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경제 이야기  Topic of the Middle Eastern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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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학으로서의 중동경제론

The Economic Study of the Middle East as an Area Studies

홍성민(중동경제연구소장, SM Opinion)

 

 

페니키아의 후손임을 자랑하는 레바논은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유럽과의 교역에서 일찍이 문호의 역할을 했다. 식민지경험은 그들의 교역관계가 본래 식민지국가들 이외의 국가로 급속히 확장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경제개발이란 아담 스미드(A. Smith)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과 경제성장에 관한 그의 관심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갖는 경제학의 한 분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이 분야에 관한 연구는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에 점차 초점이 맞춰져왔다. 왜? 일부 국가들은 성장하고 발전하며, 다른 국가들은 그렇지 못한가를 설명함에 있어서 개발경제학은 모든 경제이론에서 출발하여 농업문제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다양한 경제적 연구를 활용한다. 비록 성장(growth)이 개발경제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다른 주제들에 대한 관심도 1960년대부터 점차 고조되었다.

그렇다면 성장(成長)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까? 누가 성장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이에 관한 첫 번째 대답으로 자본과 노동(때로는 도입된 기술에 의존하는) 구성비율이 제시된다. 두 번째는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간의 격차(gap)뿐만 아니라 빈익빈(poorer are getting poorer)이 심화(深化)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출생률, 노동생산성의 결정뿐만 아니라 행복, 만족, 가계의 저축 등과 같은 현실적 문제에 관한 개인의 경제행위(economic behavior)에 관한 새로운 관심의 증대이다.

과연 개발경제학이란 지역과 국가에 두루 걸쳐서 변화하는 일반이론이나 정책에 기반을 두는 것인가? 중동지역의 경제개발에 관한 문제는 개발경제학자들에  의해 정형화된 경제개발모형으로 보아야 하는가? 물론 중동지역의 경제현상에 관한 모형은 라틴아메리카(Latin America)의 모형과 그 종류에 있어서 다르지 않다. 비록 그 모형에 관한 데이터의 적용결과가 나라마다 다르다할지라도, 그 결과는 서루 다른 자료의 구조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빈곤국의 경제적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와 같이 지역적  혹은 국가적 특수모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특수한 지역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대두시키며 지역연구의 당위성을 인정하게 된다.

만일 개발이론과 정책이 지역적으로 특수한 것이라면, 중동지역에 관한 전문(專門) 경제학자는 필요한 것인가?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중동경제학자는 물론 이 지역에 대해 박식한 학자나 비전문가인 경제학자들이 단기(短期)에 있어 중동지역의 이해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음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 같은 이해과정을 통하여 중동전문가들과 세계의 다른 전문가들의 연구교류를 통하여 일반적인 개발모형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경제체제의 이해를 넓히고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거시적, 부문별, 상품별 연구와 같은 개발경제학의 일부 주제들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왔다. 공학(工學)이 인산염 채광의 물리적 효율성의 증대를 가져온 것과 같이 정보이론(communication theory)은 농촌의 기술혁신과정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인간자본(human capital)1)의 기여에 관한 문제는 경제적 연구를 위한 중요한 분야로서 보건(保健) 및 사회과학과의 제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만일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가 이루어진다면, 경제학자들은 동료학자들이 동일한 주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배울 수 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도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이다(John Simmons: 568-9). 따라서 지역경제 연구에 있어서 학제간 연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경제현상의 연구는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중동지역 자체의 중요한 특성을 경제적으로 분석해야한다. 다시 말하면 중동지역만이 갖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지리적 요소뿐만 아니라 경제적 요소를 고려해야한다.

첫째로 중동지역에서 네 가지의 지리적 특성은 이 지역의 경제적 특성을 구분한다.

지리적으로 중동은 1) 인구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강(江)과 해안선 지역, 2)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희박한 사막과 건조한 고온지역, 3) 중요한 광물자원, 즉 석유의 매장지역, 4) (중앙아시아 세력들의 투쟁대상지역이며 부동항을 포함하는) 유럽과 아시아간의 수로(水路)와 교통로 지역 등으로 나눠진다. 이와 같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리적 요소의 결합은 세계의 다른 지역과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사회적으로 중동지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동질성(homogeneity)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2). 단일 언어, 즉 아랍어가 비록 지역간에 사투리의 차이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2억 이상의 인구가 사용된다. 터키, 이란, 이스라엘도 그들 대부분이 사용하는 단일 언어를 갖고 있다. 언어의 동질성은 상대적으로 중동이 세계의 다른 빈곤지역에서 가질 수 없는 중요한 경제적인 요소이다.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를 주로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도 여전히 인구의 대다수가 사용하는 수많은 부족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회구조 또한 국경내에서뿐만 아니라 국경밖에서도 현저한 유사성(類似性)을 갖고 있다.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부계사회구조, 부족, 촌락구조, 토지소유관행 및 도시계급구조 등의 유사성은 매우 동질적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Islam)과 오스만제국의 영향에 배경을 둔 공동의 문화적,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다.

정치적 요소도 경제적 진보와 함께 중동경제구조의 유일성에 대해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첫째로 이 지역의 대부분 국가들은 500년 이상 오스만제국의 일부였기에 중동국가들의 정치 및 행정구조는 오스만제국이 붕괴되었을 당시와 상당한 유사성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로 오스만제국 후기의 식민지경험은 인도나 세네갈이 겪었던 경험과는 매우 다르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기간동안 유일한 보호령정부였다. 그러나 동부아랍국가들의 일부 군장교들은 런던이나 소르본으로 유학을 했거나 베이루트나 알렙포에서 외국인의 교육을 받았다. 최근까지도 북아프리카의 아랍인들은 프랑스로 가서 고등교육을 받는 경향이 있다. 식민당국이나 그 사회의 요구에 의해 수행된 경직된 특수교육과 비중동식민국가에서 주종을 이루었던 수많은 국외추방자들의 역할에 대한 효과는 알제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동지역에서는 그리 크지 못했다. 중동인들이 어떻게 부유한 국가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또 그들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산유국들이 결속하는데 상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느냐의 문제는 그들이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직접적인 식민통치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요인은 수요의 낮은 가격탄력성과 낮은 대체탄력성과 함께 전적으로 생산수단에 기인한다. 이러한 식민지경험은 그들의 교역관계가 본래 식민지국가들 이외의 국가로 급속히 확장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셋째로 중동지역에서 영향력 증대를 위한 소련과 서구의 경쟁은 이 지역에 있어서 노력없이 얻은 이전소득(unearned transfer)과 채굴권 차관을 증대시켰다. 이 같은 외국의 원조는 아랍국가와 이스라엘간의 무기경쟁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소련과 서구의 경쟁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미국이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방위를 목적으로 터와 파키스탄을 잇는 중앙조약기구(Central Treaty Organization: CENTO)를 탄생시킨 제2차 세계대전이후부터 소련과 서구의 경쟁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이념적(理念的)인 면에서 소련과 서구의 대치는 개발을 위한 경제모형에 관한 논쟁을 수반하였다. 최초 10년간, 특히 1945년이후 중요한 정치적 문제는 국가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택하느냐, 아니면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나세르(Nasser), 카셈(Kassem) 및 바아스당(Ba'ath party)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3) 아랍사회주의(Arab Socialism)가 공산주의 국가의 사회주의와 다른 것인지 아니면 다를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주된 관심사였다. 우익(右翼)은 생산과 분배수단의 사유개념이 아랍사회주의와 모순이 없다고 주장한 반면, 좌익(左翼)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좌익이 우익에 대해 우세하였기에 생산과 계획당국의 공공통제에 대한 동유럽국가들의 모형을 받아드렸다.

토지관리(土地管理) 문제는 일부 국가의 경제모형에 관한 정치적 이념효과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를 따르는 국가에 있어서도 다양한 형태의 변화과정을 겪었다. 시리아나 튀니지는 소규모 농장을 국가관리기업으로 전환하여 농촌의 농부들이 임금노동자로 전환되었으며, 생산감소와 함께 농부들은 고통받게 되었다. 이라크와 이집트는 농토를 소유하지 못한 경작자들에게 대규모 농장을 분배하였다. 그 결과 이라크의 농부들은 약간의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영협동조합(state cooperative)'을 조직화한 반면, 이집트에서는 보다 많은 자유가 보장되어 국가는 부수적인 서비스기구를 조직했다. 따라서 1960년 이후 10년 이상 이집트에서의 생산과 산출은 이라크와 비교할 때 괄목할만한 개선을 이뤘다. 알제리는 비식민지농장의 ‘자가경영제(system of self-management)를 채택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폴란드나 유고슬라비아의 경제모형과 함께 튀니지와 시리아의 경험과 그들 자신의 모든 조건에 대한 역사적 자각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 국내농업 조건의 경제적인 분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군사적인 배경을 갖는 도시의 정치가들은 농촌에서의 생산과 마케팅에 대한 인식을 거의 하지 못했고, 개혁을 위한 모형을 구상하고 있었던 사회주의국가들에 있어서조차도 거의 개혁은 방치된 상태였다. 아울러 경제학자들의 충고도 집단적인 모형의 관찰이나 농촌의 조건에 대한 연구보다는 경제이론(經濟理論)이나 공산주의 국가들의 매개를 통해 입수한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결국 토지관리에 관한 초기의 결정은 농촌의 조건에 거의 부적합한 경제계획을 적용하는 정치적 이념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석유부문(石油部門)은 최근까지도 알제리, 시리아 및 외국인소유 자본기업의 형태를 갖고 있는 튀니지와 같은 국가에서 까지도 자본주의형 기업이 허용되고 있다. 1950년대초 이란이 석유생산과 마케팅의 국유화(nationalization)에 실패함으로써 산유국들은 황금알을 품고 있는 거위에게 깃털을 달려고 하지 않았다. 산유국들은 다국적기업들과 20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자신감이 팽배한 1973년 제1차 석유위기(石油危機)이후 가장 가치있는 자원인 석유에 통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의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경제적 요소는 원유(原油)이다. 서구의 소비자와 주주(株主)들에 대한 보호는 냉전(cold war) 시대의 CENTO조약에 근거하고 있다. 1950년대 중반 공산주의 국가가 최초로 시리아 내각에 참여함으로써, 중동산유국들의 정치적 현상유지는 미국정부의 커다란 관심사가 되었다. 1950-60년대 동안 세계에서 1인당 가장 높은 수준을 갖는 두 국가는 중동의 요르단과 튀니지라는 사실은 아아러니컬하다. 중동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는 원조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석유소득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다. 레바논에서 미해병의 주둔과 같은 명백한 경우도 있고, 이란에서 CIA의 후원하에 발생한 쿠테타나 시리아에서 군사적인 첩보활동과 같이 위장된 경우도 있다. 또한 소련과 서구열강들은 현상유지를 위해 정치적인 무력수단으로 군대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존 시몬스(John Simmons)는 위와 같은 논지로 중동지역을 경제적 의미에 있어서 사회적, 정치적 및 지리적 특성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Ibid.: 572-573).

역사적(歷史的) 기록을 통하여 알려진 레반트(Levant) 지역에 대한 수출과 통과무역은 동부국가들의 해안개발이나 강변지역의 개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과거 페니키아 선원들은 지중해도시를 건설하였고, 시리아인들은 로마인들의 곡물창고를 채웠다. 그 후 농부들은 수에즈운하(Suez Canal)의 개통이후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밀을 유럽으로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이 지역밖에서 생산된 상품들은 프랑스로 가는 아르헨티나의 쇠고기처럼, 이 지역을 통과하거나 레바논의 보험업자들에게 도중에 구매되기도 한다. 1930년대가 되면서 석유수출이 그들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유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수출무역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석유수출은 이 지역의 두 번째 중요한 경제적 특성이다. 최소한 걸프산유국들과 다수의 아랍국가들도 경상수지 및 국제수지에 있어서 커다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1974년초까지 이들 대부분의 흑자는 런던의 금융시장이나 마이애미의 부동산시장에 광범위하게 투자되었다. 그러나 1973년이후 석유는 이제 아랍인들의 의미있는 정치, 경제적 자원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1인당 소득수준은 높지만,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들의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산유국들의 경제적 성숙도를 고찰해야 한다. 인구의 대다수가 아직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제조업이 부가가치 창출에 큰 기여를 못하고 있다.

 

<각주>

1) 슐츠(T. W. Schultz)는 한 나라의 국민총생산 증가는 토지, 노동, 자본 등의 증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인간자본(human capital)에 대한 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보다 상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홍성민(박사학위 논문), 1988,「경제발전에 있어서 인가자원(Human Resources)의 역할에 관한 연구」, 청주대학교대학원, 68-87 쪽 참조.

2) 한국경제의 성장요인 가운데서도 ‘사회적 동질성’은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인종, 언어, 문화, 관습, 종교 등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이중구조(二重構造)는 국민적 단결을 저해하고 낭비를 초래하여 경제개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의 경우, 단일민족에 단일언어, 문화 및 관습이 같으며, 종교는 근대화에 저해요인이 아니라 촉진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박 승, 1984, 「경제발전론」, (서울: 박영사), 384쪽.  

3) 친(親) 영국적인 이라크의 화이잘 2세는 1955년 체결된 ‘바그다드조약’의 중심인물이었으나, 아랍민족주의(民族主義)의 고조로 1950년대말 도전받게되어 결국 1958년 7월 14일 카셈장군의 쿠데타로 이라크왕국(王國)은 붕괴되고 공화국(共和國)이 되었다. 이집트의 나세르대통령 또한 수에즈운하의 국유화(1956)로 얻은 정치적 승리를 아랍민족주의 확산에 활용하였다. 이 와중에 1964년 10월 시리아의 바아스당(黨) 정권을 장악한 아민 하페즈도 대(對)이스라엘 정책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바아스당은 1943년 시리아에서 창립된 가장 조직화되고 구체적인 아랍통합(統合) 방안을 주장해온 유일한 민족주의 정당이며, 자유, 평등, 아랍통합, 사회주의를 지상이념으로 내걸고 있다.    

* 인용(引用): 홍성민, 2009, Hecono-txt2, 서울: 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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