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性敏의 中東地域   The Middl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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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연구에 관한 나의 관심은 아라비아 사막의 동경에서 비롯됐다. 사막에도 참새가 있을까? 지금 생각하니 너무 허술한 출발이었다. 1970년대 석유위기(Oil Crisis)가 전 세계를 강타할 때 아랍산유국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나의 중동지역연구가 시작됐다. 상감청자가 세계 최고의 도자기인 줄만 알았던 나의 편협한 지식은 이곳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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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의 중동지역 The Middle East

중동연구에 관한 나의 관심은 아라비아 사막의 동경에서 비롯됐다. 사막에도 참새가 있을까? 지금 생각하니 너무 무지한 출발이었다. 1970년대 석유위기(Oil Crisis)가 전 세계를 강타할 때 아랍산유국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나의 중동지역연구가 시작됐다. 상감청자가 세계 최고인 줄만 알았던 나의 편협한 지식은 이곳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후 반세기가 다가오는 지금, 나의 중동연구는 아직도 사막의 신기루처럼 막연하기만 하다. 피라미드는 무덤일까? 신전일까? 오벨리스크 위에는 왜 피라미드 모양이 있을까?  흔히 쐐기문자라고 하는 설형문자와 상형문자가 갑자기 사라지고 역사가 그리스어로 쓰여지기 시작했을까? 중동지역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전쟁과 평화'는 아직도 21세기 인류의 문명과제로 진행형인데 인류는 지구를 떠날 우주를 대상으로 경쟁하고 있을까? 아직도 인간은 자연앞에서는 미미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나의 중동연구에 관한 결론이다.

그러나 중동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인류역사의 최소한 5000년의 기록이 중동에는 문자로 전해지고 있다. 신(God)이 어떻게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화(myth)를 비롯해 문자의 시작과 문명(Civilization)의 시작을 알리는 기록들이 중동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중동연구 가운데서도 중동경제의 연구에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 상인'으로 알려진 중동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종교를 이해해야 하고 오랜 전통을 잇는 그들의 상인정신을 이해해야만 현대의 아랍중동인들과의 교역을 이해할 수 있다. 두바이의 브르즈 칼리파 빌딩의 규모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다행히 석유위기이후 한국인들은 발빠른 진출로 중동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뒀고 한국이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큰 기틀을 말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향후 전망을 그리 밝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세계인구의 약1/3을 차지하는 무슬림들 소비자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에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중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를 일찍 손에 쥘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그저 취미로 개념없이 찍어대면 뛰어다니던 기록이 이제는 삶의 역사가 되었다. 중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고 받아들이는데도 경험과 지식축적이 필요하다. 특히 성인이 된 후에 깨달음은 자칫 자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깨달음이 아니고 그저 단순한 배움의 터득정도인 것이다. 2000년 이후 한국에서는 여행자유화가 이뤄져 많은 이들이 해외 나들이를 하고 있다. 처음 마주친 것은 경이롭고 신비롭기에 탄성을 자아낸다. 중동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 중동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관광객들을 대하면 대부분 '다시 오고 싶다'는 답변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왜 다시 찾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한국에서 중동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이곳에 가면 유럽관광객들이 주류를 이루기에 마치 유럽에 온 느낌까지 든다. 보스프러스 해협을 가르는 관광선이나 아야수피 사원 아니면 블루 모스크에는 항상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관광객으로 즐비하다.

이스탄불에 갈 때마다  "왜 한국에는 날이 밝으면 줄을 서서 찾아가는 관광지가 없을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곤 한다.

5000년을 살아 온 한국에는 왜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가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중동사람이나 유럽사람들은 5000년 역사를 곁에두고 매일 살아가지만 우리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은 역사나 전통은 교과서에 있는 것이기에 일단 '나와는 동떨어진 삶'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경주의 불국사나 국립박물관은 다녀왔다고 하면 그저 수준 높은 관광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언론이나 방송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관광은 관광지에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가 관광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관광에도 목적이 있듯이 중동연구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중동경제의 연구는 보다 어려운 과정이다. 수천년 동안 이질적으로 살아 온 아랍중동의 역사와 전통, 특히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의 경제를 이해하는 길이란 쉽지 않은 길이다.

한국에서 중동지역연구에는 선구자나 스승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를 보면 부럽기까지 한다. 최소한 전문가라고 하면 수십년간 그 지역에 거주하며 그들과 같은 언어로 소통하며 같은 삶을 공유하며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들이 학제간 연구를 교류하며 기초지식을 공유하기에 연구의 속도 또한 빠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중동 전문가' 논쟁이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이때 내가 "한국에는 중동 전문가가 없다'라는 화두를 던졌더니 많은 이들이 발끈하며 반기를 든 적이 있다. 어떤이는 중동에서 특파원을 했다는 이유로, 어떤이는 그곳에서 수십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어떤이는 아랍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중동 전문가>를 자처하고 나섰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한국에는 중동 전문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외신을 전해주는 만물박사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세미나나 모임에 나가면 오랫동안 중동을 연구한 '중동 전문가'라는 소개를 받는다. 그러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의 어린 학생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기간이 오래 되었다고 전문가가 되란 법은 절대 없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나라에 오랫동안 거주했다고 그 나라의 전문가라고 보는 것은 커다란 오류다. 나는 한국에서 60년 이상 크고 자라며 세상을 읽혔다. 그렇다고 한국의 모든 사정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외국인이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그저 내 주변의 이야기나 상식 정도의 답변에 그칠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만주화' 같은 어려운 질문에 다달으면 더할 나위 없이 편견이 개입될 것이다. 그래서 학문이 필요하고 지역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과거나 최근의 중동연구를 보더라도 부족한 점은 실감한다. 물론 1970년대 이후 많은 후학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연구범위의 확대를 해 온 점은 충분히 칭찬하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아직 우리의 중동연구는 산유국 중심의 아라비아 반도를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물론 현실적인 필요가 있음도 인정한다. 또한 그 분석도 서구적 관점에서 서구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번역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 또한 오랜 기간 연구는 했지만 중동경제 관련 자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나 대학의 연구소도 마찬가지 처지다. 그저 학제간 연구 및 데이터 축적을 수십년 동안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실현에는 먼 길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중동을 연구하는 학자의 고충이며 한계다.

물론 개인적인 호기심이기는 하지만, 나는 중동에 가면 우선 박물관에 먼저 들른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짧은 시간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탄불에 가면 예외없이 '고궁박물관'에 들른다. 워낙 많은 역사적 유물이 전시 돼 있기에 그저 서너 시간을 머무는 것은 보통이다.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러대야 하기에 잠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무작정 사진을 찍어 낸다. 주변의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들은 난해한 글자나 동상을 보고 메모하고 필요한 사진만 한 두어 컷트 찍는다. 분명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내 주제에만 관련있는 사진을 찍기란 매우 어렵다. 이해도 못하면서 그저 신기하고 필요해서 무작정 셔터를 눌러대는 초등학생의 사진찍기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하여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이스탄불이다. 이제는 중동경제 연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동을 처음 방문했을 때 신비로움이나 호기심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 하나 하나의 과거 경험이 축적된 결과 인 것 같다.

예멘의 아덴에서 중국산 도자기를 발견했을 때 느낀 희얼은 "중세 한-중동 교류" 연구에 큰 동기가 됐고, 그 후 가는 곳 마다 도자기가 카메라 앵글의 초점이 됐다.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에서 고대 '동전(Coin)'의 발견은 "화폐의 발달사"에 도움이 됐다. 앙카라 박물관에서 "철제 용 조각"은 아시리아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라크의 우르 신전 방문은 "중동의 문명(Civilzation)을 일깨워주었다. 이밖에도 이란의 카페트, 튀니지의 모자이크, 레바논의 백향나무, 리비아의 사브라타 유적 등에서 중동의 문물교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이집트의 피라미드, 요르단의 페트라, 이란의 페르세 폴리스, 이라크의 지구라트 등에서는 그리스와 아랍의 교류를 직접확인 할 수 있었으며, 시바왕국으로 유명했던 예멘의 독특한 문화유적에서는 고대의 "향료 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의 일이긴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동서교류의 많은 유물은 중동연구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 호기심의 갈증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스승없이 떠난 길이기에 그 만큼 길도 멀고 혼미하다.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느끼기에는 아직 너무 부족하다. 다만 후학들이 압축된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그저 자료를 정리하고 싶을 뿐이다. 중동경제를 연구하는 학자가 왜 역사적 유물에 관심을 갖느냐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의 연구축적이 부족했다는 점을 비난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중동연구는 넓이(width)는 확보되었지만 깊이(dept)가 없다"는 자평을 하고 싶다.

어쨌든 나는 늘 카메라를 끼고 다녔고 그것이 이제는 "축적된 자료(resources by photo)"가 되었다. 물론 역사나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다른 시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경제학자로서의 시각으로 조명해 볼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는 그동안 찍어둔 사진자료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관광으로 되돌아가 생각해보면, 어떤이가 커피와 케밥의 맛을 즐기러 중동을 다녀와서 그 맛을 자랑하듯이 나 또한 그 레스토랑이 언제 생겨서 어떻게 수익을 올리는지를 파악해서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사진은 나의 중동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그저 취미로 산도 찍고 물도 찍고 절구통도 찍고 초가집도 찍던 습관이 중동에서도 똑 같이 이어졌다. 사진외에 취미를 든다면 '꽃과 나무 사랑'이다. 주말이면 고향을 찾아 일군 농장도 이에 어였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중동에서의 보타닉 가든이나 스페인의 알 함브라 궁전이나 이란의 이스파한 궁전의 가든은 마음 속에 정원(Garden)으로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정원을 꾸미고 싶다.

중동에 관한 연구가 시작은 미미했지만 내 인생의 큰 틀에서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석유(oil) 연구를 통해서 세계경제의 큰 지평을 보았고, 중동전쟁을 통해서 종교(religion)을 이해하게 되었고, 예멘연구를 통해서 남북통일(unification)의 미래를 보았다. 아울러 중동방문을 통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됐고 신화(myth)로 일컬어지는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역사(history)와 문명(civilization)을 이해하게 됐다.

따라서 이 사이트에서는 내가 경험한 세계를 중심으로 중동경제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와 이야기를 소개할 것이며, 가능한 한 나의 취미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낙타를 타 보면 사막의 신기루를 생각하게 되고 말을 타 보면 초원의 광활함을 느끼게 된다.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서 총총한 별과 달을 바라보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저절로 솟구치며 신과 종교가 떠 오른다. 그렇기에 "나는 어디서 태어 났는가는 인생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201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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