 이를 수도 있다. 이는 사우디 아라비아(880만배럴), 미국(720만배럴), 러시아(710만배럴)에 이어 세계 4위에 해당되는 규모다.

이라크는 1920년대에 첫 유전 발견 이후 외국 석유회사들과 유전 장악을 위해 줄다리기를 해왔다. 1970대에 석유산업 국유화로 석유수출수입은 5배로 늘어나 사담 후세인이 집권할 수 있는 토대가 됐고 경제개발과 군사력 확충을 위한 자금줄 역할을 했다. 그러나 15년후 상황은 급변한다. 걸프전 이후 유엔의 제재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이라크 석유산업은 궁지에 몰렸다.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후 6개월만에 이라크의 산유량은 90% 가까이 급감했고 초기 금수조치로 수출입과 외국인투자가 전면금지 됐다.

이라크 국민의 생활고가 파국적인 상황에 이르자 유엔은 1996년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생필품 수입을 위한 제한된 규모의 석유수출을 허용했다. 당시 석유수출 허용금액은 6개월에 20억달러였다. 이후 1998년까지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보였고 유엔은 노후 산유시설 보수용 부품을 수입할 수 있도록 석유수출액을 총 52억달러로 늘렸다. 그러나 이라크 석유산업은 이후 2년간 이 쿼터조차도 채우지 못할 만큼 상황이 악화됐다. 이라크를 방문했던 유엔 전문가들은 지난 20년간 이라크 유전시설의 상당부분이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고 진단했다. 낡은 장비를 개수하지 않은 채 갑자기 산유량을 늘리면 시설피해만 더 늘어날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1).

 이라크 정부는 금수조치가 곧 해제될 것으로 기대하는 외국인투자가들과 최근 몇년새 활발하게 협상을 벌여 러시아와 프랑스, 베트남, 시리아외에 몇몇 다른 나라들과도 유전탐사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전쟁가능성이 커지면서 추후 새 친미정권이 이라크에 들어서면 기존의 협정을 몽땅 파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라크는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 `루크오일'과 체결한 37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2002년 12월 파기했다가 최근 복원시켰다. 러시아가 유엔의 이라크 무기사찰 결의안을 지지한 데 대한 정치적 대응차원에서 계약을 파기했었다는 분석이다.

사담 후세인 축출을 위한  군사행동에 대한 기대가 이라크의 엄청난 석유자원을 노린 국제적 경쟁을 촉발했으며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미국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는 후세인이 축출될 경우, 자국 석유회사들이 이라크정부와 합의한 경제성 있는 유전개발권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약을 기대하고 있다. 이라크는 1천125억배럴의 매장량을 확보하여 사우디 아라비아(2천617억배럴)에 이어 세계 제2의 석유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배럴당 30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할 때 이라크 국민 1인당 14만5천달러의 몫이 돌아가 220억 배럴에 불과한 미국에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 석유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이 현안이 대이라크 유엔결의안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정부간 협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정당한 전쟁을 통해 이라크를 점령할 경우 이라크 유전들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이 국제법상 가능하며, 이라크 유전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점령 비용을 충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월 스트리트 저널, 2003년 1월 29일자). 이라크 점령군 사령관이 될 토미 프랭크스 미국 중부군 사령관은 전쟁이 끝난후 어느 정유공장을 가동할 것인지, 1천500개에 이르는 유전 가운데  어디를 가동하고 어디를 폐쇄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또 파손된 유전을  복구하기 위해 석유수입으로 즉시 유전서비스 업체 등을 선정하고 석유생산을 위해 이라크 석유 노동자들에 대해 출근 지시를 내리는 것도 미국 사령관들의 권한이 될 것이다. 더 나 아가 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이라크를 대표해야 하는지와 이미 이라크 석유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유엔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등은 앞으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캠브리지 에너지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제임스 플래크는 "이라크가 큰 석유자원국이라고 해서 돈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한 조사 결과로는 이라크가 향후 10년간 발전소 복구에서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복구작업에 필요한 자금은 2천500억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원유생사시설을 복구 및 확장하는데 드는 500억달러는 제외돼 있다. 이런 추정 속에 플래크는 지난해의 경우 이라크가 원유수출을 통해 얻은 외화는 120억-140억달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전쟁이 있게 되면 석유시설은 파괴될 것이고 생산량은 더욱  줄어들면서 연간 원유판매수입은 격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미국에 의해 석유시설이 점령되기 전에 이 시설들을 먼저 파괴해 버린다면 그 피해는 더욱 클 것이다. 이란-이라크전쟁이 있기 전인 25년 전만 해도 이라크의 하루 원유생산량은  350만배럴이었으나 지금은 280만 배럴 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의 유전관리회사들도 전쟁이 끝난 후 이익이 반드시 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한 전후 복구작업에 즉각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전후복구작업이 순탄치만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2.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에너지 확보경쟁 가속화

 

1)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비단길'과 중국

중국의 아·태평양 지역국가들에 대한 석유의존도는 1997년 61%에 달했고, 2005년에는 66%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원유 수입선을 중동으로 돌리고 있다는데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하면 공급자와 수요자의 역학관계에서 중국이 세계적 시스템속으로 진입하는 경쟁적 매입자로서 중국이 참여하기 시작하였다는 데 새로운 의미가 있다. 따라서 중동국가들 또한 중국시장을 개척하는데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고 있다(<표 3참조>).

 

<표 3>  중국 수입원의 다변화(1990-1997)

(단위: 총수입에 대한 %)

 지 역

 원 유

 제 품

1990

1997

1990

1997

중       동

아· 태평양

아 프 리 카

기       타

39.4

60.6

0

0

47.5

26.2

16.7

9.6

1.2

85.5

0

13.3

1.8

81.6

0.4

16.2

자료: 한국석유공사, 「주간석유뉴스」, 2001년 제1024호

 

중국은 석유수요가 경제성장과 더불어 증대되는 것에 맞추어 에너지 시스템을 신속하게 대규모로 전환해야 된다는 점과, 해외석유에 대한 확실한 접근수단을 통해서 증가하는 수입수요를 충당해야 한다는 두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전자는 막대한 민간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며, 후자는 해외의 에너지 자산에 대한 중국의 현명한 투자선택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WPN/01/03/30; 50-61).

에너지 문제는 중국의 외교정책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석유 및 개스의 관점에서 외교적 목표가 국내 에너지 안보를 최대화하는 방향에서 세계 에너지 시스템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 10년동안 중국은 중동의 원유에 대한 국제적인 의존속에서 적정화를 모색할 것이다2). 상류부문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일부 국가들이 승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한 경쟁없이 들어갈 수 있는 개방된 틈새를 이용하여 이라크, 이란 및 수단 같은 곳으로 투자는 계속 될 것이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의 접경 국가들과의 관계를 수립하는데 외교정책적 관심이 있으며, 이는 또한 중국의 석유 안보적 관심과 일치하는 것이다. 카스피해 원유는 걸프만 원유에 대한 수요를 현저히 삭감시킬 수 있으므로 중기(中期)에 있어서 중동의 시장점유율에 대한 강력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증대되는 생산량은 향후 10년간 200만b/d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석유를 이란 또는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수출할 파이프라인의 건설은 결과적으로 다량의 카스피해 원유가 아시아로 향하게 될 것이다.

만일 CNPC가 러시아 극동지역 보다는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는 '에너지 비단길'을 선호하게 된다면, 중앙아시아에서의 원유 수송로 확보를 위한 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에너지 비단길'의 주요한 장애는 다국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에너지 기본전략은 국내자원을 개발하고, 전략적인 비축을 만들어내고, 외국의 기술과 투자를 유치하며, 확실한 석유교역 채널을 수립하고, 해외의 상류부문 생산시설에 대한 전략적인 투자를 행하는 데 있다. 또한 중국은 중동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장거리 해상 수송로가 안전한 상태로 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의 에너지 시장은 중국의 세계시장 참여를 바라고 있고, WTO 가입으로 중국의 에너지 정책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의 포괄적인 에너지 수급체계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1970년대 석유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한국경제 및 에너지 수급구조의 취약성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다. 한국은 해방 이후 남북분단과 6.25전쟁으로 우리 경제는 극도로 피폐한 상태이었기에 1961년 이전에는 난방 및 취사연료가 주종인 무연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연합한국부흥단(UNKRA)과의 협력하에 최신장비 및 기술을 탄광에 지원하여 연평균 10% 이상 증산하였으나, 수요충족에는 태부족 상태였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으로 시작된 1차 석유위기로 선진 에너지 소비국들은 국제에너지기구(IEA)를 결성하여 공동대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석유비축, 소비절약 강화, 대체에너지 개발 등 중장기 대책마련에 부심 하였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에너지집약형의 중화학공업 투자에 박차를 기울였으나, 중동특수(中東特需)에 따른 호황으로 경제적 타격은 최소화하였다. 따라서 에너지 정책도 소비절약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초기 단계의 단순한 소비절감시책을 전개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978년 10월 이란의 이슬람혁명으로 동년 2차 석유위기가 발생하였다. 1차 석유위기시 큰 피해없이 넘겼던 우리나라는 충분한 위기대비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석유위기의 악영향이 국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 사상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1, 2차 석유위기는 에너지 자원, 특히 석유자원이 전혀 없는 한국에 대하여 에너지의 안정공급 확보를 제1의 정책과제로 부각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은 급기야 동력자원부라는 새로운 정책개념을 우리에게 도입하게끔 만들었다3).

산업자원부는 2001년도 에너지 정책의 골격을 첫째로 에너지 시장에 경쟁도입 본격화로 에너지산업의 효율성 제고, 둘째로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사회구조로의 전환 촉진, 셋째로  환경 친화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구조 정착에 두고 있다.

에너지시장에 경쟁도입 본격화로 에너지산업의 효율성 제고 방안으로는 전력.가스 등 에너지 산업구조 개편의 차질 없는 추진과 석유 유통시장의 투명성 제고 및 전자상거래 도입을  촉진하는 것이다. 에너지저소비형 경제·사회구조로의 전환 촉진 방안으로는 에너지 기술개발 및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효율성 향상시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에너지절약형 생활양식의 정착을 위한 범국민 실천운동 전개하는 것이다. 환경 친화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구조 정착 방안은 대체에너지개발 및 보급 촉진 등 에너지 Mix의 低탄소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남북한·동북아를 포괄하는 대륙형 에너지 수급체계 구축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원유수입과 중동의존도 전망 <표 4> 참조).

 

<표 4>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원유수입과 중동의존도 전망

(단위: 천b/d)

구 분

1997

2000

2005

2010

총원유수입1)

역내수입

중동지역수입

기타지역수입

중동의존도

12,187

2,201

8,970

1,016

74%

13,339

2,075

10,057

1,207

75%

15,469

1,524

12,360

1,584

80%

18,767

926

15,99

1,844

85%

자료: 한국석유공사, 「주간석유뉴스」, 제1119호, 2003년 2. 21.

주) : 1) 역내 교역물량 포함

 

3) 일본 에너지 산업의 과제

20세기 일본은 에너지 안보문제에 관하여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훨씬 큰 비중을 두어왔다. 석유의 안정적 확보는 1930년대 당시 석유의 60%이상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던 일본의 아시아 지배와 태평양전쟁 당시 식민지 확장을 배경으로 발생한 우발적인 상황이상의 것이었다. 1941년 미국석유의 금수조치는 일본의 석유물량을 차단시켰고, 이 사건은 진주만 공격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접근은 역사적 경험, 즉 1930년대와 1940년대 제국주의 확장기간 동안의 경험 보다 최근 1973-74년과 1979-80년의 석유위기 기간의 희생자로서 경험에 의해 형성된 세계관을 반영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상황을 바꾸어 보려는 일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원에 대한 일본의 외부 의존도는 여전히 80% 이상의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는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원의 취약성에 대한 인식과 외부세력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일본의 에너지 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에너지 자립이라는 목표가 항상 외교정책에 반영되는 것이다.

지난 1990년대 석유시장에서의 상황변화와 1985년 9월 플라자협정(Plaza Accord) 이후 엔화(円貨)의 평가절상은 일본의 에너지 공포를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었다. 석유수입에 사용하는 일본의 GDP 금액은 1980년이후 9배나 줄었으며,1998년까지 석유수입 비용은 엔화의 강세에 힘입어 1980년 수준에서 거의 80%나 감소하였다. 그렇지만 유리해진 일본의 에너지 상황도 궁극적으로 일본의 에너지 정책4)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고 있다(WPN/01/08/ 03;  43-45).

1973년 이후 일본 에너지정책은 3E를 달성하기 위한 5개의 주요 요소5)가 일본 에너지 산업의 과제로 되고 있다. 에너지 공급원의 확보나 대안 개발에 대한 인식은 일본의 정책입안과정에서 '자원로비' 세력이 발흥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통산성(MITI), 외무성, 천연자원 에너지청(ANRE), 과학기술원(STA), 수송성 및 에너지 안보에 관련된 기타 다른 정부 기관들의 세력과 영향력에 이해 당사자가 되고 있다. 아무튼 일본 석유산업에서 최대의 과제는 석유의 의존도를 물리적으로 감축시키는 것보다는 전략적 석유 비축정책이다. 석유비축은 단기적인 석유위기를 흡수하는데는 최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Ⅳ. 맺음말

미 에너지 정보국(EAI)은 이라크 공격에 대한 3단계 유가의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첫 단계는 단기적인 작전으로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와 제조단지 및 보관소 등 무기관련 설비지역과 핵시설을 완전파괴하는 것으로 약30일간에 작전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유가는 배럴당 25달러 내외에서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할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Inside Out’ 작전, 즉 중기전으로 약 3-4개월 정도에 작전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지리적으로 사막지대이고 산악지대가 많지 않아서 작전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 작전이 성공하면 유가는 오히려 40%가량 감소한 10달러까지도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라크가 쿠웨이트나 사우디의 유전을 공격하는 경우이다. 만일 이러한 최악의 상황이 전개된다면 유가는 배럴당 50-80달러까지의 고유가 상황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목표가 이라크의 무장해제 내지는 후세인 정권의 교체에 있는 만큼,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개전초에는 유가의 약보합세, 개전중에는 상승세, 종전후에는 하락세라는 단순한 도식밖에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국제유가의 등락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의 의도는 중동의 석유자원을 장악하려는 숨은 목표가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전쟁이라기보다는 중동에서의 질서 재편을 위한 전초전"이라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걸프 당시 주역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중동문제에는 전문가들이 많으며, 걸프전에서 이룩한 성과를 확대할 전망이 짙다. 또한 부시 자신도 석유회사를 직접 경영한 경험이 있고, 이란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Halliburton사는 체니 부통령이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회사이다. 그러므로 석유문제와 관련된 중동사태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현재 미국 행정부는 상당히 실리적인 방향으로 전략을 전개할 것이다.

세계의 문명은 에너지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장의 궤(軌)를 달리하여 왔다. 21세기의 세계도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각축이 선진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현대의 전쟁은 경제전(經濟戰)화 하는 현상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2001년 미국에서의 9·11테러 사태이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아프간 공격과 현재 전세계 초미(焦眉)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도 석유자원의 확보를 위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그 배경은 중국의 에너지 정책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에너지 비단길',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관심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현재의 이라크 사태가 향후 아시아에서 미·중의 에너지 시장 쟁탈전을 예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

(03/03/05)

1) 2000년 이후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에 따른 이라크 산유장비 부품 구입액은 48억달러에 이르고 산유량도 걸프전 이전의 4분의 3 가량으로 증가했다.`

2) 중국은 1998년 8월 이라크와 생산분배계약을 체결하였고, 1997년 3월 CNPC는 수단정부와 포괄적인 계약을 체결하였다. 중동에서 중국의 주요 목표국가는 오만, 예멘, 이란 UAE, 사우디 아라비아, 앙골라 등이다.  

3) 산업자원부. 2000. 『2000年度 에너지·자원정책의 現況 및 懸案』

4) 일본 에너지 정책의 목표는 '3E' 정책이다. 즉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 경제성장(economic growth) 및 환경보호(environmental protection)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5) 5개의 주요 요소는, 1) 석유의존도의 감축, 2) 비석유 공급원의 다양화, 3) 탐사와 생산을 통한 석유 매장량 구축으로 공급원의 확보, 4) 에너지 절약의 추진 및 5)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에 대한 R&D의 촉진 등이다. 아무튼 156일분에 달하는 일본의 막대한 비축량은 석유 공급 위협에 대한 최대의 방어벽이 되고 있다.


KIME 중동 지역연구 Area Studies of the Middl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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