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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중동정세와 고유가
홍성민(중동경제연구소장)
꺼지지 않은 중동의 불씨
무기밀매선 문제로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1월의 이-팔사태는 자살테러의 연속과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연금과 해금으로 이어지면서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과 유엔이 중재에 나서기도 했고, 3월에는 아랍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하였지만 결과는 모두 부정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이 당초 약속과는 달리 “미국의 대테러전은 딴 길로 빠져 새로운 방향의 목적을 추구했으며, 이는 이스라엘 점령에 항거하는 적법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파괴하고, 아랍권과 이슬람 세계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지원을 보냈던 무바라크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비난발언은 중동사태의 전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전국에 생중계된 노동절 연설에서 “미국과 세계 지도자들은 당초 팔레스타인 독립국 창설과 이스라엘에 점령된 아랍영토의 환수를 약속했다”, 그러나 “대테러전 수행과정에서 이 같은 가치는 모두 무시되고 오로지 이스라엘의 정치적 이득만 보장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5월 1일 ‘예닌 진상조사단’ 해체를 결정한 것은 이스라엘의 협력 거부와 시간의 경과로 실효성 있는 조사가 어려워졌다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유엔이 마르트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등 3명의 위원을 임명하는 등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진상조사를 포기한 것은 국제정치 역학구도에서 유엔의 무기력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것으로, 유엔의 권위에도 일정한 손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은 또 이스라엘의 예닌 난민촌 `학살의혹'을 제기해온 아랍권의 반발과 불신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와중에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서 5개월 동안 연금생활을 해 온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5월 1일 해금(解禁)되었다. 아라파트 수반의 연금해제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팔사태의 진정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속단(速斷)할 수 없다. 연금에서 풀려난 직후, 아라파트 수반은 사나운 표정으로 집무실 밖으로 나와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응답도 하지 않은 채, 첫 일성(一聲)으로 이스라엘군은 “테러분자며 나치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아무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동의 사태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편 국제유가는 5월 2일 중동사태 악화에 따른 우려가 시장에 확산되면서 지난 6개월 사이 가장 높은 배럴당 28달러에 육박하였다. 뉴욕상품시장에서 이날 서부텍사스중질유는 5월 인도분이 전날보다 83센트 급등해 배럴당 27.71달러에 거래가 마감됐다. 따라서 소비국들은 ‘이라크의 석유무기화’ 제의 따른 고유가(高油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국가 건설이 관건(關鍵)
클린턴 미대통령의 퇴임 5개월 전에 성사된 2000년 7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은 중동 평화협상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바로 이 회담에서 10년에 걸친 평화정착을 위한 단계적 노력은 끝났고 모든 사안이 포괄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려졌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성사시킨 클린턴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중동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바랐다. 클린턴은 2000년 12월 이집트 타바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중동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했지만 그때는 이미 퇴임을 1개월 앞둔 ‘레임덕’으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아라파트도 캠프 데이비드에서 했던 식으로 계속 새로운 요구들을 내놓았다. 실제로 양측은 예루살렘과 관련해 통곡의 벽 어느 부분을 누가 관할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 문안을 두고 협상하는 데까지 갔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중동전쟁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향을 허용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이-팔 충돌의 기본적인 배경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에 있다. 1993년 9월 중동평화회담의 극적인 타결로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으로 적대관계를 유지해오던 이-팔관계는 중동평화의 새로운 장(章)을 열게 되었었다. 그러나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주변 아랍 국가들이 진정 바라는 ‘평화정착’은 ‘자치’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국가 건설’이었다.
1999년 2월 PLO 아라파트 수반은 “이스라엘과 체결하는 최종 협정에 관계없이 2000년에 거룩한 독립을 선포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나 5월 13일 이스라엘의 팔 소국(小國) 설립 제의와 미국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종 협정안에 이르지 못하게 되자 9월 13일 [팔레스타인 독립국] 선포를 천명하였다. 2000년 5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9월에 요르단강 서안 66% 지역에 일단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고, 그 뒤 2년간 서안지구 14%를 추가 양도함으로써 요르단강 서안의 총 80%지역을 팔레스타인 영토로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와중에 2000년 9월 28일 이스라엘 극우 리쿠르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동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군 충돌로 수십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동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의 수도를 정하겠다는 것이며, 이스라엘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독립국가 선포를 연기하라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여 지난해 (독립선포 12주년인) 11월 15일 독립선포를 연기하려했지만, 계속되는 이-팔 충돌과 폭력사태는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팔 사태의 배경은 팔레스타인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는 완전한 독립선포를 양보하지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생존권 문제가 첨예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양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기본 입장에는 21세기 물(water) 부족 위기에 대비한 수자원 확보라는 변수가 깔려 있는 만큼, 팔레스타인에 대한 더 이상 추가 양보는 어려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새로 출범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문제를 포함한 강력한 미국의 대중동 정책 또한 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욱이 2000년 2월 6일 압도적인 지지로 이스라엘 총리로 당선된 강경파 샤론의 대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의 42% 이상은 팔레스타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 강경책과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은 이-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사문화된 오슬로 협정
중동평화의 길은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캠프데이비드 중동평화협정 체결로 시작된 이후,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다소 진척되는 기미를 보여왔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이후 45년만에 적대관계를 유지해 오던 이스라엘과 PLO가 1993년 9월 13일 이스라엘과 PLO가 팔레스타인 자치안에 전격 조인함으로써 중동의 평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협상단계부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보장이 애매한 상태에서 시작된 평화협상은 급기야 2000년 이-팔 충돌을 야기했고, 이제는 중동 전역으로 그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1993년 오슬로 협정은 사문화가 된 상태이며, 완전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 한, 중동에서의 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여진다. 결국 자치적이며 독립적인 팔레스타인국 건설이라는 PLO의 요구와 부분적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이스라엘측의 희망사항은 쌍곡선을 긋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미-이스라엘 공조는 아랍권의 결속과 EU 및 러시아의 동참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범세계주의(globalism)에 반대하는 반미주의 성향이 중동에서 확산되고 있으며, 주변 아랍국은 물론 비아랍, EU 러시아의 행동여부는 중동에서 또 다른 지역주의(regionalism)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이라크의 석유수출 중단과 고유가
사담 훗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 4월8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과 관련, 이날부터 30일간 석유수출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라크가 석유수출 중단을 발표한 직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27달러대로 뛰어오르면서 급등세를 보였다. 모하마드 아메르 라시드 석유장관은 이라크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항의, 4월 8일부터 시작한 30일간의 석유 수출금지 조치의 연장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라시드 장관은 알 카디시아 신문에 ꡒ유대주의자들의 공격이 계속될 경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기 위해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연장할 수 있다ꡓ고 밝혔다.
이라크의 석유-식량 교환(oil for food) 프로그램은 이라크의 1990년 쿠웨이트 침공이후 유엔이 이라크 제재조치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1996년 12월에 마련된 것으로 이라크는 유엔이 승인한 식량과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정도의 석유만을 수출하도록 돼 있다. 현재 11차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라크는 UN이 현재의 제재 내용을 조금이라도 변경한다면 석유수출을 중단하겠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2002년 5월 30일까지 연장돼 있는 이라크의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의 협상여부에 따라 이라크의 수출중단 사태는 가닥을 잡아 갈 것이다.
이라크의 석유수출 중단과 석유무기화에 대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산유국들의 반응은 비교적 관망하는 자세이다. 이란과 리비아, 사우디 아라비아가 이라크의 석유수출 중단 조처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OPEC 관계자는 이란과 리비아가 이라크의 석유수출 중단조처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란과 리비아는 다른 아랍나라들이 이라크의 석유수출중단 조치에 가담할 경우에만 석유수출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이란과 리비아가 석유수출 중단에 동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도 4월 9일 ‘석유무기화’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원유시장에서 공급부족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원유수입상들에게 약속했다. 대부분의 석유전문가들은 OPEC가 이라크의 `석유무기화' 제의에 냉담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시장수급 기조도 안정적이기 때문에 유가 강세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이번의 제의는 유엔에 의해 석유수출을 통제 받고 있는 이라크가 중동사태 악화를 빌미로 아랍 역내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석유무기화를 제의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5월말로 예정돼 있는 이라크의 석유수출 프로그램에서 유리한 협상의 여지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비록 현재의 석유무기화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할지라도, 전세계 원유 매장량의 약 60%를 가지고 있는 중동의 석유는 항상 ‘무기화와 고유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중동의 석유는 중동의 정치, 경제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고, 전세계에서 가동되고 있는 연료의 대부분은 이들의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심지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까지도 시한폭탄인 것이다. 이 시한 폭탄에 불을 당길 수 있는 불씨는 항상 중동 산유국에 있으며, 그 불씨를 좌우하는 것은 중동평화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중동 불씨의 핵(核)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곧 유가(油價)의 향방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아라파트의 연금해제로 다시금 불안해진 중동사태의 우려로 국제 유가가 5월 2일 지난 6개월 사이 가장 높은 배럴당 28달러에 육박하였다는 사실이다.
(02/05/02)
* 본 내용은 [석유협회보]. 2002년
5-6월호. 서울: 대한석유협회에 게재된 글이기에 인용은 동 협회의 규칙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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