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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E 중동 지역연구 Area Studies of the Middle Ea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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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nstitute of the Mideast Econom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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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21세기를 들어오면서 미국은 확실히 세계경제를 환하게 비춰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동안 지리멸렬하게 진행되던 WTO 협상도 중국과 마무리단계를 남겨놓고 있었고, 이-팔분쟁도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후원으로 승기를 잡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과 뉴욕에서 어처구니없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세계의 방공기지라 볼 수 있는 펜타곤이 공격을 받았고, 세계무역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세계무역센타(WTC)가 한 순간에 주저앉았다. 이를 지켜본 전세계 시민들은 테러의 파괴력에 충격을 감출 수 없었고, 분노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후, 미국 최대의 모멸감으로 표현되는 이번 테러사건으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 경제의 앞날에 먹구름이 흐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계량화할 수 없는 6천300명 이상의 인명 손실이 있었다. 약10만명 이상의 일자리가 이미 사라졌고, 런던과 뉴욕에서 우량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우리 약560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여파는 즉시 런던, 동경 및 홍콩의 증시에 영향을 주었고 한국 증시에도 파급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항공산업과 석유산업을 비롯한 타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계무역도 현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중동에서의 정치, 경제적 상황변화는 곧바로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에너지 시장에서의 변화는 이 지역에서의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비록 이번 사태가 중동에서 발생지는 않았지만, 9․11 테러 사태의 배후자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하고 있다고 추정되고 그가, 이슬람-아랍인이라는 점에 귀추가 주목된다. 에너지 시장, 특히 중동의 석유산업에서의 변화는 아프간이후의 확전(擴戰)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미리 우리의 에너지 정책을 점검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한 ․중․일의 에너지 정책을 비교해 봄으로써 향후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한 의도로 시도되었다.
1. 1-2차 석유위기이전의 에너지 정책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1970년대 석유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한국경제 및 에너지 수급구조의 취약성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다. 한국은 해방 이후 남북분단과 6.25전쟁으로 우리 경제는 극도로 피폐한 상태이었기에 1961년 이전에는 난방 및 취사연료가 주종인 무연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연합한국부흥단(UNKRA)과의 협력하에 최신장비 및 기술을 탄광에 지원하여 연평균 10% 이상 증산하였으나, 수요충족에는 태부족 상태였다. 제1차 석유위기가 있기전 까지 한국은 에너지부문의 인프라확충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수요증가 속도에 맞추지 못하여 간헐적으로 에너지파동이 발생하였다. 전력부족의 근원적 해소를 위해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을 단행, 조선전업(朝鮮電業), 경성전기(京城電氣) 및 남선전기(南鮮電氣) 등 민간 3사를 통합하여 한국전력(주)을 설립하고 내외자(內外資)를 동원하여 전원개발투자(電源開發投資)를 확대하였다. 석탄 증산의 제약 및 정유산업 육성(1964년 최초 정유공장 완공)으로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주유종탄정책(主油從炭政策)의 기조를 확립하였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으로 시작된 1차 석유위기로 선진 에너지 소비국들은 국제에너지기구(IEA)를 결성하여 공동대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석유비축, 소비절약 강화, 대체에너지 개발 등 중장기 대책마련에 부심 하였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에너지집약형의 중화학공업 투자에 박차를 기울였으나, 중동특수(中東特需)에 따른 호황으로 경제적 타격은 최소화하였다. 따라서 에너지 정책도 소비절약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초기 단계의 단순한 소비절감시책을 전개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978년 10월 이란의 이슬람혁명으로 동년 2차 석유위기가 발생하였다. 1차 석유위기시 큰 피해없이 넘겼던 우리나라는 충분한 위기대비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석유위기의 악영향이 국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 사상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1, 2차 석유위기는 에너지 자원, 특히 석유자원이 전혀 없는 한국에 대하여 에너지의 안정공급 확보를 제1의 정책과제로 부각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은 급기야 동력자원부라는 새로운 정책개념을 우리에게 도입하게끔 만들었다2).
2) 동력자원부의 신설과 에너지 정책의 도입 1978년 1월 한국정부는 에너지정책 전담 부처인 동력자원부를 최초로 신설하고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에너지문제를 경제정책의 부수적 수단으로 인식하던 기존의 정책시각에 대한 회의론 증대와 아울러 산업․경제의 기반인 에너지 산업을 종합적, 체계적인 정책 조직을 통하여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일시적, 단편적 대증요법(對症療法)을 탈피하고 미래 대비적인 장기적, 종합적인 에너지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동력자원부 신설로 한국의 에너지 정책의 골격은 에너지원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에너지 수급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 수급관리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아울러 석유사업기금 등 이미 확보된 재원을 활용한 과감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함으로써 전력, 석유, 가스 등 전국적 에너지 Grid망 구축하고, 천연가스 도입 및 공급망 구축, 석탄산업합리화 등 산업형성․전환과정에서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다는 것이 한국 에너지 정책의 시원(始原)이라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환경문제를 강조하면서 수요자 중심의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 에너지 정책은 1) 공급중심의 정책 및 2) 강력한 가격규제가 기본 골격이었으나, 에너지 환경의 변화, 즉 1) 고유가 상황의 장기화와 2) 환경 친화적 사회구조 요구의 증대로 한국의 에너지 정책방향은 1) 공급중심의 에너지정책에서 수요중심의 정책으로 전환, 2) 가격에 의한 시장기능 확보 및 3) 선진국형의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체계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강력한 절약정책 추진책으로서 1)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에 대한 초저리 융자지원 확대, 2) 고효율기기 제조업 육성 및 기술개발 추진 및 3) 연비제도 등 에너지 효율관리제도의 강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3)
3) 21세기 한국 에너지정책의 기본 여건과 과제 21세기 에너지 부문의 국제적 여건은 첫째, 기후협약 이행의 본격화와 둘째, 에너지 수요증대로 인한 자원 확보경쟁의 심화, 셋째, 남북 및 동북아 협력의 가시화 등으로 볼 수 있다. 미래의 안정적 에너지공급을 위한 제반 수단을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지속성장과 국민복지 향상을 뒷받침하고, 에너지수요 및 공급부문의 효율향상과 절약문화의 확산을 통해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사회구조로의 이행을 촉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 10위 에너지 소비국으로서 지위에 상응하도록 에너지 수급시스템을 전면 혁신하고, 기후변화협약, 자원확보 경쟁심화에 따른 국제환경 규제 및 에너지시장 교란에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수급구조를 정착해야 하는 것이 에너지 정책의 기조가 되고 있다.
4) 21세기 한국 에너지 정책의 기조 산업자원부의 2001년도 에너지․자원정책 Highlights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크게 나누어 아래와 같이 7가지로 요약된다.
1. 에너지 소비구조 혁신을 통한 선진형 소비구조 정착 2. 2003년까지 대체에너지 보급율을 2배로 확대 3. 에너지산업의 시장기능 활성화 4. 에너지산업의 경쟁체제 정착 5. 에너지 수급 안정 및 자주능력 배가 6. 시장기능에 의한 에너지 안전관리체계 정착 7. 대륙형 에너지산업체계 구축
5) 2001년도 에너지 자원정책 산업자원부는 2001년도 에너지 정책의 골격을 첫째로 에너지 시장에 경쟁도입 본격화로 에너지산업의 효율성 제고, 둘째로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사회구조로의 전환 촉진, 셋째로 환경 친화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구조 정착에 두고 있다. 에너지시장에 경쟁도입 본격화로 에너지산업의 효율성 제고 방안으로는 전력·가스 등 에너지 산업구조 개편의 차질 없는 추진과 석유 유통시장의 투명성 제고 및 전자상거래 도입을 촉진하는 것이다. 에너지저소비형 경제․사회구조로의 전환 촉진 방안으로는 에너지 기술개발 및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효율성 향상시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에너지절약형 생활양식의 정착을 위한 범국민 실천운동 전개하는 것이다. 환경 친화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구조 정착 방안은 대체에너지개발 및 보급 촉진 등 에너지 Mix의 低탄소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남북한․동북아를 포괄하는 대륙형 에너지 수급체계 구축를 구축하는 것이다.
<표 1> 2001년도 에너지 수급동향(1-8월)
자료: 산업자원부, 2001, 『2001 월동기 에너지수급 안정대책』 주) : * 전력 및 부문별소비는 최종에너지소비기준
2001년도 에너지 자원정책의 추진성과 전망은 첫째로 에너지 소비의 효율화를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즉 에너지원단위(총 1차에너지투입량/GDP) 지표의 지속적 감소세 구현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환경친화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공급구조를 정착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대체에너지 보급 확대를 통한 선진형 에너지 공급체제를 구축한다. 대체에너지 보급률(대체에너지사용량/1차에너지 사용량)을 1999년 1.05% → 2000년 1.1% → 2001년 1.3% → 2003년 2%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에너지 공급시설의 적기 확충 및 보급 확대하며, 다섯째로 석유 등 주요 에너지․자원의 자주개발능력을 확충한다는 것이다4).
1) 개혁의 시작 중국의 석유산업은 1960년대부터 외부의 도움이 전혀 없는 거의 무(無)의 상태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까지 중국의 석유생산량은 세계 6위를 기록했고, 석유산업에서 300만명 정도의 고용을 창출했다. 따라서 1980년대 전산업의 개혁과정에서도 석유산업은 배제되었다5). 그러나 1993년 중국이 사상 처음으로 석유 순수입국이 됨으로써 중국의 석유산업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표 2> 참조). 더욱이 1997년에는 1990년 수입물량의 5배 정도에 달하는 석유와 석유제품을 수출하게 되었지만, 수입은 수출의 두배 수준에 이르게 되어 심각성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WTO 가입과 관련하여 수입증대와 가격하락 및 대규모 손실을 우려하게 되었다.
<표 2> 중국의 석유 공급자 → 구매자로의 변환
(단위: 100만톤) 자료: 『주간석유뉴스』2001년 제1024호
이러한 상황하에서 1997년 중국정부는 야심적이고 광범위한 구조개혁 프로그램에 착수하게 되었다. 1차적인 목표는 중국의 석유산업을 주도하는 두 거대기관인 중국국영석유공사(CNPC)와 석유화학공사(Sinopec)의 내부적 동력을 증대시키는 일이었다. 1998년 3월 개혁은 강화되어 현대적 의미의 정부조직으로 개편되었다. 52가지의 개혁은 원칙적으로 에너지 정책의 조정을 단순화․집중화시키는 한편, 정부는 시장력의 추가적인 확장에 대비하여 산업구조를 현대화시키는 것이었다. 1998년 개혁의 실체는 CNPC와 Sinopec의 지리적 봉토(封土)를 분할하는 것이었다6). 1999년 주요 석유회사들의 구조개혁은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전개되었다. 1999년 11월 CNPC는 새로운 자회사 petroChina7)를 탄생시켰다. Sinopec 또한 2000년 2월 China Petroleum and Chemical Corporation(CPCC)8)를 탄생시켰다. 이밖에도 China National Offshore Oil Company(CNOOC)는 주요 석유회사들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회사로 간주되고 있다9). 이밖에도 중국석유산업에서 커다란 변화는 유전탐사, 석유화학 및 주유소 건설에 외국계 회사의 진출이 1999년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WPN10), 01.02/02: 42-47).
2) 중국 에너지 정책의 골격 중국의 에너지 정책은, 1) 에너지의 자급자족화 실현, 2) 수입에너지의 안전한 공급망 확충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며, 국내 유전의 개발, 에너지원(源)과 수입에너지 공급선의 다변화, 에너지 보존의 장려 및 효율적인 에너지의 사용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전략적 비축 중국의 전략적 비축계획에 대한 정보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999년 12월 2020년까지 원유재고를 60일분의 순수입 수준으로 유지하고 재고제품의 30일분 소비수준으로 유지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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